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한 순간에도 절망하지 말라

by 김지숙 작가의 집

절박한 순간에도 절망하지 말라




우리는 매사에 완벽하게 살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이러한 일상의 행보는 사람의 관계 속에서 더 많이 다쳐 본 사람의 행동일수록 더많이 조심하고 덜 다치거나 상처를 입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조심성보다는 오히려 서투르고 투박한 당당함이 더 많이 자리 잡고 있다

다만 그러한 투박한 무례함은 그로 인해 스스로가 다치기 이전까지만 가능하다 자기보다 더 세고 운명적으로 더 투박한 사람을 만나지 않은 운이 좋은 일평생이라면 평생을 그 투박하고 당당하고 자기 위주로 사는 모습 그대로 다치지 않고 살다가 세상을 떠나갈 수도 있다

아이들의 첫걸음은 불안 불안하지만 지켜볼 수밖에 없고 처음 자전거를 타는 어른의 뒤태도 이와 마찬가지이지만 어떤 조언도 해 줄 수 없다 아이들은 눈을 감아야 잠을 잘 수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기 때문에 눈을 감기면 금방 잠이 들고 그저 주변의 먼저 걷는 사람들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한다

처음 자전거를 타는 어른 역시 첫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매 순간 진심이고 조심스럽게 동작을 익힌다 수없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서 걷고 제법 능숙하게 걷게 되는 순간까지는 절박함이 실행으로 다가선 이유에 속한다 비단 어린아이뿐 아니라 청소년 청년 장년 노년 등 어른들에게도 이러한 습성은 마찬가지로 다가온다

인생이란 단 한 번의 기회로 일방통행하는 길이기에 매 순간 처음일 수밖에 없다 연애도 결혼도 부모가 되는 것도 나이가 드는 것도 전부 처음 겪는 일이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니고 내일의 내가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어제의 기준으로 오늘의 나 내일의 나를 판단하고 채찍질하는 것은 때로는 적용이 안될 때가 더러 있다

살면서 다양한 경험을 겪고 그 숱한 어려움들을 버티고 난 순간은 언제나 절박함이 존재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이순신 장군의 좌우명을 굳이 들지 않더라도 절박해야만이 뜻한 바를 이루고 뜻한 바 장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우리네 삶인지도 모른다

절박함은 기적을 만들기도 하지만 절박하다고 다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절박함이란 허공에 한걸음 내디디는 마음 절벽 아래 한 걸음 더 내디디는 용기처럼 지금껏 할 수 있는 정도에서 단 한 걸음을 더 나아가는 힘이다 절박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박함이 주는 생과 사를 넘나드는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살면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심정에 도달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혈육이라 할지라도 그 어려움이나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상황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그 순간에 느끼는 생의 다급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도 동정도 배려도 하지 못한다

그것은 친지나 부모 형제라도 마찬가지이다 당사자가 아니라면 당면한 어려움에서 헤어나갈 수 없는 순간에 직면한 그 입장을 헤아리지 못한다 그러니 파부침주破釜沈舟의 각오로 살아남지 못하면 인생에 더 이상의 생존은 바랄 수 없게 된 최악의 순간을 경험한 셈이고 그러다 보니 경험에서 오는 사고의 영역이 넓어지고 자연 역지사지의 사고는 생활화 된다

종교적으로 들어온 바의 표현대로라면 역경이나 고통 절박함을 부르는 정도의 힘든 상황은 사람의 지경을 넓히기 위해서 혹은 복그릇을 넓히기 위해서 신이 주는 시련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가지고 있던 복그릇도 송두리째 다 깨 놓고 마이너스인 인생에서 새 복그릇은 언제 생기는지 도무지 알지 못하는데도 우리는 기도를 한다

머리카락이 허옇케 되도록 그 복 그릇이 만들어지고 차고 넘치도록 퍼 부어도 모자잘 시간적 간극을 다 보내고도 감감무소식이라 아예 그 복그릇에 대한 기대는 허물어지고 머릿속에서 사라지고도 원래 지녔던 복 그릇 만큼이라도 언제 되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과 생각을 잊고 살아가는 것 같다

한번 무너지면 다시 일어서는 일이 어렵고 발버둥 치고 노력한다고 해도 그때 그날의 영광이 다시 찾아오기는 전생의 일처럼 아득한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닐까 칠전팔기의 인생이라는 것도 어지간한 독종이 아니면 가능한 일일까 그 칠전 팔기의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절박함이란 그것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고 오직 그 한 가지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는 그 어느 순간 저절로 깨닫는 본질이다 절박함은 도무지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단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고 거기에서 만나는 것이 기적이기도 하지만 맹탕일 경우도 있다

절박함에서 맹탕을 만나더라도 절대로 기가 죽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는 칠전팔기의 명약이 있고 세월이라는 처방이 있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절박함으로 죽기 살기로 매달리고 노력한다고 해도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절박함은 기적을 만든다고도 하고 절박함이 사람을 키운다고도 하지만 난 그런 말들을 믿기에는 더 자주 절박함에 맹탕을 겪었다 그래도 살아있고 또 다른 절박함들을 맞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절박함의 바로 뒷자리에 자리 잡은 시간이나 세월이 흐르는 대로 놔둘 수밖에 없는 절박함과 동석하는 희망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도 그 절박한 순간이 오면 나는 다시 절박함의 끝자락에 매달린 희망을 잡으려 할것이고 그 희망의 힘을 믿을 것이다 그 희망은 내가 뿜어내는 괴력의 믿음으로 생겨나고 자라고 언젠가는 순간순간을 순순 탄탄 넘길 행운으로 자랄 것을 믿는다

절망이라는 칼날은 어쩌면 복그릇을 키우는 도구는 아닐까 그렇다고 더 많이 절망을 경험할 필요는 절대로 없다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그 자리를 불태우고 떠나는 벼락처럼 절망의 순간도 그렇게 다가와서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주변은 낯설고 새로운 희망이 자리 잡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절박한 어느 순간이든 결코 절망하지 말라 절망과 희망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다 언제건 뒤집힌다 다만 그 언제가 문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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