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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전문가윤담헌 Apr 27. 2023

동양천문도의 미스터리한 별자리 日과 月(2)

고분 벽화에 나타나는 해와 달의 역할

중국 한나라 대에서부터 발견되는 고분벽화에 나타나는 천문 체계가 같은 한문 문화권을 통하여 고구려로 들어온 것은 사실이나 한나라 대와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서 나타나는 특징에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고구려 천문은 '삼중 천문 방위 표지 체계 (the triple indication system of astronimical direction)' 관념이 뚜렷하다는 것이다.(김일권, 고구려 고분벽화의 천문사상 특징 (고구려발해연구, 3권, 93-110 (1997))

 삼중 체계는,

1. 창룡, 백호, 현무, 주작의 사신도

2. 삼족오 형상의 일상과 두꺼비나 옥토끼 형상의 월상

3. 북두칠성, 남두육성, 동쌍삼성, 서쌍삼성

의 세 가지 종류로 방위를 표현한다는 말이다.

 이런 4방위 성상 체계는 중국에서는 드문 양태로, 중국 천문사상을 흡수하면서도 고구려의 전통체계를 수립한 좋은 예로 보고 있다.

출처 : 상기 논문

 이 중 두 번째인 삼족오 형상이 그려진 일상과 두꺼비 또는 옥토끼가 그려진 월상이 각각 동방과 서방을 나타내는 방위 표지물로써 그려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한나라 대까지의 일월상은 신화적인 모습으로 출발하지만, 위진남북조 시기를 거치면서 점차 동서 방향을 표현하는 상징물로 자리를 잡았고 이것은 당대 벽화까지 계속 이어진다.

(전호태, '한, 당대 고분의 일상, 월상, 미술자료, 48 (1991))


고대 벽화에 그려지는 해(삼족오)와 달(두꺼비) 형상

 고구려의 일월상은 한대의 신화적 모티프를 유지하고 있지만 천문 방위 표지 체계로 정형화한다는 점에서 남북조시기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덕화리 2호분 성수도에 나타낸 태양과 달

 약수리 고분에서 동편과 서편의 벽화는 각각 청룡이 해를, 백호가 달을 좇아가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렇게 고구려 고분벽화는 예컨대 동방칠수와 서방칠수가 180도 반대편에 위치하는 특징을 보이는 경우도 있으나 북두칠성을 가지고 북쪽을 표현하는 것과 해와 달을 가지고 각각 동쪽과 서쪽을 나타내는 방위 표지로 삼는 것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차운동으로 인해 정동, 정서에 위치하는 28수의 별자리는 바뀔지언정 해와 달의 동서 표지의 위치는 바뀌지 않는다. 따라서, 방수를 정동, 묘수를 정서 위치에 두는 천상열차분야지도에서 같은 분야에 포함되어 있는 일, 월 두 개의 별은 정말로 별자리가 아닌 해와 달을 나타낼 개연성이 높음을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알 수 있다. 모든 천문도에서 이런 현상이 발견되지 않고 조선 후기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천문도에서

간헐적으로 보이고 있음은 조선 후기에 들어오면서 지식인 계층의 사상체계가 성리학적, 중화사대주의적이었던 조선 전기와 차이가 나는 시기와 맞물려 있다.



 경상북도 안동 서삼동에서 발견된 고분은 출토된 동전 등의 연대를 볼 때 고려 시대인 12세기 초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분이다. 이 고분의 천장에는 청록색의 바탕에 붉은색의 점을 찍어 완성한 일월성수도가 그려져 있다. 가운데는 북두칠성이 그려져 있고, 그 옆에는 희미하게 또 다른 별 세 개가 이어져 있는데

이것은 작은곰자리 베타별인 코카브를 가운데로 하는 '북극' 별자리의 별 세 개로 판단된다. 이 북극 별자리의 별 3개를 북두칠성과 함께 그리는 것은 중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고구려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양식이라고 한다.(김일권, '고구려의 천문문화와 그 역사적 계승', 고구려연구, 23, 61-109, (2006)) 아래 그림은 서삼동 고분의 천문도를 정리하여 연결한 그림이다.

출처 : 상기 논문 p.78

 위 그림은 좌우가 바뀐 것 같지만 상하도 바뀌어 있어 결국 180도 돌려서 보면 천상열차분야지도와 같은 천문도에 나타는 방위 체계와 일치한다. 그리고 해와 달이 각각 방수 별자리와 묘수 별자리에 맞물려 안쪽에 그려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천문도에 그려지는 일, 월의 별자리가 단순히 별자리가 아닌 해, 달 그 자체임을 알려주는 강력한 증거이다.

 고려 시대의 천문도는 이외에도 고려 신종 양릉,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제작 책임자였던 양촌 권근의 큰할아버지인 권준의 무덤인 파주 서곡리 고분 등 다양한 고분에서 출토되었고 확실히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것은 22기가량 된다.

 고려시대의 일월상은 삼국시대와 달리 더 이상 신격화나 인격화되지 않은 천체로서의 모습이 28수와 함께 나타나고 역시 동서 방향을 나타내는 지표로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서삼동 고분은 위의 그림처럼 28수의 방수와 묘수 옆에 정확하게 일, 월로 보이는 점을 찍었고 어느 쪽이 일, 월인지 무리 없이 구분할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이렇듯 고구려부터 고려까지 이어진 고분에서 출토된 천문도에서 북두칠성 - 동서일월 - 사신도(28수)의 삼중 천문 방위 표지 체계가 유지되어 온 것을 알 수 있다. '려(麗)'의 천문도를 계승했다는 천상열차분야지도의 권근의 말은 바로 이러한 체계를 계승한다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동, 서 방위의 표지인 해와 달을 천문도에 나타내는 전통이 어느 순간 별자리로 잘못 이해되었고 이것이 보천가로 이어지면서 별자리로 굳어 버린 것이 아닌가 한다.

 극단적으로는 한반도, 즉 고구려부터 고려까지 이어지던 방수에 해, 묘수에 달을 그리던 문화가 중국으로 넘어갔다가 계승되는 과정에서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 중국인들에 의해 별자리로 바뀌어 버린 채로 조선으로 역수입돼버린 것은 아닐는지.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제작하던 조선 초기에 당연히 참고하였을 남송시대의 소주천문도나 '통지' 천문략 등을 바탕으로 이순지의 '천문류초'가 완성되었는데 결국 이런 악순환이 조선 후기까지 전개된 것은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런데 조선 후기 어느 시점에, 정말로 어떤 현명한 선비가 이 사실을 알아채고 이때부터 제작된 천문도 필사본에는 일(日)과 월(月)을 단순히 별이 아닌 해와 달로 인식하여 그린 것은 아닐까. 나 같은 문외한도 이 정도까지 알게 되었는데, 성호(星湖)나 담헌(湛軒) 같은 이들이 하물며 몰랐을까 싶다.



 이전에 게시글에서 정북을 나타내는 허수의 6도 지점이 동지점이었을 때의 시각이 기원전 2300년 경이었음을 보인 적이 있다. 허수의 6도가 상고의 역원임은 칠정산내편에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고, 이 시기가 비로소 28수의 7개씩 이루어진 사신도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허수, 방수, 성수, 묘수가 정확히 정북, 정동, 정남, 정서를 가리키는 시기이다.

 서경(書經) 요전(堯典)에서 이와 동일한 내용을 나타내는데 이 네 별자리를 태양이 지나가는 시점이 춘분-하지-추분-동지가 된다. 다시 정리하면 BC 2300년이 해의 위치가 허(虛)수 - 동지, 묘(昴)수 - 춘분, 성(星)수 - 하지, 방(房)수 - 추분이 되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세차 운동에 의해 위의 네 지점은 점차 서쪽으로 이동하여 지금은 더이상 허, 묘, 성, 방의 위치에 있지 않지만 현재까지도 천구상의 정북, 정서, 정남, 정동 위치에 저 네 별자리를 놓고 있다는 건 역법의 기원으로서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방위 체계로써 태양과 달이 천문도에 그려지는 것을 보면 정동인 방(房)수에 태양이, 그리고 정서인 묘(昴)수에 달이 위치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태양과 달은 천구상을 움직이는 천체이기 때문에 시간에 따라 위치는 제각각 변하고 따라서 굳이 태양의 위치를 동편에, 달의 위치를 서편에 놓을 필요는 없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BC2300년 전후 시기에 태양이 방수에 있는 추분점에 도달해 있을 때 정확히 망, 즉 180도 반대편 묘수에 있는 춘분점에 달이 위치할 때가 있었고 이것을 그린 건 아닐까. 그래서 플라네타리움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기원전 2300년 전후의 하늘을 들여다 보았다.

기원전 2300년 추분점의 위치
기원전 2300년 춘분점의 위치

위 그림을 보면 알겠지만 일(日), 월(月) 별자리 위치라고 되어 있는 곳과 매우 가까운 위치에 추분점과 춘분점이 위치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추분점의 위치에 태양을 놓고 년도를 움직여가며 춘분점 위치에 달이 놓여지는 지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기원전 2295년이 되었을 때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었다.

기원전 2295년 10월 14일 개기월식

 태양이 정확히 추분점에 위치한 것은 아니지만 근처에 머무르고 있을 때 보름달이 되는 시점에 묘수, 즉 춘분점 근처에서 개기월식이 일어난 것이다. 추분 절기이기 때문에 낮과 밤이 똑같은 시점에서 새벽녘 정동쪽에서 해가 뜨기 시작할 때, 정서쪽에서는 보름달이 월식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상고 역원의 기원이 되는 BC2300년 전후에 정확한 절기상 지점에서 일어난 드라마틱한 천문 이벤트이다.

이 개기월식은 또한 공교롭게도 새벽녘이 되는 시점에 볼 수 있는 지역이 동아시아 지역이다. 위 그림에 나타난 세계 지도에서 검은 음영 부분은 밤, 밝은 부분은 낮인데 월식 때 새벽의 경계선이 동아시아에 있는 것이다.

 월식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종료되는 시점까지 밤인 영역은 중국의 대륙 및 요하 부근 - 중앙아시아까지 그 범위가 넓다. 이 지역에서 새벽녘에 동쪽에는 태양이, 서쪽에 월식 중인 달이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이 과연 기토라 고분이나 천상열차 필사본에서, 그리고 동양천문학에 존재하는 일, 월의 방향 표시와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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