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초보농부아내 시점
TV채널을 돌리다 보면 귀농인 인터뷰나 수억을 벌어서 성공가도를 달리는 농부님들의 이야기 등 다양한 농부님들을 만나기도 한다. 성공한 모습으로 화면에 나왔다면 좋겠지만 여하튼 우리도 그중 하나가 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2017년, 귀농인의 집 입주 후 한 달 만에 1호 입주자로서 지역방송 뉴스 인터뷰가 있었다. 비록 약속을 잡고 인터뷰 전날 내게 이야기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초보농부님은 방송출연 여부를 나와 의논했다. "의논했다"라고 기억을 하는데, 인터뷰가 진행된 걸 보니 "통보"였던 것 같다. 당연히 반대했다. 갓 귀농해 땅도 없고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닌데 무슨 이야기를 하며, 무엇보다 갑작스러운 일에 대처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하기 싫었다. 질문에 대한 사전공지가 없어 횡설수설하다 끝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방송은 편집의 힘을 빌려 매끄럽게 아주 짧게 스쳐 지나갔다.
2018년, 귀농 2년차. 집과 땅도 마련해 밤호박 농사에 힘쓰고 있던 때였다. 초보농부님은 귀농 교육과 함께 마케팅 교육도 받아 블로그의 필요성을 느끼고 귀농이야기를 기록하는 블로그를 운영 중이었다. 블로그를 본 작가님의 연락을 받고 지역 지상파 방송에 '게임 개발자에서 농부가 된 스토리'로 소개되었다. 이 또한 촬영 전날 초보농부님한테 통보받았다. 마케팅의 "마"자도 모르던 나는 열심히 농사지어 결과물로 보여주면 되지 방송에 얼굴이 공개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좋은 기회였으나 밤호박이 미친 듯이 팔려 대박이 나지도 않았고, 기대했던 효과는 하나도 없었다.
2019년, 귀농 3년차. 지금은 방영 종료된 지상파 프로그램에 출연해 편집과 기획의 쓴맛을 본 해였다. 초보농부님에게는 '철부지 남편'이라는 컨셉과 기획이 미리 전달되었던 것 같으나 나는 촬영 하루 전에 PD님을 만나 간단한 대화만 나눈 것이 전부였다. 전직 게임 개발자였던 초보농부님을 틈만 나면 게임을 하고 농사일도 대충 하는 철부지 남편, 그런 행태를 지켜보는 나는 뿔난 아내, 카리스마 아내로 포장이 되었다. 농부님이 게임을 좋아하긴 하지만 방송은 과장이 심했다. 내 입장에선 그런 기획을 알고서도 촬영을 승낙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시댁과 친정, 양가 어디에도 이번 촬영은 말할 수가 없었다. 보고 나면 어느 쪽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농부나 소상공인에게 방송 출연이란 매출상승과 홍보 효과에 대한 기대감이라고 생각한다. 재배하고 있는 농산물이 대박이 났으면 좋겠고, 가게나 식당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 귀농 초반, 초보농부님의 사전 의논 없이 진행된 방송 출연 통보에 마음이 상했지만, 어느 농부님의 방송 출연 뒤 승승장구하는 소식들처럼 밤호박도 없어서 못 파는 거 아닐까~라는 김칫국을 드링킹하며 촬영을 했었다. 방송 출연에 회의적이었으나 카메라에 불이 들어오면 누구보다 열심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려 했었다. 후줄근한 차림의 민낯 그대로라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영상들이기도 하다. 지역광고 영상을 촬영하셨던 PD님은 뾰로통한 내 표정(디폴트임)에 걱정을 많이 했는데 막상 시작하니 잘하시더라~는 뒷얘기도 해 주셨다. 하지만 방송은 리얼한 모습이 아닌 기획되고 각색된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콘텐츠로 소비되고 말았다.
물론 우리의 스토리가 대박 날 콘텐츠는 아닐 수도 있고, 나의 기대가 컸던 탓일 수도 있다. 대박 날 스토리였다면 방송에 나가지 않아도 이미 대박을 터뜨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방송출연 효과를 기대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현재는 방송보다는 유튜브에서 우리를 콘텐츠로 쓰기 위해 농부님에게 가끔 연락이 온다. 귀농 초, 방송 출연은 흔치 않은 기회였지만 좋지 못한 기억으로 남아 지금은 큰 기대 없이 상부상조의 느낌으로 촬영에 임하고 있다.
농부님이 방송 출연 제의에 대해 나와 의논했다면 당연히 "난 반댈세~"를 외쳤을 것이다. 조명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터라 달갑지가 않았을 것이고, 기대에 못 미치는 홍보효과와 매출에도 도움이 되지 않은 경험으로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를 내려놓고 작업하다 보면 재미도 있고, 한 번쯤은 경험해 볼만한 일이기도 하다.
방송 출연, 해? 말아?
난 반댈세~
하지만 카메라 불 켜지면
누구보다 열심히 할 자신은 있다!
연락 주세요~ 찡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