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가르기​

by 김지숙 작가의 집

『어서와, 詩詩한 내 벗』



장 가르기




하룻밤을 꼬박 물속에서 잠들더니 온몸이 퉁퉁 부었다

가마솥 안에서 애오욕의 거품을 걷어낸 인내의 시간들,

세상이 뒤집힐 만큼 고열을 앓았다

잘 문드러져 푹 익은 속을,

손으로 코끝으로 확인하며 제대로 짓이겨진 후, 어미가 되었다


알갱이의 마지막까지 속이 바싹 마른 채

짚불 소독된 장독 속에 다소곳이 들어앉아

속리산 장군수 마시고 신안의 함초를 먹으며

양지에서 딱 두 달, 창창한 희망을 품었다


자궁안처럼 양수에 담긴 아이를 키우듯 산달을 기다린다

모든 생 다 쏟아부어 낸 곰삭은 맛을 품은 그 어미의 검은 혈관

창창히 훑어 제 갈 길 찾아 나선 도도한 딸을 떠나보내는 사랑의 이별식

그날 이후로, 어미는 제 몸을 길들인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푸근하고 온유한 생을 닮은 어미의 맛




간장을 직접 만들어 본 적은 없지만 자라면서 엄마의 장독간에서 수도 없이 보며 자랐다 살아가면서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들고 메주를 띄워 장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 그다지 관심을 가져 본 적도 없다 내가 그 일을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떤 일을 계기로 이국으로 자식을 떠나보내는 심정은 메주에서 간장이 분리되고 남은 메주가 된장이 되는 원리와 닮아 있고 결국 메주는 남은 어미의 몸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메주가 물에 몸을 둥둥 띄운 채 간장을 뽑아내는 심정이 세파 속에서 살아가면서 어미의 자식과 몸을 나누는 심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장가르기를 통해서 메주는 된장과 간장으로 나뉘는 것처럼 살면서 어떤 계기로 품안의 자식을 멀리 내보내는 분리를 경험했다

메주는 메주로 남아서는 아무것도 아니고 된장 간장의 존재로 분리되면서 비로소 어떤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역할을 하게 되는 특별한 각자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는 점을 깨닫게 되면서 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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