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겨울이었다. 어느 날부터 화장실을 다녀오면 거기가 아파왔다. 이제부터 거기를 편의상 '동군영'씨라고 부르겠다. 군영 씨는 내가 가만히 앉아 있을 때 조차도 괴롭혔다. 얼른 병원 가보라는 주위 사람들의 성화에도 무섭고 수치스러워 차일피일 미루던 난 결국 상태를 더 악화시켜 내원했다.
그리고 난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있었다.
수술을 앞둔 날, 처음으로 관장을 경험했다. 군영 씨께 관장약을 수줍게 드렸더니 머지않아 다급하게 화장실을 찾았다.
수술 당일, 이동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향하는 기분은 정말 새로웠다. 드라마에서는 보통 환자의 시선이 천장의 불빛들을 향하고 있던데 나는 나의 침대를 끌어주는 남자 간호사에게 눈길이 갔다. 그냥 조금 부끄러웠다.
이번에는 대기실에서 주사 놓는 간호사와 마주했다.
"아파요...?" 긴장감을 덜고자 따뜻한 말을 기대하며 물었다.
"바늘인데 당연히 아프죠."
수술받기도 전에 빈정상했다.
수술실에서 의사와 마주했다.
거침없이 나의 아랫도리를 쑥 내렸다.
수술받기도 전에 빈정상했다.
수술 후, 나는 4인 병실로 옮겨졌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1주일의 동거는 머쓱하고 불편했다. 보기 싫은 TV 프로그램도 봐야 했고 아직 졸리지도 않은데 강제 취침을 해야 했다. 먹기 싫은 사과도 먹었다. 치질 환자 병문안을 오시는 분들은 사과를 그렇게 많이 사 오신다. 평소 지겹고 무료했던 원래 내 일상과 거처가 조금 그리워졌다. 그리고 통증 없는 군영 씨를 어루만지며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을 맞았다.
나를 못살게 굴었던 동군영 씨와 작별한 지 어느덧 5년이 흘렀다. 그러나 지금도 그는 "자니?" 하며 가끔 안부를 물어온다. 그럴 때마다 난 소홀했던 좌욕과 물 2l 마시기를 다시 열심히 실천한다.
가끔 떠올리는 시가 있다.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처음 눈을 맞던 떨림으로 계속된다면,
첫 출근 하는 날, 신발 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 일을 한다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상쾌한 공기 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
이 사람은 그때가 언제이든지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
-정채봉「첫 마음」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