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과 고독감
오직 혼자서 가라
세상을 살면서 여성이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은 외로움이고 남성은 고립이라는 신문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어떤 독자층을 두고 이런 기사를 썼을까 정말 사람들은 인간의 감정을 두고 남녀노소 성별이 있다고 생각할까라는 여러 생각들이 교차한다
외로움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자신이 의존하던 그 무언가에서 단절되거나 고립감을 수반한 부정적 감정이라면 고독감은 외로움의 원천인 단절이나 고립감이 아니라 누구에도 의존하지 않는 홀로 있을 줄 알고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내면에서 우러나는 긍정적인 사고를 말한다
이는 전근대적인 가치관에서 비롯된다 남성이라고 친구관계 가족 관계에 강하고 여성이라고 이에 취약하다는 사고의 발상부터가 옛스럽다 물론 이 감정은 성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은 아니며 사별 별거 재정 사정 등의 정도에 따라서 외로움이나 혹은 자각의 감정을 느끼거나 그 정도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인간인 이상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정서를 지니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며 적응하고 살아간다 남녀의 차이가 있을 뿐 특정한 감정을 특정한 성만이 느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갓태어난 어린 아이는 성별무시하고 누구나 홀로 생존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누군가에 의존해서 살아남게 되고 더 많은 손길과 관심 사랑 속에서 비로소 올바른 삶을 영위하며 온전히 사회인으로 성장하기까지는 무수한 타인의 손길과 관계를 통해 가능하기 때문에 성별을 따져서 특정 감정을 언급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인간은 누구나 욕구를 지닌다 어느 아기든 배가 고프면 울고 입에 무언가가 들어오면 빨고 살아나기 위한 본능으로 삶을 위한 몸부림을 친다 생리적 욕구가 채워지면 안전의 욕구 사랑 소속감의 욕구 존경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를 추구한다
이는 Maslow가 말하는 욕구의 위계를 충족하기 위해서라도 인간은 서로 정보를 얻거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남녀차이는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나이가 감성의 정도에 따라서 다르지만 인간인 이상 외로우면 친밀한 인간을 찾아 나서고 고립감을 느끼면 단절을 해결할 방도를 찾는다
하지만 삶의 다변화로 탈유교적 전통과 사회구조로 탈바꿈되면서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 약해지고 친밀감이나 혈연 지연보다는 이해관계의 충실도에 인간관계가 맞추어져서 소외되고 외로움 고립 고독감이 증가되는 현실을 살아간다 열굴을 맞대고 이야기하기 보다는 인터넷으로 대화하고 쇼핑한다
Fiske에 따르면 인간은 공동체적 공유관계 권위적 서열관계 대등적 상응관계 시장적 가치관계로 유형을 나눈다 한국인들은 특히 서열관계에 맺어진 경우가 많아 존대어가 많은 편이다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도 서열관계를 인식시키며 성장하게 하는 부모나 가정 환경 속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 한다
이 공동체 속에서 남녀의 평등은 참 힘들다 삼사십년도 훌쩍 넘은 때의 일이다 <아들 아들>하던 세상에서 딸만 줄곧 넷을 낳은 어느 종가의 종손 외며느리가 산후 조리원에서 하던 말이 생각났다 <두고 봐라 이 아이들이 자라서 결혼할 무렵이면 한국 여자아이들은 귀하신 몸이 된다>면서 딸만 넷을 내리 낳은 자신을 푸대접받던 시대적 가치관에 크게 분노하며 몸을 떨던 그 말이 아직도 귓전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새삼 그녀의 말이 딱 맞아 떨어지는 시대가 되었다는 실감을 한다 인간인 이상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지만 이 관계 역시 자율적이거나 인정적일 수도 있고 거부할 수 없는 공통체 속에서 이루어지는 대립 갈등을 조장하여 관계에 대한 만족감이 덜하거나 지나친 상황 속을 살아가기도 한다
우리는 살면서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를 통해 만족을 얻고 따라서 이러한 상호 간의 갈등이 없고 의사 소통이 가능하며 서로에게 유익한 이상적인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하지만 현대를 살다 보면 이러한 상호 유익한 관계보다는 그렇지 않은 관계에 더 많이 직면한다
부모가 된다는 것 가족이 된다는 것 어떤 모임의 일원이 되는 것 등등에서 우리는 기쁨을 찾고 애정을 쏟으며 기대치를 키운다 자연 속에서 마음껏 자라나던 나무를 화분에 옮겨 심으면 그 뿌리가 처음에는 제대로 잘 자리 잡을 것 같아도 화분이라는 공간 안에서 시간이 지나면 그 만큼의 분량에 알맞은 몸으로 자신을 축소시켜 그 땅에 서로 엉겨 살아남듯 사람 관계도 이처럼 엉기며 살아가게 된다
지혜롭게 살아간다고 해도 인간관계라는 것은 교통사고와 같아서 상대적 이해관계가 작동하기 때문에 아무리 혼자서만 잘 한다고 해도 느닷없이 찾아와서 들이 받는 경우가 있다 아무리 지혜롭고 예의 바르게 성심성의를 다해 상대를 대했지만 상대는 하찮게 여기고 무시하거나 자신을 높이 평가하는 등 진심에 진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 럴 때면 상대에 대한 마음을 접고싶어지고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게 된다
또한 상대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만 상대는 인간의 판단기준을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익에 역량에 두고 이에 따라서 푸대접을 하게 되면 그 마음을 받는 입장에서는 섭섭한 마음을 잊을 수 없고 그 섭섭한 마음으로 관계를 청산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의 관계는 다양한 빛과 같아서 때로는 달콤하고 때로는 쓴맛을 또 때로는 신맛을 내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혀의 맛에 둘 것이 아니라 몸에 유익한 점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어떤 관계를 맺으면 어떤 결과가 될 것인가는 예상할 수 없다면 거리를 두고 시간을 두고 관찰 할 필요가 있으며 쉽게 누구에게든 다가설 필요는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 관계를 맺을 때에 언제나 자신이 배울 만한 점이 있는 사람이나 적어도 대등한 정도의 인격이나 지닌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외로운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사소한 행동이나 몸짓으로도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의 마음에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은 편리하다
활발한 사회 생활을 하며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시기에는 이러한 사소함에 일일이 마음을 두고 대응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해당된다 사회 생활을 어느 정도 마무리 하는 단계에서는 정차 이에 기준을 두고 그릇되게 행동하거나 의롭지 못하거니 필요 이상 말이 많거나 욕심이 많거나 남의 것에 탐내는 마음이 이 많은 관계는 정리하고 고독하거나 외로운 마음을 즐기면서 사는 편이 훨씬 마음 편하게 사는 경우가 된다
일일이 스트레스를 받는 관계에 신경을 쓰며 에너지를 낭비하고 살아가기보다는 자기 내면을 이해하고 자기의 바램이 무엇인지 진심을 다해 관계 속의 사람들을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이해하며 효과적인 관계의 기술로 생각이 깊고 현명한 관계를 만들어 가야한다
탐내는 마음이나 욕망 욕구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할 수 있다면 더 말할 나위 없이 어떤 관계에서도 잘 적응하겠지만 미혹에도 흔들리고 유희나 쾌락 앞에서 흔들리는 평범한 우리들에게 외롭지 않고 고독한 존재로 자신을 알고 당당하게 홀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그렇다고 타인이 휘두르는대로 휘둘리며 번뇌의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온몸을 태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중심을 잡고 주변에 휘둘리지 않는 안정과 고요 안식을 찾을 힘과 지혜를 키우기 위해 마음을 가다듬고 일의 이치와 순리를 생각하며 집착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여유를 키워야 한다
요즘 인터넷에 보면 나이가 들어서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 등이 쇼트로 떠돈다 대부분이 비슷한 내용들이지만 허투루 들을 일만은 아니다 외길 인생의 징검다리를 미리 건너간 사람들의 교훈이라 듣다가 가장 와닿는 말들이 살면서 너무 많은 친구가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에 공감하는 이유는 나이가 들수록 고약한 인간성은 더 표가 나기 때문에 가까이 하면 누군가가 다친다 그가 오랜 세월을 보낸 친구이거나 지인이라는 이유로 인간관계를 지속적으로 맺는 것도 무리가 있다 관계는 맺을 시기가 있고 놓을 시기가 있다는 점에 공감하게 된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사람 당장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고 그 속에서 내가 혹은 상대가 호구가 되기도 하고 귀인이 되기도 한다 자기나 남을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귀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함부로 말하고 성내고 행패 부리고 폭언하고 원한을 품고 성질을 내며 남의 미덕을 자기 고집으로 닾은 천박한 사람도 있다
그런 상처를 주는 사람을 오랜 세월 알아온 정으로 친구라고 다 받아 주고 관계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현대인으로 살아가면서 이렇게 사람을 분류하는 일이 옳은 지 모르겠지만 주변의 사람들을 둘러 보면 어떤 사람이 온유하며 화평에 이르는 길을 아는 사람인지 알게 된다
인간관계 속에서 미혹한 자인지 현명한 자인지 잘 헤쳐 나가는 사람인지 곧장 한 길을 가는 사람인지 온갖 간섭을 하며 동정심이 전혀 없고 음모에 능하며 자기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숨기며 자기 자랑을 일삼고 남의 것을 탐하며 거짓말을 밥먹듯 하고 상대를 이용할 점만 들어 호구로 생각하거나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지 상대를 약자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고 가까이 하거나 피하게 된다
그럼에도 가장 상책은 나의 인생은 두 번 갈 수 있는 길이 아닌 만큼 아무나 나의 인간관계의 범주에 넣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지혜를 밝혀 사물이나 사람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명확하게 바라보는 눈을 더욱 기르고 유유히 자신만의 삶을 살며 끊임없이 자기 성찰을 하고 살아야 한다
자주 입지 않는 옷은 버리지만 자주 만나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괜찮은 사람이라면 관계를 끊지 못한다 만날수록 상처받고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라면 내 감정에 스크래치를 쉽게 내는 사람이라면 굳이 만나지는 말아야 한다 더군다나 아무 유익함이라고는 없을 경우는 더하다
또한 현란한 말솜씨에 현혹되지 말아야 하며 행여 습관적으로 만나고 호구되고 부정적 감정의 영향을 받고 지내온 것은 아닌지 관계에 대한 반성과 점검을 나이가 들수록 하고 살아야 한다 이는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지에 대한 확인이고 다짐이다
활엽수는 겨울을 준비하면서 나무잎들을 놓아버리는 것처럼 인간관계도 감당이 안되는 경우에는 놓아버리는 방법이 최선일수 있다 능력자라면 상록수처럼 늘 다양한 관계를 유능하게 하겠지만 자신이 그런 능력자가 아니라면 차라리 단절된 고립감 속에서 살아가는 거리를 둔 관계가 훨씬 편할 수 있다 결론은 외로움이나 고립감 고독감은 결코 부정적일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그런 감정들을 누리는 중에 불현듯 진심을 느끼고 진실을 깨닫기 때문이다
사진제공 성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