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학도의 밥

by 김지숙 작가의 집

『아시다시피我詩多詩彼』(아시我詩 내가 쓴 시, 다시多詩 수많은 시를, 피彼그대에게)




변학도의 밥그릇




산해진미 가득한 붉은 잔칫상 차리고

변학도 수청 거절한 춘향 목을 치려는데,

걸인 가장한 이도령은 御史詩를 짓네


‘금동이 향기로운 술은 만백성의 피요

옥소반 맛난 음식과 흰쌀밥은 만백성의 기름이라’


변학도 밥그릇을 내동댕이치며

혼비백산 달아나는 뒤꽁무니에

허연 밥풀때기가 수두룩하다




이 시는 오래전에 섰던 '밥'을 소재로 한 연작시 가운데 한편이다

이몽룡은 암행어사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서 수절 기생 춘향을 재회한다 신분제가 확실한 조선시대 고을의 최고 수장인 변학도는 춘향이 수청을 거부하자 춘향을 감옥에 넣고 이를 안 이몽룡은 변학도를 단죄한다

조선시대의 신분제를 보자면 어미가 관기이면 천분 신분이라 자동적으로 어미의 신분을 이어받는다 그런데 변학도를 이런 관점에서 보면 권력자의 권한 내에서 일어난 일이라 입장을라 달리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수청이라는 당대의 제도 자체가 인간적이지 않다는 점에 춘향은 반기를 든 것이라는 점에 방점을 두면 춘향의 행동은 달리 보인다 연약한 여인의 몸이지만 기존의 제도에 당당하게 이의제기를 한 것이다

춘향전은 그러한 제도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쓴 것이 아니라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 지조를 지킨 춘향과 그 사랑의 대상인 이도령 사이의 순수한 사랑의 애절함과 신분과 제도를 깨뜨리는 의식에 중심을 두고 본다면 분명 변학도는 순수한 사랑의 훼방꾼이자 구 시대적인 악의 축으로 치부된다.

나의 이 시 역시 그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하지만 하나의 사건을 두고 관점을 바꿔 보면 세상은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오는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시대의 기준을 넘어선다는 것은 악이고 시대의 기준 안에 있는 것은 전부 선일까 춘향전은 그 기준에 대한 일탈과 무너질 것 같지 않은 관습의 벽을 깨뜨린데 큰 의의가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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