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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움이 멀어지는 순간

지도의 끝에 서서

by EveningDriver

혜화동 골목에 차를 세우고 고개를 들자
손만 뻗으면 닿을 듯 반짝이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불과 몇 걸음 남짓한 거리인데,
정작 그곳으로 가는 길은 보이지 않는다.
내비게이션은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말만 남기고,
나를 이곳에 홀로 세워둔 채 사라졌다.
두리번거리다 보니 여기가 1층이 아니라
지하 2층이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된다.
그리고, 출입구는 반대편에만 있다.

경사진 땅에 세워진 건물은 위치에 따라 층을 달리한다.
한쪽에서 바라보면 지상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1층 같만 지하로 불린다.

건물 반대편 '진짜' 1층으로 가려면
골목을 따라 한참을 돌아야 한다.
머리 위로는 분명 간판이 보이는데도
문 하나를 열기 위해선 길게 우회해야 한다.
가끔 건물 내부에 연결된 통로가 있지만
대부분 굳게 닫혀 있거나
비밀번호를 알아야만 지나갈 수 있다.
그 시간엔 길을 묻고 답해줄 이를 찾기도 어렵다.
나는 그저 골목을 빙 돌아가며 출입구를 확인한다.

지도로 보면, 도시는 평면적이다.
하지만 그 안을 걸어보면
높낮이와 계단, 수없이 많은 문이 얽힌 입체 구조다.
한 건물 안에도 길은 여러 갈래로 나뉘고
출입구마다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위와 아래, 앞과 뒤가
서로 겹치고 어긋나며 도시는 층을 이룬다.

이런 경험은 배달을 하면서 익숙해진다.
지도에 없는 길을 몸으로 외우고
건물마다 다른 출입 방식을 기억한다.
주소만으로는 알 수 없던 도착지의 복잡한 구조가
이제는 내 머릿속에 하나의 건물처럼 서 있다.

실제로 마주한 도시는 평면이 아니다.
고 낮음의 얽힘을 바라보다 보면
가끔은 내 삶도 이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눈앞에 보여도 긴 우회를 거쳐야 닿을 때가 있고,
멀리 있는 것 같지만 사실 한 걸음 앞에 있기도 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언제나
평면에 담을 수 없는,
깊이와 결이 겹쳐진 거대한 구조 같다.

나는 오늘도 그렇게
이 도시를 달리며 배운다.
길을 찾는 일이란
좌표에 도착하는 것이 다가 아니라,
삶이 그려놓은 높낮이와 문턱을 읽는 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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