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이 하는 말

by 김지숙 작가의 집

『아시다시피我詩多詩彼』(아시我詩 내가 쓴 시, 다시多詩 수많은 시를, 피彼그대에게)




벽이 하는 말



오늘은

먹빛 날갯짓이

밤을 돌돌 만다


‘가르릉 가릉 가릉’

팔을 뻗어 응석을 부리는

말을 듣는다


날렵하고

소란스러운 말은

꽃그늘 고요를 치럭 치럭 감았다


여전히 어슬렁거리며

직립으로 선 벽에서

남이 쏟아낸 말들이 내려온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무엇을 판단하는 기준은 따로 있다 그래서 자신이 만들어 놓은 창구멍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사건을 종결짓고 이야기를 퍼다 나른다

그리고 어떤 일에 중요한 방점을 찍고 살아가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살아온 과거와 미래를 짐작할 수 있다 물질만능주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들은 그 사람의 가치를 차격이나 아파트격 등 물질적인 것을 얼마나 가졌냐에 사람을 판단하거나 차고 있는 보석을 통해 혹은 입고 있는 옷을 통해 만나는 사람을 판단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삼고 사람을 평가한다

나는 살아오면서 여태 무엇에 방점을 두고 살아왔는지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나는 무엇에 중심을 두었을까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상대를 판단하는 기준은 어디에 두는 걸까 솔직히 지금껏 나는 상대를 평가하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나 살기가 바빠서 남을 돌아볼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와 얽히는 순간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로 나는 그들의 마음과 역량을 알아차리는 법을 나만의 방식으로 터득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의 말은 벽이 하는 말과 같이 느끼기도 한다 때로는 그들의 삶이 그들의 입을 통해 내게 느껴지기도 한다 난 희미하게 덮여있던 기준들이 어떤 일들을 계기로 내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환하게 걷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맨 처음 사회에 발을 들였을 때에는 남들처럼 잘 사는 데 기준을 두고 거기에 최선을 다했고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밤낮으로 많은 노력을 했다 그리고 그것을 얻으면서 소중한 것을 잃기도 했다

아무리 노력하고 열심히 해도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고 아무리 소중한 것도 내 것이 아니면 손아귀를 빠져나가서는 모래알처럼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것도 그것이 또한 인생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러고는 누구도 가져갈 수 없는 사람에 투자하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가급적 그렇게 살았다 그래서 사람과 그 사람이 하는 말에 방점을 두고 그것을 기준으로 살면서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사람에 투자하며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이제는 뭐가 옳은지를 모르겠다 이것도 저것도 다 아닌 것 같다 내가 내 인생의 방점을 사람과 사람의 말에 두고 사는 동안, 내 주변 사람들은 재물에 사물에 방점을 두었다 주변 사람들과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이전에 중요하다고 여기던 것을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중요하다고 여기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잠시나마 나는 나의 삶과 괴리를 느끼며 살아가는 그들의 삶이 일견 부럽기도 하고 그렇게 사는 게 맞았나 싶기도 했지만 지금은 어떤 판단도 내릴 수가 없고 내리기도 그렇다 난 과거로 돌아간다면 양립하는 혜안을 가지고 좀더 현명하게 살아냈을지도 모르겠다

나이 40이면 학벌이, 50이면 미모가, 60이면 재산이, 70이면 건강, 80이면 삶이 평정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게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 맞는 말인지 누군가에게 들은 대로 제대로 기억하고 써먹고 있는지도 헷갈리고 확신도 서지 않지만 아마 비슷한 내용인 것 같다

아무튼 오래 살다 보면 학벌 미모 재산 건강 사람의 모든 문제가 다 저절로 해결된다는 말이고 그 말에 위안을 삼는다 오래 사는 것이 인생에 이기는 것이다 아니 최소한 삶이 평정되는 순간까지만 살아도 인생에 성공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살면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에 대한 문제는 늘 다시 생각하게 되고 앞으로 사는 동안 과연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는 죽는 그 순간에나 깨닫게 될지 그 전에라도 알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나의 생각에 다시 한번 더 깊이 생각하고 앞으로 남은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걸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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