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시집詩集『소리북 』





주머니




불쑥 만날 반가운 마음

하나 둘 새겨 둘 옛일까지

깊숙이 접어 둔 채

지닌 것 모두 받아

행복으로 섬긴다

반만 열어 살아온 날

반쯤 닫고 살아갈 날

언제쯤 깊은 그의 속 알까





야무지지 못해서인지 늘 계절이 바뀌고 제철 옷을 갈아입거나 오랜만에 옷을 입으면 꼭 주머니 속에 뭔가 남아 있다

메모했던 쪽지가 있거나 때로는 지폐도 서너 장 있다 누구에겐가 받은 정보도 있고 손수건 휴지 동전지갑도 그대로 있다 그래서 잘 세탁된 지폐도 함께 말리거나 떡이 된 세탁물을 온통 다시 세탁하기도 한다 이렇게 간수를 잘 못하고 흘리고 다니는 버릇은 지금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

반입술 주머니를 생각했다 주머니 같은 사람을 생각했다 한번 주고 나면 다시 꺼내지 않는 그 마음을 늘 간직하는 사람이 있다 한 번도 제 속을 스스로 드러내지 않지만 언제나 한결같은 수동적인 사람이다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미워할 수도 없는 사람이다 그게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주머니는 내가 흘리고 다니는 버릇 때문에 오래된 옷에서 꺼낸 종이 한 장으로 시작된 시이지만 결국 그 종이를 건네준 사람의 품성까지 이어간 마음을 시에 표현하려고 했다

누구나 경험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철 지난 옷에서 불현듯 지나간 쪽지 속 약속을 만난다는 것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약속이 지켜졌든 아니든 그건 또 다른 문제이다 아무튼 흘려버린 쪽지 속 사연에게나 쪽지를 준 사람에게는 미안한 일이다

이전 03화말갈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