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라는 별무리는 과연 무엇일까
동양의 별자리 중 많은 별들로 이루어진 별자리는 무엇일까?
정답은 기부(器府)라는 별자리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보았을 때 왼쪽 아래에 남방 칠수의 마지막 별자리인 진(軫)수 별자리 분야에 위치한 별자리인데 보다시피 어마어마하게 큰 그물 형태로 엮여 있는 모양이다. 그림에는 그물상에 별을 나타낸 점이 29개가 존재하는데 단원자의 구법보천가에서부터 기부 별자리는 32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기부의 위에 있는 별자리인 진(軫)수 별자리가 서양 별자리 중 까마귀자리인 것만 보아도 이보다 더 큰 형태의 별자리가 제시된 위치에는 있지도 않고 당연히 직접 본 것이 아닌 상상으로 그렸다고 밖에는 볼 수 없는 별자리다.
기부 별자리는 악기를 다루는 부서를 나타내는 별자리이며 밝으면 8음(악기를 만드는 8가지 재료 (금(金), 석(石), 사(絲), 죽(竹), 포(匏), 토(土), 혁(革), 목(木))이 조화를 이루어서 군신이 평화롭지만 밝지 않으면 그 반대로 점을 쳤던 별자리이다.
19세기 예조판서이자 관상감 제조였던 남병길은 신법 보천가에 맞춰 각 별자리의 천구좌표를 기록한 성경(星鏡)이라는 저서에서 당당하게 토사공과 기부 별자리는 현재 없다(今無)라고 썼다.
이렇게 미스터리로 남겨진 기부라는 별자리는 도대체 정체가 무엇일까.
천상열차분야지도가 아닌 다른 천문도에는 기부가 어떻게 그려졌는지 보지 않을 수 없다. 소주천문도에는 비록 시간에 의한 마멸이 있으나 기부 별자리를 그린 흔적이 있다.
위의 천상열차분야지도에서 고루와 진 별자리의 위치를 볼 때 그리고 32개의 점을 찍은 것으로 볼 때 기부 별자리를 나타낸 것이 확실하다. 그런데 다른 별자리처럼 별들을 선으로 엮은 것이 아니라 단순히 점들의 집합체로 그려 놓았다. 천상열차분야지도에서 그물 모양으로 엮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비슷한 사례가 있는데 바로 플레이데스(M45) 성단을 나타내는 묘(昴) 별자리이다.
플레이아데스는 산개성단으로 눈이 좋은 사람은 맑은 날 최소 7개 정도가 모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묘 별자리는 이렇게 별들이 무리 지어진 모습으로 선을 엮어 그리고 있는 것이다.
32개의 별로 이루어진 기부 별자리도 묘 별자리와 같은 사례일 수 있다. 그렇다면 저 위치에 '기부' 별자리로 볼 만한 어떠한 천체가 있는 것일까?
기부의 바로 옆에는 십자가 모양의 별자리가 보이는 데 이것은 고루라고 하는 별이다. 후술 하겠으나 이 고루 별자리는 남십자자리일 가능성이 큰데, 남십자자리는 현재 '십자가'라고 동양에서 불리며 그 위에 새롭게 고루라는 별자리가 등장한다. 아니 동양 천문학에 십자가라니? 자세한 연유는 나중에 다루도록 하겠다.
남병길이 기부 별자리가 지금은 없는 별자리라고 했던 이유는 당연하다. 세차 운동에 의해 지금의 남십자자리와 그 일대의 위도의 하늘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이를 대신해 남십자 자리보다 조금 더 위에 새로운 '고루' 별자리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위 그림에서처럼 조선 중기 이후 새롭게 만들어진 고루 별자리의 오른쪽 옆은 깨끗한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십자가'로 명명된 원래 고루 별자리 옆에는 NGC3372가 있다.
그 유명한 '용골자리 에타(eta carinae)' 성운.
용골자리 에타 성운은 각거리가 최대 2도인, 즉 달의 지름보다 4배나 큰 거대한 성운이다. 오리온 대성운보다도 4배나 크고 더 밝은 성운이다. 이 성운 안에는 호문쿨루스 성운, 열쇠구멍 성운 등의 성운들이 겹쳐 있고 수많은 울프-레이예 별과 트럼플러 산개성단 등이 밀집되어 있는 즉, 별들이 요동치는 전쟁터와 같은 곳이다.
용골자리 에타 별 자체도 얼마 안 있어 울프-레이예 별로 진화할 가능성이 있는 극대 거성이다. 이 별은 불과 180년 전인 1843년에는 -0.8등급으로 밝게 빛나 온 하늘에서 시리우스 다음으로 밝은 별이었다가 다시 어두워져 7등급으로 내려갔던 별이다.
이 성운 안에는 WR22, WR25 같은 이미 울프-레이에 별로 진화한 별들이 즐비하다. 즉, 아직 울프-레이예 별로 진화하지 않은 용골자리 에타 별도 불과 200년 만에 별의 밝기가 왔다 갔다 했는데 수천 년의 역사시대 동안 이 안에 있는 별들은 얼마나 요동쳤을까? 때로는 한 개가 아닌 여러 별들이 반짝였다 어두웠다를 반복하는 모습이 마치 하늘에서 별들이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을까?
용골자리 에타 별이 카노푸스(노인성)를 넘어 시리우스만큼 빛났다는 것이 상상이 가질 않는다. 만약 그만큼 밝았다면 이 별과 함께 있는 호문쿨루스 성운도 매우 밝게 빛났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모습을 기원후 4세기까지는 낙양같은 북반구의 주요 지점에서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기부'라는 별자리가 실은 이 용골자리 에타 성운을 나타낸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과거에는 '고루'별자리와 함께 보였으나 지표면 아래로 내려간 '기부'별자리. 그래서 천상열차분야지도에는 직접 보지 못한 기부 별자리를 관념적으로 넣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