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창경궁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바위 덩어리로 취급당했으나 이제는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태조 본은 국보, 숙종 본은 보물이 되었고 만 원권 지폐의 뒷면 그림으로 등장해 이제는 누구나 그 이름을 한 번쯤 들어본 천문도이다.
이 천문도를 태조 4년에 처음으로 돌로 새겼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천문도에 조선의 개국공신인 양촌 권근이 쓴 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록상으로는 세종 때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다시 그렸다고 하고, 국보로 삼은 태조 본 또한 앞면이 아닌 뒷면에도 천문도가 새겨져 있는데 어느 면이 태조 때 새긴 것이고 세종 때 새긴 것인지에 대해 아직 논란이 있다.
숙종 본도 마찬가지인데, 숙종 시기에 만든 것은 확실하나 현재 알려진 1687년이 맞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아직까지 이견이 있다.
또한, 돌에 새겨진 권근의 글에는 이 천문도의 뿌리가 되는 평양에서 발굴된 천문도가 려(麗) 시대의 것이라 되어 있는데 이것이 고구려를 말하는 것인지, 고려를 말하는 것인지도 의견이 분분하다.
어쨌든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 중기 이후 필사본이 사대부들의 주요 소장품이었고 일본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만 원짜리 지폐에 넣어도 아깝지 않은 국보임은 확실하다. 다만,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선전할 때 다른 천문도보다 '정밀성면에서 우수'하고 '독창적'이라는 MSG가 첨가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정확성이 더 우수하다면 그것의 비교 대상이 있어야 하고, 독창적이라면 기존의 틀을 깨거나 깨지 않으면서도 확연히 다른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종대부'라는 별자리가 한 개 더 있기 때문에 독창적이라는 건 좀 우습지 않은가.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자랑스럽긴 하지만, 너무나 국뽕을 세게 맞은 천상열차분야지도. 멋진 작품인 것은 알겠으니까 이제 유감스러운 부분에 대해 찬찬히 살펴보기로 하자.
'독창적이다.'
흔히 짜장면에 고춧가루를 뿌려서 먹는 정도를 가지고 "오, 독창적인데?"라고 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스티브 잡스가 처음 아이폰을 들고 나왔을 때처럼, 배틀 그라운드라는 게임이 처음 나왔을 때처럼, 김밥도 아니고 초밥도 아닌 캘리포니아 롤을 처음 봤을 때처럼, 무언가 처음이거나, 이미 알려진 것에 알파를 더하여 처음보다 더 뛰어난 느낌으로 우리의 감각을 자극할 때 우리는 '독창적'이란 말을 쓴다.
천상열차분야지도에서 '독창적'이라며 언급하는 것이 바로 '종대부(宗大夫)'라는 별자리이다. 천시원의 한편에 종인, 종(또는 종성), 종정이라는 별자리가 있는데 이들과 함께 있는 마름모꼴의 별자리이다.이 별자리는 천상열차분야지도에는 있으나 이보다 일찍 제작된 석각 천문도인 중국의 소주 천문도(순우 천문도)에는 없다. 실제로 비교해보자.
천상열차분야지도 태조 본 앞면의 종대부 별자리
천상열차분야지도 태조 본 뒷면의 종대부 별자리 위치
중국 소주 천문도(순우 천문도)의 천시원 위치 (종대부는 없음)
순우 천문도에는 붉은색 네모 안에 있어야 할 종대부 별자리는 없고 종성, 종인, 종정이라는 세 별자리만이 존재한다.
19세기 동서양의 별자리를 동정한 구스타프 슐레겔의 '성진고원'이라는 책이 있는데 이곳에도 천시원에
종대부는 나타나 있지 않다.
성진고원에 그려진 천시원
여기까지만 놓고 본다면 중국 쪽 기록이나 이를 참고했던 성도에는 종대부라는 별자리가 없고 천상열차분야지도에는 있기 때문에 뭔가 우리만의 독창적인 별자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종대부라는 별자리가 이순지가 쓴 '천문류초'에도 없다는 것이다.
천문류초에 그려진 천시원 역시 종대부가 없다
천문류초는 세종 조의 천문학자인 이순지가 썼으므로 그가 활약한 시기는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만들고도 4,50년이 지나고 나서인데 왜 그는 천문류초에 '종대부' 별자리를 그리지 않은 것일까. 천문류초의 대부분의 내용은 송나라 때 정초가 쓴 '통지 천문략'이란 책을 따르고 있지만 책의 중간에 들어가 있는 별자리 그림들의 모양은 천상열차분야지도의 그림과 거의 유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인가 싶을 정도로 천문류초에 그려진 천시원에서 종대부는 빠져 있는 것이 보인다.
이런 일이 천문류초에만 있는 것일까? 궁금증이 생기면서 국내에서 만들어진 천문도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19세기 중반에 김정호가 여지전도와 함께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혼천전도에 그려진 천시원에는 종대부가 없다.
혼천전도에 그려진 천시원
국립중앙도서관에는 1700년대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천문도가 하나 있는데, 이 천문도의 사진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관외 이용이 가능한 자료이다. 이 천문도에 그려진 천시원에도 종대부가 보이지 않는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천문도에 그려진 천시원
2013년 제주도에서는 마찬가지로 1700년대에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천문도가 발견되었는데 기존의 천문도들은 천상열차분야지도처럼 원형 모양에 분야별로 별자리들을 배열했지만 이 천문도는 그냥 큰 화선지에 3원 28수를 좌표와 상관없이 그린 특징이 있다. 하지만 그림이 천문류초 내의 별자리 그림과 유사한 것으로 미루어 제주도로 유배를 온 선비나 일관 출신의 인물이 머릿속에 외워 놓은 별자리 그림을 필사해 놓은 것이 아닐까 한다. 더욱 특이한 것은 천구 밖에서 보는 것처럼 별자리 배치가 좌우 대칭이란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종대부라는 별자리가 없다.
제주도에서 발견된 천문도에 그려진 천시원
19세기 천문학자인 남병길의 성경(星鏡)은 신법천문도에 맞추어 별자리들의 그림을 수정하고 각 별들의 천구 좌표를 기록한 책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종대부는 없다.
성경에 그려진 천시원
황도남북양총성도에도 종대부는 없다. 18세기 이후에 나오는 천문도에 종대부는 사라져 있다.
그러니까 이 '종대부'라는 마름모꼴 별자리는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천문도에만 존재하는 것이지, 중국이 아니라 조선에서의 다른 천문도나 천문 서적에도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조선에서도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현대에 와서야 '독창적'이라고 칭송을 받는 별자리 '종대부'. 이 별자리의 정체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