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15 여성축구 부상일지, 복부강타=죽음직전
숨이 멎으려 했다. 이대로 죽는 것일까. 축구공이 내 배를 강타했고 횡격막은 멈췄다. 숨을 쉴 수 없었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죽음을 받아들이려 했다. 무서웠다. 경기는 중단되었다. 선수들은 나를 둘러싸고 둥글게 모여서 내가 쉴 수 있는 작은 그늘을 만들었다. 그늘의 차가운 들숨이 몸에 들어와 천천히, 천천히 나갔다. 살았다. 정신이 나간 횡격막은 제 주인을 겨우 찾았고 그제야 자신의 할 일을 인지했다. 머리의 지시가 몸의 행동으로 일치되는 순간까지 3분 남짓.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축구공을 찼다. 죽음이 눈앞에 있었다. 처음이었다. 축구공이 배를 정확하게 맞으면 이런 상태가 된다는 것. 죽음을 느끼는 두 번째 순간이었다. (첫 번째는 번지점프였다)
3년 동안 크고 작은 부상이 많았지만 그중에서 몇 개 생각나는 부상을 모아 본다.
현재는 눈주변에 멍이 들어있는 상태다.
6학년 친구들과 축구 경기 중 킥으로 올린 공이 갈비뼈에 맞았다. 실금이 생겼다. 숨을 쉴 때마다 갈비뼈가 아팠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말했다.
“축구는 오토바이 타는 것보다 위험한 운동입니다. 저도 얼마 전에 축구하다가 죽을 뻔했어요. 저라면 축구 안 합니다.”
내 몸이 이런 상태였지만 더 걱정한 건 대회였다.
“저 그러면 대회는 못 나가나요? 저 대회에 나가야만 해요.”
“알아서 하세요.”
축구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다쳤을까. 다친 상태에서도 대회에 나가야 한다고 의사에게 사정했다. 그리고 의사도 체념하며 알아서 하라고 말했다.
이날도 사이드백을 맡고 있던 나는 상대편 윙이 센터링을 하지 못하도록 수비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킥을 내 얼굴로 맞혔다. 보통이면 등으로 돌리는데 이번에는 몸이 늦었고 반대로 돌았는지 나도 모르게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그 가렸던 손등이 내 오른 눈썹을 쳤다. 주저앉아버려서 잠시 경기가 멈췄지만 금세 일어나 경기는 다시 시작되었다. 모든 경기가 끝이 나고 살펴보니 오른쪽 눈썹이 1센티미터가량 솟아올라 있었다. 푸름이 물들기 시작했다. 혹시나 안와골절이 왔을까 걱정했다. 주변 회원들에게 물었지만 눈 주변은 함몰되어야 골절이라 해서 안심했다. 어디 부위던지 몸의 골절은 복잡하다. 더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뼈가 붙기까지는 약이 없고 그냥 움직이지 않는 방법뿐이기 때문이었다. 움직이고 싶은 사람에게는 못 움직이는 게 곤욕이다.
환절기에는 몸이 잘 풀리지 않아 발목관절에 무리가 많이 간다. 그래서인지 한의원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는데 다치면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도 아프거나 다쳐서 병원에 간다. ‘둘이 무슨 차이냐’라고 묻는다면 건강한 병자와 병약한 병자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치 다이어트를 위해서 운동을 하면 건강한 돼지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기왕 아프더라도 건강한 병자가 빠르게 아픔을 없애는 게 낫다. 나이가 들수록 병원은 친구가 되기 마련이다.
집에서 멍든 눈썹에 얼음을 대고 있노라면, 아이들은 웃는다. “엄마는 어떻게 축구를 하길래 얼굴에 맞아?” 아이들도 축구를 배우고 있기 때문에 나도 할 말이 없다. 욕심이 생겨서 정면을 향하는 얼굴과 다가오는 공을 피하지 못하는 내 몸에게 핑계를 대겠다. 누가 보면 가정폭력으로 누군가가 때리고 내가 맞아서 저러고 있나 싶겠지만 나는 당당하다. 스포츠인으로서 운동하다가 공을 맞은 거라고. 그래서 덜 아프다. 아픔의 정도를 측정하는 나의 감각이 더 발달하고 있다. 아픔을 견디는 능력이 더 강해지는 거라고. 그래서 인생의 아픔도 축구로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