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다시피我詩多詩彼』(아시我詩 내가 쓴 시, 다시多詩 수많은 시를, 피彼그대에게)
흰달, 한적하다
바람에 구부러진 강
칠백리 내려온 한겨울 추위를
나루에 팽개친다
흰 달이 텅 빈 속을 달래는 동안
총총총 떠밀려 내려온 시간이
어느 새 한 칸씩 바닥을 드러낸다
침묵하는 자리마다
물결에 섞여든 어둠은
가랑잎 한장 떨어지는 곡선처럼
낯선 등에
단단히 묶어둔 불을 켠다
'한적하다閑寂하다閒寂하다' 라는 말은 '한가하고 고요하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비슷한 말로는 '한료閑寥하다'이며 '한가롭고 조용하다'는 의미이다 사람들은 '외롭다 적적하다'로 비슷한 경우를 표현하지만 그건 좀 많이 다른 의미이다
외롭다거나 적적하다는 말은 고요하고 조용한데 대한 부정성이 강하지만 한적하다 '한료하다'는 한가롭고 조용한 것을 즐기는 중이라는 의미를 담은 긍정성을 더 많이 갖는다
그래 지금 삶의 상태가 딱 그 정도이다 외롭지 적적하지도 않고 한가롭고 맑고 조용하다 세상을 살다보면 전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살아가게 된다
지금의 삶들이 그렇다 몇 해전만 해도 나는 이렇게 여기서 한적하게 살아가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여기서 이렇게 한가롭고 조용하게 살아간다 마치 이전에 모든 복잡하고 마음 다치고 바쁘고 시끄럽고 애쓰던 모든 터널을 다 통과하고 전혀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우주로부터 내가 모르는 신의 세례를 받았다고 해도 될까 약간 이상한 인간처럼 느껴질까 암튼 다 괜찮다
전혀 모르는 장소에서도 이렇게 살아낼 수 있다는 것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더 많은 시도를 했을 것이다 자기가 만든 아집에 갇혀 사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자기 눈을 가리고 자신의 평온을 담보 잡는 일인 줄 뒤늦게 알게 된다
좀 더 일찍 좀 더 빨리 새로운 곳으로 떠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은 지구의 반대편에서 살아가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지금처럼 조용하고 한가롭게 살아가면서 좀더 평화롭고 여유롭게 삶을 누리지는 않았을까 난 왜 그렇게 낯선곳에 관해 두려운 것도 겁도 많았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