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음에도 비치네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점심은 대개 배달로 풀린다.
매일같이 회의와 보고가 이어지는 부서다 보니
밖으로 나가는 건 오히려 번거롭다.
팀원들과 배달앱을 켜는 일은 루틴이 되었고,
도착하는 한 끼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업무의 한 조각처럼 흘러 들어온다.
언젠가부터 주문에도 나만의 기준이 추가됐다.
먼저 회사에서 거리가 멀지 않은 식당인지 살핀다.
그래야 짧은 점심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다.
추가 배달비 없이 여러 곳을 들르는 알뜰배달도
내 음식이 먼저 닿는 동선의 가게라면 오히려 좋다.
거기에 라이더들이 선호할 만한 주문인지까지
경험적으로 따져보곤 한다.
그래야 더 빠른 픽업으로 이어질 테니까.
주문 후 알림을 확인하다 보면
가끔 묘한 순간이 찾아온다.
배달앱에는 “조리가 시작되었습니다”라는 안내가,
배달기사 전용 앱에는 “미션 시작”,
“배달료 상승” 같은 알림이 오른다.
한쪽은 기다림의 언어,
다른 한쪽은 생계의 언어다.
하지만 회사 자리에서는 늘 그렇듯,
그저 습관처럼 알림을 스쳐 넘긴다.
도착 시간이 다가오면 1층 로비로 향한다.
전에는 도착이 임박해 내려가고는 했지만
점심시간의 엘리베이터는 늘 붐볐다.
내가 로비에 늦게 도착해
이미 기다리던 배달기사에게
어색하고 미안한 눈빛을 건넨 적이 여러 번이다.
요즘은 조금 이르다 싶을 때 움직인다.
그래야 실제 도착 시간에 딱 맞출 수 있더라.
로비에 서 있는 나는 여러 얼굴을 가진다.
어젯밤 늦게까지 달리던 배달기사,
지금은 감사 인사로 음식을 받는 회사원,
그리고 몇 시간 뒤 다시 달릴 준비를 하는 나.
겉으로는 태연해 보여도
마음 안에서는 수많은 감정이 스쳐간다.
드디어 음식을 받고 돌아서는 순간,
앱은 어김없이 묻는다.
“배달은 어떠셨어요?”
단순히 '좋아요' 또는 '아쉬워요'를 선택하고
음식점 평가에 별점으로 답하면 그만이었지만
지금은 그 질문이 달리 들린다.
단순한 서비스 평가가 아니라
내 태도를 비추는 거울 같기도 하다.
최소 예상 시간만 기대하며 주문하지는 않았는지,
수령을 위해 조금 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는지,
엘리베이터 앞에만 머물지 않고
건물 출입구까지 몇 걸음 더 걸어갔는지,
작은 움직임들이 쌓여
누군가의 불편을 줄였는지.
그 태도들이 결국 기다림의 결을 바꾸고,
만남의 순간을 달리 만들었다.
만족스러운 배달은 배달기사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
주문하는 내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 같았다.
'좋아요',
그리고 별 하나, 둘, 다섯은 단순한 점수가 아니었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기다렸는지
누군가의 시간을 얼마나 가볍게 했는지,
그렇게 내가 택한 마음의 온도를 기록하는
작은 별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