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운명일까 우연일까? 미국에서의 삶은 꿈꿔본 적도 없고 살아보고 싶은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미국 테네시 녹스빌이란 곳에서 매일매일 치열한 삶을 살고 있다. 그것도 육십 넘어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살고자 스스로 나온 직장에서 퇴사 후 1년 남짓 지나 다시 들어와서 말이다.
이 선택이 나를 어디로 이끌지 아직 다 알 순 없지만 어떠한 결말로 이어지던 나에겐 여분의 선택지가 있었고 그걸 선택할 수 있음에 감사하기로 했다.
우리의 삶은 우연이 시작되지만 살면서는 운명적 요소가 없다면 살아가기 쉽지 않다. 모든 것을 우연으로만 돌려 버린다면 삶은 무미하고 살아갈 동력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조상은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뇌를 만들고 생각으로 의미를 만들어 냄으로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발명했다. 살아내기 위해 살기 위해 그리고 행복하기 위해. 그렇지 않고는 수시로 반복되는 불안과 고통을 견딜 수 없을 테고, 어디에나 도사리고 있는 두려움과 위험을 이겨내지 못하며, 다 갖었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무료함과 무력감을 참아내지 못할 테니까.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상실할 때, 더 이상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없다고 생각할 때, 인간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세상과 이별하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이야기가 끝나는 날이 곧 고단한 삶의 여정을 마치고 영원한 '쉼'이 있는 곳으로 사라지는 날일테니 이야기는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이어져야만 한다. 이것이 지금 내가 60이 넘은 나이에 미국땅 테네시 녹스빌에 와서 살고 있는 이유이다.
대단하고 거창한 무엇을 한다거나 큰 일을 이루어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나를 믿고 의지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한 어떤 것들이나 그들이 이 고통의 땅에서 좀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내가 하는 일들, 그리고 어디에서 태어 날지는 선택할 수 없을지라도 어떻게 살아 갈지는 선택할 수 있도록 내가 주는 선한 영향력들, 이 모든 것들이 나의 이야기의 구성요소이긴 하지만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한 것은 아니다. 어느 날 운명이 나를 이 길로 이끌었고 나는 여기 테네시에서 나의 이야기를 계속 써 가기로 결정했을 뿐이다. 그래야 삶을 계속할 수 있으므로.
정확히는 테네시주 클린턴, 인구 1만여 명의 소도시, 남쪽에 인구 40만 명 정도의 녹스빌이라는 조금 큰 도시가 있고 주변에 여러 위성도시들을 합쳐 70만 명 정도가 살고 있는 곳. 회사는 클린턴에 위치해 있고 전체 1,200여 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절반의 미국인들과 27개국으로부터 이주해 온 다양한 나머지 절반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회사다. 한국인을 비롯 멕시코 파라과이 온두라스 베네수엘라 콩고 필리핀등 다양한 나라에서 저마다의 꿈을 찾아 비자를 받고 이곳에 온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의 삶과 나의 삶을 어떻게 연결 지을지, 이 수많은 점들을 어떻게 연결시켜 어떤 그림을 그려낼지 매일 매 순간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사회적 환경과 문화적 배경 성장 과정 그리고 교육 수준이 모두 다른 많은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고 같은 생각과 꿈을 갖게 하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우연히 태어난 운명적 삶을 위해 복잡함과 혼돈 속에서 그 모두를 관통하는 하나의 맥락을 찾아내는 일, 그리고 그 맥락에 화약을 입히고 불을 붙여 총알이 발사되도록 하는 일, 그것이 내가 여기서 해야 할 일이다. 1,200개의 총알이 일시에 불을 뿜으며 동시에 발사되면 모두가 원하는 목표를 이룰 것으로 믿는다. 이어지는 회차에 그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