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별 소득 없이 쌀만 축내는 인간이 있다.
뭐 하나 진득하게 하는 법이 없는 막내딸인데, 그게 나다.
대학교 4학년 말부터 2년간 심리평가 기관에서 근무했지만 지금은 이렇다 할 곳에 소속되어 있지 않는 29년 산 백수다.
2년 전, 아르바이트라도 해야겠다 싶어 일자리를 찾아보던 중 초등영어강사 구인을 발견했다. 액정도 깨지고 배터리 충전도 잘 안되던 아이폰을 하루빨리 바꾸고 싶었던 나는 무턱대고 지원서를 냈고 감사하게도 면접 본 다음날 바로 출근하게 됐다.
첫 수업은 수월하지 않았다.
열두 살 경수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물었다.
"쌤은 몇 살이에요?"
"그건 비밀이야."
"쌤은 국민학교 세대예요 초등학교 세대예요?"
나는 말문이 막혔다.
옆에는 아홉 살 김지민이 있었다.
몸에서 베이비파우더 향이 나는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영어 잘해요?"
그녀의 볼살은 아주 땡글땡글했으나 눈초리는 날카로웠다.
나는 잠시 생각해 본 뒤 대답했다.
"응, 잘해.(너보다는)"
첫 수업에 들어가자마자 9살과 12살짜리 아이들에게 자격 검증을 받게 된 나는 원장님이 아닌 아이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알파벳 하나라도 잘못 발설하는 날엔 어떤 따끔한 공격과 야유를 받을지 모르겠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