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알사탕 03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무디 Oct 29. 2022

숙원을 풀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학교에는 부모님과 함께 하는 여러 행사들이 있다. 입학식, 부모님 참관 수업, 운동회, 학예회, 졸업식 등.

나의 학창 시절, 학교에 부모님이 오시는 날은 외할머니가 오시는 날이다. 맞벌이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늘 참석해 주셨다.

아, 초등학교 2학년 땐가, 운동회 날 엄마가 계주에 참가해 3등을 거머쥔 적이 있는데 목이 터져라 응원했던 기억이 난다.


다른 해 운동회가 열리는 날, 어김없이 외할머니가 음식을 한 짐 싸서 오셨다.

점심시간이 찾아왔고 친구가 치킨을 시켰다며 같이 먹자고 했다. 치킨만 아니었어도 우리 할머니랑 같이 점심을 먹었을 텐데...... 우리 할머니는 소심하고 낯도 많이 가린다. 그런 할머니에게 친구네랑 같이 밥 먹자고 했다. 할머니는 역시나 거절하셨다. 나는 할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을 들고 친구네로 홀라당 가버렸다. 점심시간 동안 할머니는 혼자 집에 다녀오셨다. 죄책감을 조금 덜고자 변명을 늘어놓자면 초등학생 때 우리 집은 학교 바로 앞에 위치해 있었다. 걸어서 5분도 안 걸리는 거리였다. 됐다. 난 그냥 못된 년이다.


대학 시절 우리 학과는 연말마다 부모님과 친지들을 초대하여 학술제를 개최했다. 학부생들이 그동안 수행한 활동 결과와 앞으로도 우수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소개하는 행사였다. 학부생들이 준비한 다양한 무대를 펼쳐 재미를 더했다. 우리 학과의 전통이자 이색적인 무대는 합창이다. 학부생 모두가 무대 위에 옹기종기 올라 와 '10월의 어느 멋진 날'을 합창했다. 소프라노 알토 나누어 화음도 이루었다. 교수님의 취향을 반영한 공연이었는데 매년 행사의 품위를 더했고 몇 달간 연습하며 내부 결속력도 더해졌다. 무엇보다 노래를 듣고 부르는 일을 좋아하는 외할머니가 가장 좋아하셨다. 난 더 열심히 입모양을 크게 만들어 불렀다.


학술제는 다행히 평일 저녁이 아닌 토요일 저녁에 진행돼서 많은 나의 지원군들이 함께해줬다.

주말에도 일하는 아빠를 제외하고 외할머니, 엄마, 언니, 이종 사촌 언니, 아끼는 친구까지 와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초대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매년 나의 관객이 가장 많았다. 든든했다. 저금통에 돈이 가득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못내 아쉬웠던 학창 시절의 숙원을 대학시절에 다 풀었다.


사랑에 대해 내리는 정의들은 너무나 다양하며 그래서 정답은 없을 것이다. 다만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생김새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언제나 참일 것이다. 나에게도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곁에도 늘 애정이 묻어있을 것이다.

이전 02화 잘 가 닭꼬치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