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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꾸미볶음

맵싹하고 짭조름한 술안주

by 정확한느낌 Jan 17. 2023

서울에 살던 친구가 용두동에 쭈꾸미골목이 있는데 가보고 싶은 식당이 있다며 데이트 신청을 했다.

쭈꾸미골목에는 여러 식당이 줄지어 한데 모여 있는데 나는 친구의 손에 이끌려 그 집에 방문했다.

내부를 잠깐 보니 그동안의 역사가 느껴지는 인테리어를 배경으로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중년의 아저씨, 아줌마들 사이로 대학생같이 보이는 무리들도 끼어 잔을 부딪히고 있었다.

식당은 이미 만석이었고 우리는 기다릴 생각에 밖으로 나와 인도에 섰다.

우리 뒤로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여자애들도 줄을 섰다.


갑자기 인도 옆으로 회색 승합차가 다가오더니 스윽 멈추고 운전사 아저씨가 내렸다.

"쭈꾸미집 왔나?"

당황스러웠지만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손짓하며 우리를 보고 말했다.

"타요, 여기."

벌건 대낮에 나와 친구, 뒤에 따라 섰던 여자애 무리가 군말 없이 승합차에 올랐다.

순간 이렇게 세상과 마지막을 고하는 건가, 어디 실려가는 건가, 우리가 차에 타는걸 누가 봤을까 별별 생각이 들었다.

얼마 안 가서 아저씨가 우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내리세요~ 2호점 왔습니다."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사람 수에 맞춰 테이블이 세팅된다.

메뉴는 단출하다. 무섭게 매콤한 쭈꾸미볶음과 깻잎, 천사채무침. 단일메뉴 식당이 맛집일 확률이 높다고 했던가. 벌써부터 침이 고인다.

반찬접시에 생마늘도 나오는데 같이 볶아 먹으면 맛있다.

팬에 올려진 쭈꾸미를 볶다가 양념이 졸아들어 살짝 꾸덕해지는데 딱 먹기 좋은 타이밍이다.

맨 입에 쭈꾸미를 넣어 맛을 본다. 첫인상이 잊히지가 않는다. 빨갛게 졸여진 게 매콤하고 쫄깃하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본격적으로 깻잎에 천사채무침과 함께 올려 먹는다. 맥주파인데 차갑고 맑은 소주가 맛있어진다.

맵고 느끼하고 시원하고의 무한반복을 하다 보면 어느새 반 정도 사라져 있다.

카운터 옆으로는 포장만 해가는 사람들이 꾸준히 들락거린다. 나도 한 봉지 사갈까 잠깐 고민했지만 가족이 먹기에는 너무 매워서 지갑을 닫았다.

숨을 고르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꽃피우다가 공깃밥을 추가한다. 꼭 먹어야 한다. 눌어붙은 누룽지를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밥도 깻잎에 싸 먹자.


브런치 글 이미지 2


평범하게 보이는 이 천사채무침이 킥이다. 우리 모두가 다 아는 맛인데, 몇 번을 먹어본 그 맛인데 별미다. 쭈꾸미를 먹다보면 양념이 너무 매워서 입안이 얼얼해질 때, 한 입 하면 느끼한 마요네즈가 화끈거림을 부드럽게 진정시켜 준다.


워낙 강렬한 맛이라 먹고나면 한동안은 생각이 나질 않다가 일 년에 한 번씩은 그리워진다.

너무 멀어서 자주 가지 못했고 지금도 쉽게 못가는 곳이지만 불현듯 떠오르는 이 맛은 대체할 수 없는 맛이라 도통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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