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트랙터, 반드시 있어야 할까?

전지적 초보농부아내 시점

by 농부아내


초보농부아내의 시점에서 우리같은 소농에게 트랙터는 농사를 지으며 반드시 있어야 할 품목은 아니었다. 트랙터를 소유하고 계신 분께 일정금액을 지불하고 로터리(땅 고르기)를 부탁하거나, 농기계임대사업소를 이용할 수도 있다. 다양한 농기계를 저렴한 금액으로 임대해 주는 곳이 농기계임대사업소이다. 지자체마다 임대 가능한 농기계가 다르기 때문에 해당 지역 농업기술센터에 문의 후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




지갑에 쿠폰이 있으면 할인받아 제품을 살 수 있으니 좋고, 없으면 서운함을 느낀다. 귀농 초반에는 있으면 좋고 없으면 서운한 쿠폰같은 존재가 트랙터였다.

귀농 3년차까지 로터리는 임대 비닐하우스가 있는 면의 이장님이나, 농부님이 속한 협회의 이사님 등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셔서 농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부탁한 사람이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여러 사람이 로터리를 부탁해 하나의 트랙터가 이곳 저곳을 다니며 땅을 갈아 엎다보니 제때 농사준비가 착착 진행이 되지 않았다. 하루 이틀 차이야 모종들도 기다려 줄 수 있지만, 우리 차례가 되기까지 기본 일주일은 대기상태여야 했다. 몇 년간 그런 일이 지속되다보니 초보농부님도 답답하셨는지 농기계박람회에도 가보고, 농기계교육도 받으면서 트랙터를 구입할 준비를 했다.




그렇게 초보농부님이 알아보고 있는 줄만 알았던 트랙터가 2020년 봄, 어느날 우리 밭에 등장했다. 땅을 갈아엎고 농사준비를 시작해야 하는데 이번에도 한참 기다려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혜성처럼 나타났다. 중고사이트를 통해 강진에서 구매했다고 한다. 초보농부아내의 눈에 비친 우리의 트랙터는 TV에 나오는 어느 농부님의 삐까뻔쩍하고 바퀴가 사람보다 더 큰 억대의 트랙터만큼 귀하고 빛나 보였다.


농사를 지으며 1년에 땅을 갈아 엎는 일이 자주 있지는 않고, 대농도 아닌 소농이라 트랙터가 필수품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인맥을 동원해 농사는 지을 수 있었지만 우리 차례가 오기까지 기다리다보면 자칫 작물을 심어야 할 시기를 놓칠 수도 있었다. 손을 놓고 기다려야 하는 것이 답답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시동만 걸면 밭을 갈아 엎어 농사를 지을 수 있으니 마음 속의 조급함도 사라지고 든든하다.





귀농해서 농사를 시작하면 쿠폰처럼 있으면 좋고, 없으면 서운한 마음으로 트랙터 구매 여부를 고민하게 된다. 인맥이 풍성해서 원하는 시기에 밭을 갈아 엎을 수 있다면 굳이 트랙터에 투자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경우 무연고지인 해남으로 귀농한 덕분에 인맥이란 정착 후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억 대의 트랙터에 비하면 보잘것 없는 금액이긴 하지만 우리의 트랙터는 은행이 주인이다. 무리해서라도 트랙터를 구매한 것은 트랙터 아르바이트를 3~4년 하면 우리가 주인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은행의 힘을 빌렸다. 하지만 초보농부님이 농사 외에도 다른 일로 바빠 아르바이트는 꿈도 못 꾸고 여전히 트랙터는 은행의 지분이 높다. 계획대로 했다면 이미 트랙터는 우리의 것이 되었을텐데 아쉬운 부분이긴하다.


농부에게 트랙터는 과연 반드시 있어야 할까? 농장의 상황과 농부의 인맥 등 여러 조건들을 살펴보고 선택은 농부의 몫이다. 그래도 먼지를 일으키며 밭을 갈고 있는 초보농부님을 보면 "초보" 글자는 떼고 찐 농부가 된 느낌이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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