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시집詩集 『서랍 속의 시詩』





겨울




밤새도록 추운 길 걸어

수평선 넘어온 해는

웅크린 가지의 어둠 걷어내고

반짝반짝 빛나는 옷을 입힌다



방풍림 잎 위에 쌓인 눈들이

허공에서 꿈을 키우는 동안

파도가 쉼 없이 말을 건네도

바다는 끄덕끄덕 다 받아들인다



겨울이니까

함께 살아내야 하니까





이곳에 살면서 바다와 일출을 보는 것은 이제 일상이다 아마도 지나온 날들을 중 일출을 본 날과 여기 머물면서 일출을 본 날을 비교하면 아마도 비교불가일 것이다 나는 일출을 좋아한다 일출이 주는 벅찬 느낌들을 좋아한다

겨울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는 어디를 다녀왔는지 얼굴이 언제나 맑고 깔끔하다 여름 햇살이야 이글거리는 열기로 가득한 청년으로 친다면 겨울바다에 떠오르는 해는 왠지 따뜻하지만 거리가 있는 중년을 넘어선 초로의 사람이다

가릴 것 알고 넘어서야 할 것도 다 아는 단련이 되고 수련이 되어 더 이상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추스를 줄 아는 고상함을 지닌 사람이다

가까이 가기에는 어떤 벽이 있는 느낌이지만 떨어져서 바라보면 그래도 따뜻한 느낌을 지닌 것 같은 차가운 지성을 지닌 사람이다

그래도 나는 이글거리는 여름 해도 좋지만 차갑게 따뜻한 겨울 해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무더운 여름날 떠오르는 해를 반기는 마음보다야 추운 겨울에 비치는 해를 누군들 싫어할까만은 밤새 다녀온 피로함도 감춘 채 충실한 일꾼처럼 제 할 일을 하는 겨울 바다 위로 떠오르는 해는 바라보기만 해도 기쁘다

바다 역시 겨울바다가 좋다 아무도 쉽게 넘보지 않는 도도한 바다가 좋다 너도 나도 몸 담그는 여름바다보다야 가끔 심심하지 않게 드나드는 커다란 배들만 다녀가는 겨울 바다가 좋다

한겨울 바다에서는 한 점 오점 없이 인생을 살아가는 깔끔하고 차가운 성품이 느껴진다 하지만 언제나 한결같은 냉철함을 보이는 선비다

겨울 바다는 파도가 아무리 재잘거려도 사람들이 해변가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그래 그래 알았어' 그저 그냥 묵묵히 그들이 하는 말들을 다 들어주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 품이 아주 넓은 사람이다

겨울을 좋아한다는 사람이 있었다 어떻게 겨울이 좋을 수 있는지 왜 좋은지 묻지 않았지만 왜 좋을까 늘 생각은 했었다 왜냐하면 나는 추운 것을 정말 진저리 치게 싫어해서 겨울이 좋다는 그 사람의 마음이 도통 와 닿지도 궁금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에 살다 보니 지난 세월 나는 겨울을 왜 그렇게 싫어한건지 왜 그렇게 싫어했는지 어렴풋이 알것 같다 한 때 큰 수술을 하고 수술대 위에서 깨어난 적이 있다 그 때 느낀 한기는 뼈 속까지 깊이 느껴진 한기를 넘어 머리끝까지 빳빳하게 일어서는 도무지 추스를수 없는 추위로 느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추운 날이 싫고 추운 겨울은 더 싫어 했나 보다

지금 느끼는 이 겨울 바다 겨울 태양 겨울 산 겨울 아침 겨울나무 겨울 바람조차도 이렇게 좋은데, 나는 왜 그 동안 겨울을 싫어했을까 나도 이제는 내가 겨울을 싫어 했던 이 마음을 정말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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