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요즘처럼 더운 날엔
음식 픽업을 위해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이
잠깐의 피서처럼 느껴진다.
시원하게 틀어진 에어컨 바람이 얼굴을 스치면
그 짧은 기다림 속에서
슬며시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여기서 생맥주 한 잔 마시면 딱인데.'
그런 상상을 하며 매장을 둘러보면
자연스레 손님들의 표정이 들어온다.
누군가는 웃고 있고,
누군가는 건배를 외치고,
셔츠 팔을 걷은 사람들 무리는
회식 자리인 듯 보이기도 한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행복해 보이는 부러운 얼굴들이다.
어쩌다 보니 나는 그런 자리를 가진 지 오래다.
시간도, 여유도, 그리고 무엇보다
그만큼 가벼운 마음도 지금은 조금 부족하다.
한양대 먹자골목을 지날 때면
골목 초입부터 웃음소리가 들린다.
청년들의 무리가 골목을 가득 채우고 있고
방금 맛집에서 나온 듯 흥겨운 표정들이다.
나도 한때는 그랬다.
친구들과, 동아리 선후배들과,
하루가 멀다 하고 술자리를 만들고
한 번 시작하면 끝까지 남던 학생이었다.
맛있는 안주도 놓치지 않았고,
돌아오는 길의 무거운 몸조차 즐겁게 느껴지던 시절.
그땐, 지금의 나를, 배달을, 상상하지 못했다.
새삼 생각해본다.
내가 그렸던 계획 중,
그대로 이루어진 게 얼마나 있을까.
물론, 그 계획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여기까지는 올 수 있었겠지.
비록 다 지켜지진 않았지만
그걸 고민하고 시도했던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 것이다.
지금도 거창한 계획은 없다.
오늘, 이번 주, 이번 여름, 그리고 2025년. 그 정도.
그 뒤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한편으론, 그래서 더 기대도 된다.
지금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순간들이
나를 웃고 울고 또 웃게 하기 위해
어디선가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마찬가지로,
예전엔 글을 쓴다는 걸 생각조차 못했다.
보고서 문장 다듬고,
슬라이드 문구 고치는 게 전부였던 내가
이제는 누군가에게 읽히는 글을 쓴다.
그리고 그 글을 통해 공감과 응원을 받는다.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다. 모두 배달 덕분에.
시원한 맥주 한 잔은 마시지 못했지만
그 상상 하나로 잠시 웃을 수 있었다면
그날도 충분히 살아낸 하루였을지 모른다.
그렇게 쌓인 하루들이
나를 단단하게, 그리고 조용히 빚어왔다.
계획이 어긋났다는 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는 뜻인 것 같다.
하물며 A4지 몇 장 분량의 보고서를 쓸 때조차
나는 수없이 고치고, 다시 써본다.
그보다 훨씬 복잡한 '인생'이라면
한 번에 매끄럽게 써내려갈 수 없다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삶은 끝없이 수정되는 초안 같고,
나는 그 문장들을 고치며
나 자신을 다시 읽는 중이다.
한 줄씩 고쳐 써 내려가다 보면
언젠가는 지금의 하루들도
괜찮은 이야기였다고
웃으며 떠올릴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