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1 손흥민 적 자세를 배우자
엄마, 옆 반에 OOO이가 방송반 됐다!
어휴, 화나! 나는 떨어졌어.”
딸에게 전화가 왔다.
방송반 결과를 몹시 기다렸던 나였다. 합격 소식을 기대했지만 ‘역시나’로 끝났다. 딸은 방송반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딸의 친구들이 원서를 냈고 엄마도 등을 떠미니 하는 수 없이 나간 터였다. 자신이 싫어하는 친구가 합격했다고 자랑하는 일이 싫어서 자기도 써본다고 했다. 남들의 시선 때문에 합격이라는 타이틀이 필요했다. 그러니 자의적인 노력은 없었다. 자신이 방송반에 왜 들어가야 하는지 면접관 선생님의 질문에 말 문이 막혔다고 했다. 결국은 딸이 예상한 상황이 연출됐다.
딸의 모습에서 나를 본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고 했나. 나는 아이를 보며 나를 본다. 나도 고등학교 때 미국 연수를 가는 면접 프로그램에 지원한 적이 있었다. 간단한 영어 문장도 외워가지 않은 채로 갔다가 대답을 하나도 하지 못했다. 사실 옆 부서에서 활동하고 있어 영어를 못해도 뽑아줄 것이라는 믿음이 컸다. 불합격을 듣고 집에 가서 눈이 팅팅 붓도록 펑펑 울었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더 이상의 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다.
이 사건이 머릿속으로 겹치면서 내가 아이에게 무슨 잘못을 저질렀나 반성했다. 적어도 내 엄마는 나에게 외부 활동을 강요한 적이 없었다. 학습과 패션은 강요받았지만 말이다. 나에게도 딸에게도 확실하게 붙어야만 하는 어떤 간절함이 부족했다.
며칠 전 팔레스타인과의 경기에서 손흥민의 자세를 보았다. 1대 1로 비기고 있었고, 그는 코너킥을 올려 마지막 공격을 준비했다. 중동의 축구장 잔디가 너무 길었을까. 한쪽으로 기울어진 잔디 결을 손으로 세웠다. 공을 잔디에서 최대한 띄운 것이다. 공이 높이 있을수록 위로 차올리기 쉽다. 그렇게 축구공을 놓고 왼발의 발 디딤할 위치를 밟았다. 잔디를 눌러서 디딤발 위치를 표시해 두었다. 여성 축구 감독님이 프로선수들이 하는 노력의 모습을 직접 보여준 적이 있었다. 바로 그 모습이 포착됐다. 손흥민이 코너킥으로 공을 올렸지만 골로 연결되지 못했다. 손흥민은 그 경기에서 ‘승리’가 간절했다. 그 화면에서 잠시 잡힌 축구를 대하는 손흥민의 자세는 큰 일깨움을 주었다.
하물며 우리나라의 최고 선수도 매 경기에 최선을 다하는데 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가 아니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축구가 잘 안 된다며 핑계 대기를 2년. 꾸준히만 하면 실력은 저절로 따라온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축구를 잘하고 싶다면 생각하는 노력을 해야 했었다. 생각 없는 노력은 노력이 아니었다. 이지영 이투스 사회과목 강사가 말처럼 남들이 다 하는 노력은 노력이 아니었다.
축구를 하고 1년은 큰 부상이 많았다. 발목인대가 늘어나 한 달은 못 뛰고, 엄지발가락이 골절되기도 했다. 발톱이 빠지기도 부지기수였다. 2년 차에는 하체 근육통에 시달렸다. 스트레칭을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지만 부족했다. 이런 부상들의 핑계로 ‘오늘 아파서 축구를 잘하지 못했어’로 끝맺음하곤 했다. 내 노력이 부족함을 탓하고 싶지 않은 얄팍한 자존심이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지적을 해도 핑곗거리를 찾기 바빴다. 이해는 되는데 몸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던지, 알겠다고 한쪽 귀로 듣고 다른 한쪽 귀로 흘렸다. 당시에는 귀담아듣는다고 착각했다. 착각에서 벗어나는 일은 중요하다. 알코올 중독자들도 자기 모습을 영상으로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 것처럼 운동하는 사람들도 내가 내 모습을 보지 않으면 누가 옆에서 백날 이야기해도 알아차리기 어렵다. 이처럼 나 자신의 모습을 알아차리는 일이 우선이다.
최근에는 괴상한 이 자세들이 고착되면서 바른 자세로 고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이런 핑계를 자꾸 대고 있다. 그래서인지 뛸 때마다 오금이, 고관절이 불편해졌다. 그러면 병원에 가서 소염진통제와 근이완제(+위장약)를 받아와 약을 먹고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부황을 받는다. 그러면 뭉쳤던 근육들이 서서히 풀어졌다. 이게 근육 뭉칠 때 내가 하는 패턴이 되었다. 근육을 푸는 방법은 폼롤러로 마구 하체를 밀라고 하는데 이게 게으른 사람에게 쉽지 않다. 그렇게 방치하면 또다시 근육이 아프고 또 병원에 가서 약을 먹고 한의원에 가는 일이 반복된다. 부상 예방에 대한 간절함이 부족한 결과다.
또 나에게 필요한 축구 기술은 패스할 때 밑으로 깔아서 세게 차기다. 이상하게도 발가락 골절 이후로는 공을 공중으로 띄우려고 해도 잘 안된다. 그러니 슛은 더더욱 되지 않는다. 하지만 바닥으로 깔아서 차려고 신경을 쓰면 공은 위로 뜬다. 왼쪽 디딤발과 오른발이 공에 맞는 부분이 가운데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아직도 발이 공에 맞는 위치를 깨닫지 못한 무지함이다. 시계추처럼 왼 무릎을 펴는 게 아니라 몸의 중심을 살짝 낮춰서 무릎을 구부림을 자꾸 잊는다. 내가 어디를 차는지 알아차리지 않았다.
페인팅은 이제 일상이라는데 거짓말이 하기 싫다고 보이는 모습대로 뻥뻥 차다가 내 공격 방향을 상대방이 읽어버려서 패스가 막히는 일이 허다했다. 수비를 떨쳐내는 거짓말이 나에게는 필요하다. 이게 거짓말이 아니라 스포츠의 세계에서는 기술이라는 이름으로 쓰인다. 공은 끝까지 쳐다보고 눈을 감으면 안 된다. 설사 내 눈 바로 앞에 축구공이 온다 해도 말이다.
결핍 :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거나 모자람
간절하다 : 1. 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하다.
2. 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하다.
노력의 결핍을 인정하고 간절하게 원하는 인간이 되어야겠다.
하지만 정말 신기한 점은 나에게 택배는 항상 결핍의 상태다. 모자라기 때문에 온 신경이 곤두선다. 빨리 상품을 열어보고픈 마음이 가득하다. 택배가 오는 오토바이 소리만 들어도, 택배가 오는 시간만 되어도 ‘택배 도착’을 금세 알아차린다.
어라, 나는 택배에는 그냥 간절한 인간이었다.
축구도, 공부도 결핍을 인정하고 간절한 인간이 된다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