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詩集『소리북 』
섬, 주상절리
동해 불빛이 수평선 너머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동안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갑자기 들이닥친 추위는
바다 밑자락 어디쯤 온기를 파묻었다
댓잎을 스치고 들어오는 바람은
겨드랑이까지 파고들더니
사람이 사는 절리의 섬에 찾아와
반짝반짝 빛나는 아침을
참 날카롭게도 연다
오늘 새벽은 유난히 추웠다 겨드랑이를 파고드는 날이 선 추위를 느끼면서 잠이 깬다 보일러 소리가 시끄럽기도 하다 거실에 나와서 바라보니 먼 곳의 불빛은 그대로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직도 오징어를 잡고 있나 보다
살다 보면 때로는 사람이 섬이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바닷물처럼 그 거리가 너무 멀어 아무리 마음을 써도 가까울 수 없다 그럴 때는 차라리 마음을 다 놓아버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성급하게 가까이 하려는 마음이 오히려 서로를 더 할퀴고 상처를 더 깊이 만들기 때문이다
갯바위의 흔적은 그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던가 물론 파도의 일방적인 세몰이 덕분이겠지만 당하고 사는 바위가 무슨 죄일까 싶다가도 하필 그 자리에 놓인 그게 운명이 아닐까라는 생각들을 하게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알 수는 없지만 원하지 않게 만나는 사람들이 있고 원하지 않게 얽혀 든 실타래같은 관계에서 오는 혼란함과 원치않는 불쾌감을 맛보게 되기도 한다 그게 사람사는 곳이라고들 한다
파도를 맞으면서 갯바위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람이 잦아들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외롭고 지치더라도 기댈 곳도 울 수도 없는 상황이라면 파도가 칠 시점에 맞추어 그 파도에 다른 눈물까지 감추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지도 모른다
이곳 바다는 주상절리 형태로 산과 갯바위가 많다 아니 자세히 보면 멋지다 싶은 부분은 어김없이 주상절리 위에 소나무가 자란다 거의 대부분이 그렇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없이 갈라지고 쪼개져 떡판을 올려놓은 모습은 한결같다 인내의 아름다운 결실이 소나무일까 소나무가 참고 견뎌내니 주상절리가 더 아름다운 걸까 알 수 없다
원래는 매끈하고 하나의 모습이었을 테지만 어느 곳에서나 비슷한 바람과 파도의 위협으로 깎이고 다듬어져 멋진 절리의 풍광을 만들어 내고 있다 풍파를 겪고 멋지게 이겨낸 사람의 마음같아 일견 슬퍼 보이기까지 한다
'아름다운 슬픔' 주상절리의 섬이 갖는 또 다른 이름이다
세찬 바람과 파도 앞에 온몸을 던지고 도인처럼 서 있는 저 주상절리의 섬이 놓아버린 마음들은 무엇이었을까 그 마음을 생각하며 오늘 아침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