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사진

by 김지숙 작가의 집

흑백사진




돌이켜보면 사진은 흑백사진이 더 많은 기억을 불러낸다 한참 자라서도 바라보묜 가슴 아픈 나의 흑백사진은 몇장이 있다 대개의 부모들이 이 시기에는 아들 선호사상이 유달리 강해서 아들을 낳기 위해 별의별 방도를 쓰곤 했다 우리집도 예외가 아니어서 나는 딸 아들 딸 아들이라는 순서로 두번째 딸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났을때에 엄마는 아들이었으면 좋았을것을 아들이었으면 그만 낳았을텐데 라는 말을 철이 들때까지 곧잘 하곤 했다 나는 그 말이 정말 듣기 싫었다 백일사진도 돌사진도 아들을 낳고 싶은 엄마의 바램대로 남자아이동생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어린 나의 머리를 밀었다 엄마말로는 숱이 많아지라고 그랬다고 했지만 아랫채 사는 순이 엄마도 아들 낳을 욕심으로 첫딸의 머리를 깎아 아들처럼 키우다가 아들을 얻었다고 했다 어느 말이 진실인지는 모르지만 평소 엄마의 가치관이라면 둘 다 맞을 수도 있다

또래의 건너 집 여자 아이는 남자만 득실거리는 집에 넷째로 딸이 태어나서 공주처럼 머리를 길게 머리를 예쁘게 묶고 모자를 씌워 찍은 것을 걸어두었다 나는 이 머리가 짧은 사진만 보면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나는 이 사진을 볼 때마다 찢어버리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만류로 그럴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나는 마음이 아팠다

결국 남동생을 보긴 했지만 내게는 엄마의 말과 흑백 사진은 상처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여자로 태어났기에 내 동생에게 세상에 태어날 기회를 줄 수 있었고 나는 내 남동생의 생명의 은인이다 내가 남자로 태어났으면 어떻게 남동생이 태어날 기회가 있었겠냐고 이런 스스로도 기특한 생각이 들자 동생은 자기 생명의 은인이 나라는 걸 단 한번이라도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을까

그래 나는 남자가 아니어서 실패한 생명이 아니라 누군가를 세상에 태어나게 만든 대단한 존재라는 생각으로 바꾸어서 생각하게 되었다 이전의 엄마가 내게 심어준 남아선호사상에 대한 인식에 반전하는 변화를 가지게 되었다 내가 왜 그렇게 살아야 해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세상이 변하여 오래 전에 주눅들어 살던 엄마들의 한풀이라도 하듯 딸들의 가치가 높아졌다 세상은 이전의 남아선호가 아니라 여아를 선호하는 세상으로 변했고 여자가 귀한 대접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 지금은 흑백사진 속의 나는 사라졌다 그 사진이 어디 있는지 모르고 더 이상 궁금하지도 않다 다만 내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는 돌사진 백일사진의 흑백사진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머리를 짧게 하고 자라서인지 나는 늘 머리를 길렀고 나이에 비해 여전히 숱이 많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어릴적 머리카락이 자랄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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