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0 풋살과 축구 사이 그즈음에
“후보선수가 좋네. 너무 많이 뛰어서 다칠 염려가 없잖아.”
아버님이 말하셨다. 아직도 여성축구를 하고 있는데 3년이 되어도 후보선수라 5분도 못 뛰고 있다는 말에 대한 답이었다. 더 열심히 하라는 말이 나올 것이라는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반응에 놀랐다. 축구를 배우면 실력을 늘려서 더 뛰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아버님은 애들도 챙겨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하는데 엄마가 다치면 안 된다는 말이었다. 나는 엄마의 역할보다는 축구 후보선수로의 역할만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었다.
바닷가 주변의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바다 옆으로 소나무 병풍을 보곤 한다. 해풍을 막아주는 소나무다. 내가 주전이 아니어도 된다. 바람을 막아주면서 주전 선수를 보호하고 나는 그 바람을 즐기면 될 일이었다. 경기장 밖에서 마음을 졸이면서 경기를 지켜보고 출전한 선수들을 위해 얼음물을 주고 물수건을 주는 등의 허드렛일을 하는 일이 꼭 하찮은 일은 아니었다.
시댁에 놀러 갔다가 들었던 아버님의 따뜻한 말에 여성축구단에 남겠다는 의지가 스멀스멀 생겼다. 사실 3년이 되도록 실력은 좋지 않았고 내 또래 아줌마들이 나가버렸기에 나도 덩달아 갈지자로 흔들렸다. 해풍 소나무도 이렇게나 흔들리려나.
다른 곳에 가보기로 했다. 풋살이었다. 다른 구에서 하는 풋살 교실에 갔더니 햇볕에서 캡모자도 가능했고, 얼굴에 자외선 패치도 붙일 수 있었다. 그야말로 자유였다. 여성축구를 다니면서 풋살을 해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는, 그런 자유를 다른 곳의 회원들을 보며 부러움을 삼켰다.
그곳의 한 회원언니가 말했다.
“축구 수업에 가면 발바닥으로 축구공을 잡으면 감독님한테 혼나.
풋살 하던 버릇이 축구에 나오는 걸 어떻게 해.”
공을 발바닥으로 잡는 것을 싫어하는 건 비단 우리 축구 감독뿐만이 아니었다.
풋살 수업 새내기여서 더 열심히 했다. 질타에도 칭찬에도 호수의 잔잔함처럼 감정의 변화가 크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풋살 수업의 칭찬으로 이미 내 몸은 호수에서 서핑을 하고 있었다.
축구의 실패자가 단숨에 실력자가 되는 이상한 현실과 마주했다. 실력이 안 늘고 있던 건 아니었다. 축구의 세계에서는 전문가들이 많아서, 혹은 선수였던지, 구력이 오래된 사람들이 모여있어 3년이라는 시간으로 그 실력을 채울 수 없었다. 내가 느끼는 실력의 향상과 감독님이 나를 보는 시선, 회원들이 나를 보는 실력은 상대적인 것뿐이었다. 그저 그분들도 자신의 실력과 나를 비교해 실력의 격차를 표현하는 일이었다.
욕심이 많은 나는 개구리 올챙이 적 기억을 잊었던 것이었다. 남들의 기준에 내 실력을 탓할 이유가 없다. 나는 나대로 꾸준히 그리고 집중해서 열심히 축구를 즐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