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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전문가윤담헌 Oct 25. 2022

천상열차분야지도가 최고라는 착각(5)

평양에서 발견된 천문도는 정말 고구려 때 만든 것일까

 천상열차분야지도와 같은 천문도는 이전에 언급했다시피 반구형의 하늘의 모습을 2차원의 원형판에 그린 것이므로 별자리의 왜곡은 원천적으로 피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또한, 대부분의 별자리가 관념적으로 그려져 있어 작고 어두운 별로 이루어진 별자리들은 실제 위치와 비교 대조하는 것은 사실상 의미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관념적으로 그렸다고 해도 1등성 이상의 밝은 별들, 즉 우리가 육안으로 명확하게 볼 수 있는 별들의 경우 별자리를 그릴 때 기준이 되기 때문에 그 위치의 정확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이런 별자리들 중 일반인들에게도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별자리가 바로 북두칠성이다. 북쪽 하늘을 바라보면 언제나 북극을 향해 돌고 있는 북두칠성은 두브헤, 메라크, 페크다. 메그레츠, 알리오쓰, 미자르-알콜, 알카이드가 1.7-2등성으로 밝게 빛나기 때문에 어린 아이들도 국자 모양의 7개 별을 북두칠성이라고 알아볼 수 있는 별자리다.

 북쪽에 위치해서 종교적인 의미에서 삶과 죽음을 관장한다고 보았는데 동양에서는 아래 그림과 같이 두브헤부터 각각 탐랑, 거문, 녹존, 문곡, 염정, 무곡, 파군성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북두칠성의 각각의 별이름

 동양에서는 파군성(破軍星)이라 불리며 군무(軍務)를 관장했는데 제갈량이 북두칠성에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 것이 바로 이 파군성에 제사를 지낸 것이다. 이번에는 천상열차분야지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파군성, 알카이드에 대하여 언급하려 한다.



 천상열차분야지도에 대한 연구의 주요 토픽의 하나가 바로 별자리들의 관측 연대에 관한 것이다. 그 이유는 천상열차분야지도에 있는 권근의 지문에서 려(麗)의 천문도를 토대로 조선 실정에 맞게 그렸다는 문구가 쓰여져 있는데, 여기서 려가 고구려를 말하는 건지, 고려를 말하는 건 지에 대하여 갑론을박이 있는 것이다.

 경희대학교 구만옥 교수는 이렇게 엇갈리는 연구자들의 의견을 자신의 논문에 표로 정리해 놓았다.

天象列次分野之圖 연구의 爭點에 대한 檢討와 提言, 동방학지 no.140 , 2007년, pp.89 - 130, 구만옥

 여기서 각 연구자들마다 자신의 견해의 근거로 하는 몇가지가 있는데 도설에 기재된 혼효중성이나, 춘분점, 추분점, 그리고 도면상의 주요 별자리 등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나오는 데 바로 '주극원'이다. 주극원(週極圓)은 북극으로부터 지평선까지를 반지름으로 하는 가상의 원을 말한다. 즉, 주극원 내에 있는 별들은 아무리 낮아도 지평선보다 위에 있기 때문에 24시간 내내 하늘에 계속 떠 있게 되며 이런 별을 주극성이라 하고, 주극원 바깥의 별들은 떴다가 지기 때문에 출몰성이라고 한다.

주극성에 대한 개념

 천체 사진의 종류 중 하나인 일주 사진을 볼 때 북극성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려나가는 별들이

바로 주극원 내에 있는 별들인 주극성이다.

별자리 일주 사진 (찍은 이 : 위대한 천체사진가 디노)

 천상열차분야지도는 특별히 주극원을 그려 놓았는 데 바로 주극원 안에 있는 별자리가 '자미원'을 이루는 별자리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항상 이 주극원의 테두리에는 북두칠성이 그려져 있다. 즉, 북두칠성에 바로 주극원의 경계선이 있다고 보면 된다.

 아래와 같이 주요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북두칠성과 주극원을 감상해 보자.

천상열차분야지도에 그려진 북두칠성

 그런데 여기서 모든 천상열차분야지도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이 바로 북두칠성의 끝 별인 알카이드, 파군성은 주극원의 경계 바깥에 위치한다는 것이다. 주극원으로부터의 거리는 각 천문도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바로 옆 별인 미자르와의 거리의 절반정도에 주극원이 지나간다. 이렇게 일관적으로 파군성을 주극원 바깥에 그렸다는 점은 파군성을 주극성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다시 말해 파군성은 지표면 아래로 떴다 지는 '출몰성'으로 분류했다는 말이 된다.

 이 점이 중요한데 이유는 지구의 세차운동으로 인해 시간이 흐르며 북극의 위치가 변하고 이에 따라 별들의 위치가 바뀌면서 북두칠성의 고도 또한 바뀌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천상열차분야지도의 관측 연대와 위치는 바로 이 파군성이 '출몰성'이 되는 관측지와 연대로부터 유추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러한 가정을 바탕으로 주로 사용하는 플라네타리움 소프트웨어인 Starry Night Pro8을 이용해 각 연대별, 관측지별 파군성의 북중고도(北中高度)를 조사해 보았다.

 연대는 고구려 시점일 때 광개토 대왕이 만주벌판을  달리던 A.D. 400년,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한 918년(북송), 천문도를 그려 바쳤다는 오윤부가 살았던 고려 후기 1277년(원, 남송), 그리고 천상열차분야지도 태조본이 완성된 1397년이다.

각 시대별 파군성의 북중고도

 여기서 붉은 색으로 표시된 (-)고도 부분이 알카이드가 북중(北中)할 때 땅 속으로 들어가는 연대와 관측 지역이다.즉, 이 연대와 지역에서 천문도를 그린다면 알카이드가 주극원 바깥에 위치하게 되는 것이다.

 고구려 시대인 400년 경의 밤하늘에서는 한반도와 중국 어디에서도 알카이드가 지는 모습을 볼 수 없다.

난징과 같은 저위도에서도 주극성이었기 때문이다. 고려가 건국한 918년에는 난징과 시안에서 주극성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고려 후기에서는 중국의 알려진 도시에서 알카이드는 주극성이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한반도의 주요 수도 중 경주를 제외한 서울과 이북의 지역은 알카이드가 주극성으로 절대 지표면 아래로 지지 않는 별이라는 점이다. 경주의 경우 고려 후기에 와서야 출몰성이 된다.

 정리하자면, 천상열차분야지도에서 많은 다른 부분을 가지고 연대를 예측할 수 있겠지만 북두칠성의 파군성이 출몰성인 기준으로 볼 때 고구려 시대에는 절대 그릴 수 없는 천문도이며 고려 후기-조선시대에 오더라도 수도인 개성과 한양에서는 알카이드가 주극성이라는 점에서 과연 이 곳을 기준으로 한 것이 맞는지 의문이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주극성이었던 알카이드가 출몰성이 되는 이유는 세차운동으로 인해 알카이드를 포함한 북두칠성이 점점 하늘의 북극과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천구상의 북극과 별과의 각거리는 곧 그 별이 일주운동을 하는 동심원의 반지름을 뜻한다. 이 말은 그 별이 일주운동을 하는 범위가 넓어진다는 뜻이기 때문에 북중(北中)할 때 지표면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아래 동영상은 BC 5000년부터 AD 3500년까지의 세차운동으로 인한 하늘의 북극 변화를 나타낸 것이다.

팽이처럼 빠르게 도는 지구의 자전축이 점차 움직이고 있음을 볼 수 있고 북두칠성과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음도 확인할 수 있다.

세차운동에 의한 북극의 변화

 여기서 주목할 부분이 있는데 하늘의 북극이 북두칠성과 멀어지는 한편 반대편에 있는 W자 모양의 별자리, 즉 카시오페이아와 가까워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카시오페이아 자리의 별들 또한 북두칠성처럼 눈에 띄게 밝은 별들의 그룹이기 때문에 북두칠성과 함께 북극성을 찾을 때 길잡이가 되는 별자리이다. 동양에서는 카시오페이아 자리의 5개의 별이 나눠져 서로 다른 별자리를 이루고 있다.

 5개의의 별 중 W자 형의 왼쪽의 두 별은 '각도' 별자리, 가운데 감마 별은 혼자서 '책(策)' 별자리, 그리고 오른쪽의 두 별은 '왕량' 별자리의 별들이다.

 이 중 가운데 별인 카시오페이아 감마 별, '책' 별자리에 주목하자. 천상열차분야지도에는 책 별자리가 아래와 같이 주극원 안에 위치해 있다.

주극원 안에 그려진 책(카시오페이아 감마) 위치

 소주천문도에서도 비록 마멸되었지만 어렴풋이 주극원 안에 있는 책 별자리를 확인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하늘의 북극은 점차 북두칠성과 멀어져 가고, 카시오페이아 자리와는 가까워지는 반대 관계에 놓여 있다. 따라서, 북두칠성의 알카이드와, '책' 성인 카시오페이아 감마별이 어느 시점에 각각 출몰성과 주극성이 되는지를 조사해 보았다.

 이번에는 고구려 시대인 AD400년 고려 건국년도인 918년, 고려 말엽인 1277년, 그리고 조선 초인 1397년의 각각의 카시오페이아 감마별의 적위를 구해 보았다.

 적위값은 천구상의 적도를 0도, 북극을 90도로 했을 때 적도로부터 북극 방향으로 올라간 위도를 말한다.

따라서 90도에서 적위값을 빼면 하늘의 북극과 카시오페이아 감마별의 각거리 값이 나오게 된다.

이것을 거극도(去極度)라고도 한다.

 마찬가지 방법으로 북두칠성의 알카이드와 천구상 북극의 각거리를 계산하여 정리하였다.

 이 각거리 값은 해당 시기에 해당 별을 주극성으로 관측할 수 있는 최소한의 위도값이다. 다시 말해 표시된 값보다 고위도인 지역에서 주극성으로 볼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알카이드의 경우 출몰성으로 표시되었으므로 값보다 낮은 위도에, 카시오페이아 감마는 주극성으로 표시되었으므로 값보다 높은 위도에 관측자가 위치해야 한다.

 이해하기 쉽게 위의 값을 바탕으로 그래프로 도식화하고 한반도와 중국 대륙의 역사 속 주요도시의 위도를 비교해 보았다. 회색의 영역이 파군성이 출몰성, 그리고 책성이 주극성으로 표시가 가능한 연대와 위도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처럼 그릴 수 있는 시기와 지역

 남송 대 만들어진 소주천문도(1240년대)의 경우 별자리의 기준이 남송 수도인 항저우 (난징과 위도 유사)가 아닌 북송 시대 수도인 카이펑이라 주장하는데 위의 그래프를 보면 파군성과 책성의 위치를 볼 때 합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파군성과 책성의 위치가 동일한 천상열차분야지도도 위 그래프의 회색 영역에서의 시간과 위치에서 그려졌다고 볼 수 있다.

 결론을 내자면 개성과 한양, 즉 37.5도 내외의 위치는 조선 초 천상열차분야지도 태조본을 만든 시기에 와서야 파군성이 출몰성이 되고 책성이 주극성이 되는 시점에 겨우 걸쳐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주극원 근처의 별들은 권근의 지문처럼 당시 일관인 류방택에 의해 개성 또는 한양의 관측지 기준으로 수정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기준으로 삼았다는 려(麗)시대가 고구려인지 고려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증거는 수정으로 인해 없어졌다고 볼 수 있어 더 이상의 논쟁은 사실상 의미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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