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연동仙戀洞 잠자리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시집詩集『소리북 』




선연동仙戀洞 잠자리




슬픔 속에서 보면

산도 눈물을 흘린다


눈물 흘리고 들으면

산울림도 비에 젖는다


시린 사랑, 넘나들다

제 목숨 바스러진 줄 모르던

선연동 잠자리


치솟는 사무침에

죽어서도 웃는다





선연동仙戀洞은 실재하는 동네 이름은 아니고 한 때 강의를 나간 적이 있던 학교 캠퍼스를 지칭했다 그 세상에서는 아무 걸릴 것이 없이 선남선녀가 연애를 하고 손을 잡고 어깨를 부둥켜안고 지나가도 아무도 아무 말도 안 한다

지나간 시들을 들추는 것은 지나간 상처들을 꿰뚫어 다시 그 당시를 재현하는 일처럼 마땅치는 않지만 당시의 시선과 많이 달라져 있는 나를 확인하는데는 확실히 도움이 된다

그즈음 나는 나의 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날들에 서 있었다 기댈 어깨도 손을 잡아주는 사람도 상처에 위로를 건네는 사람도 없었다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삶이라는 고지에서 벗어날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양 갈림길 앞에서 최선을 다했다 힘들면 학교 뒷산 약수터에 한참 앉아 있다가 상처난 마음들을 추스리고 돌아오곤 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장소에서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가기를 꿈꾼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 꿈은 ‘운기 칠삼’이라는 말처럼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하늘을 감동시킬 만큼의 노력은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복도를 걷는데 잠자리들의 죽은 모습이 창문 아래 낙엽처럼 쌓여 있었다 바로 창밖 의자에는 젊은 애들이 껴안고 있었다

두 모습을 보면서 잠자리의 짧은 생에 대해 잠시 생각을 했다 잠자리 역시 그들과 같은 짧은 사랑을 나누고 죽어갔으리라 커다란 두 눈이 감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웃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자신이 할 일을 다 한 것 같은 그들의 생에 대한 여유를 읽었다

창밖의 자유분방한 젊은이들의 모습과 낙엽처럼 바스러져 죽은 잠자리의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는 모두 잠자리처럼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말겠지만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또한 삶이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

라는 단순한 말의 의미들을 되짚어 보면 신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을 반성하는 기회도 주어가며 사람들을 이 세상에서 살아가게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 세상의 바둑판도 이 세상의 바둑판도 보인다 바둑판 안에서 타인의 손으로 움직이던 바둑알의 입장에서 벗어나고 보니 그 바둑알을 움직이던 손들의 심리가 보인다

결국 선연동에서 빈 껍질로 죽어나가는 잠자리처럼 사람은 허무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의 일생도 잠자리와 마찬가지로 한없이 초라하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버럭버럭 우기며 제 잘난 맛에 살던 사람의 일생도 결국은 선연동 잠자리 같기는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좀 더 순해졌으면 좋겠다 가진 것으로 휘두르거나 가졌다고 세상을 시끄럽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최소한 눈 앞에 있는 사람을 힘들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갑질 하지 마라'


누구나 좋은 자리에 앉지 않는다 노력도 했겠지만 운이 좋아 선택을 잘해서 그 자리에 앉았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세세토록 앉아 있는 사람은 없다 앉을 때에는 영원할까 싶어도 세상에 그런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아무리 좋고 큰 것을 가졌다고 해도 남보다 나은 조건들을 가졌다고 해도 그게 상대에게 이익이 되고 욕심없이 나누는 자리라면 자랑해도 되지만 그게 아니라면 자제해야 맞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휘두르지 말고 자랑하지 말고 그냥 좀 조용히 살다가 떠나 주면 안 될까 갑질하는 사람들 역시 누군가에게는 을의 존재이고 결국선연동 잠자리처럼 바스라져서는 이세상 밖으로 사라질 존재인 것을


이전 04화주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