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창우碧昌牛​

by 김지숙 작가의 집

『아시다시피我詩多詩彼』(아시我詩 내가 쓴 시, 다시多詩 수많은 시를, 피彼그대에게)




벽창우碧昌牛



스스로가 빛이다

그 틈으로 사라지면

아무도 불러내지 못한다


빛나는 만큼 보이고

빛난 만큼 버티다가

밤이면 치고 오른다


물결치는 어둠이 끝나면

누구와도 손을 잡지만

누구와도 엉기지 않는 바닥




아주 오래된 기억 속에서 가져온 시이다 이 시를 쓰기 더 오래전에 시골 이모집에 간 적이 있었다 대청마루가 높고 대들보가 아주 큰 기와집이었다 방학이라 그곳에서 제법 며칠을 지낸 기억이다 자고 일어나서 이른 아침 마당으로 나오면 벌써 해가 중천에 떠올라 있고 사람들은 일터로 가고 없었다


대청 에 앉아서 눈으로 이곳저곳을 살피던 중 해가 비친 마룻바닥을 보게 되었다 햇살과 마주하고 있는 마루는 빛이 났다 검은빛에 가까운 나무는 반질반질하면서도 짙은 나무색을 띠고 있었다 시골에서 처음 잠을 자본 나로서는 이 장면이 신기했었다 햇빛을 반사하는 마루의 위엄은 결코 햇빛의 도도함에 견줄바가 아니었다 멋있었다


그런데 아침을 먹고 난 이모는 마루를 닦는데, 갓 짠 들기름을 마루에 한방울 붓더니 마른 수건으로 마루를 슬슬 문지르는 게 아닌가 들기름을 좋아하던 나는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엊저녁에 장에 가서 짜온 들기름을 아낌없이 마루에게 먹이다니...


왜 그러는지 물었더니


'어제 들기름 짜면서 먹어보니 너무 맛있어서 마루에 맛 보인다'

고 말했다


'마루에 들기름을 맛 보인다고요'

하는 말을 그대로 믿고 되묻는 나의 말에 이모는


'나보다 더 웃긴다'

고 말했다


늘 같은 말이라도 재미있게 하는 편이라 모두들 이모의 말솜씨에는 당할 재간이 없는 동네 사람들이었는데, 그때는 나의 말에 웃고 말았다 나는 정말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모는 아주 정성스럽게 대청마루를 구석구석 들기름을 한 방울 한 방울 떨어뜨리고는 수건으로 닦고 또 닦고 했다 정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어떻게 저렇게 열심일까 궁금했다 이모는 집을 무척 아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학창 시절 체육시간에 신설 체육관 마룻바닥을 무슨 기름인지는 몰라도 적셔놓고 그걸 수업 시간에 닦으라고 시킨 적이 있었던 기억이 언뜻 떠올랐다 단체벌이 아니라 그냥 수업시간 땜빵하는 것이었다 집에서는 하지 않은 걸레질을 학교에서 하면서 무척 힘들었고 하기 싫었던 기억이다


운동장 만든다고 가방을 비우고 가방에 돌을 넣어 나르거나 파리 쥐꼬리 등 벌레를 잡아오게 하는 방학숙제. 박통시절에 학교를 다니며 아주 잠깐이지만 '교련'이라는 시간에 학생들에게 군기를 넣어 선생님이 시키는 일에 저항은 꿈도 못꾸었던 시절이었다 요즘 사람들이 들으면 기암을 하고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일들을 당시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학생들에게 시키곤 했었다 체육관 마루 교실 마루바닥을 기름으로 닦는 일은 집에서도 하지 않는 아주 재미없고 힘든 노동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이라는 직업 싫었고 선생이 되겠다는 생각을 일찌감치 접은 데서 내 삶의 순서는 달라진 것 같다


그래 마룻바닥은 그냥 반질거리는 게 아니었다 반질거리는 바닥이라고 우습게 보면 큰일 난다 그 바닥은 어떤 정성으로든 그 정성을 먹고 존재하기에 쉽게 누구와도 엉겨 버리지는 않는다 정성이 덜 든 바닥이나 앉았다가 일어서면 옷자락이 끼거나 미끄러지거나 찔리거나 하지만 잘 갈무리 된 마루는 결코 그런 일이 없다


나는 시에서 이 마룻바닥의 자존심을 읽었다 바닥이라고 다 같은 바닥이 아니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살다 보면 바닥이 될 수도 꼭지 지점에 오를 수도 있다 꼭지 지점은 아직 올라 보지 않아서 그 마음을 잘 모른다 하지만 바닥은 어떤 식으로든 제법 몇 번을 오간 적이 있다 그래서 바닥이 어떤 곳인지 가끔 잘 깨닫곤 했다


사람들은 바닥이라고 다 같이 취급하지는 않는다 저렇게 반질반질 빛나는 아무도 쉽게 무시하지 못하고 살금살금 밟아대는 그런 바닥도 있다는 것을 한참 세월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가장 비슷한 이미지를 문화재청 홈피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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