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 골목에서 마주친 그림자
차에서 내릴 때면
언제나 주변을 한 번 더 살핀다.
몸을 완전히 빼내고 문을 닫자마자 잠그는 습관,
배달을 마치고 돌아와 차에 오르면
먼저 문을 잠그고 시동을 거는 습관,
이 단순한 반복은 내 일상의 작은 안전벨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는 건 아니지만,
혹시 모를 순간에 대비하는 습관이다.
밤은 낮과는 다른 얼굴을 가진다.
어두운 길은 낯설게 느껴지고
그 시간에는 늘 조금 더 신중해진다.
지난 금요일 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이었다.
차창을 두드리는 빗방울은 마치
작은 망치들이 연달아 내리치는 것 같았다.
그날은 차를 몰면서도 계속 생각했다.
‘이렇게 비가 와도 괜찮은 걸까.’
세상이 빗물에 잠길 듯 느껴지던 밤이었다.
토요일로 넘어간 새벽 한 시 반,
한양대 근처 주택가 골목에서 마라탕을 픽업하고
젖은 우산을 들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비가 우산을 때리는 소리가 너무 커서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을 정도였고
나는 오직 차로 향하는 짧은 길을
빨리 건너는 데만 집중했다.
드디어 운전석 문을 열고 몸을 구겨 넣는 순간
등 뒤에서 갑자기 “으아아아!” 소리와 함께
물웅덩이를 차며 내 쪽으로 달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귀에 박히는 것 같았다.
손끝이 떨리는 채로
본능처럼 빠르게 문을 닫고 잠갔다.
내 옆을 스쳐가는 그림자가 보였다.
건장한 남자가 순식간에 내 차 앞을 가로질러
골목을 따라 계속해서 달려갔다.
나는 그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굳은 채로 앉아 있었다.
심장은 빗소리와 뒤섞여 요동쳤다.
잠시 후, 빗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숨이 고르자 안도감이 찾아왔다.
'우산도 없이... 그저 비를 피해 뛰던 길이었겠지?'
그 생각이 들자 긴장은 허탈함으로 바뀌었고
머리를 다급히 차에 밀어 넣다가
부딪친 통증이 뒤늦게 느껴졌다.
모든 게 우습게만 느껴졌다.
어쩌면 내가 골목길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그를 놀라게 한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마저 스쳤다.
혼자 겁에 질리고, 혼자 안도하고,
혼자 머리를 부딪힌 밤.
예상치 못한 순간은 늘 찾아온다.
그러나 이 정도로 끝나 무사히 돌아온 밤들은
결국 감사한 기억으로 쌓인다.
긴장과 두려움으로 온몸이 굳어 있던 짧은 시간,
모든 감각이 예민하게 곤두선 채 숨조차 삼키던 순간,
그 끝에 돌아온 것은 완벽한 안도였다.
쏟아지는 빗소리와 함께 스스로 만든 공포가 흩어지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단순한 사실이
묘하게도 나를 가장 깊이 위로했다.
그 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그 무사함이야말로,
나에겐 가장 극적인 결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