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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전문가윤담헌 Oct 25. 2022

천상열차분야지도가 최고라는 착각(2)

종대부는 종대부가 맞을까?

'종대부'에 대해서 논하려면 먼저 종대부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시기가 언제인가부터 고찰할 필요가 있다. 현재 남아있는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석각본들은 마멸이 심해 별자리와 윤곽선들만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이다.

14세기 태조 본을 탁본한 것이 현존하는데 이 탁본에도 천시원 안에 있는 마름모 꼴의 종대부는 보이나 별자리 이름까지 확연히 구분하기는 어렵다.

천상열차분야지도 태조 본 탁본

결국 석각본 외에 천상열차분야지도 중 가장 오래된 천문도는 선조 4년에 만들어진 목판본이라 할 수 있다.

알려진 바로는 숙종 본도 이 목판본을 기초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목판본의 천시원 안을 보면 종대부 별자리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보다 더 오래된 천문도에서 종대부 별자리가 나온다면, 어디선가 누군가가 소장하고 있는 삼국시대, 고려시대 천문도에 종대부가 있다면 정말로 놀라운 사실이겠으나, 현재 시점으로 '종대부'란 이름을 육안으로 식별 가능한 가장 오래된 천문도는 1571년 천상열차분야지도 목판본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 목판본 (선조 4년 (1571))

 이상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1.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천시원 한편에 있는 마름모꼴의 종대부라는 별자리가 있다.

2. 그러나 태조 본 석각천문도나 탁본 모두 심한 마모로 인해 마름모꼴은 보이나 '종대부'라는 이름은 확인할 수 없다.

3. 거의 동시대에 제작된 이순지의 천문류초에는 종대부 별자리가 빠져 있다.

4. 천상열차분야지도 탁본 중 '종대부'라는 이름이 확인되는 것은 선조 때 제작된 목판본이다.

 종대부 별자리가 있는 천문도는 천상열차분야지도 외에 일본의 천문도에서 확인할 수 있어 천상열차분야지도가 일본에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예전에 아스트로노트라는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었던 오길순 님의 게시판에 공유되던 일본 도야마(富山)현 다카오카(高岡) 시립도서관에 소장 중인 천문도에도 종대부가 나타나 있다.

도야마현 소장 천문도 (1824-1843 제작 추정)

 또한, 일본의 천문도 제작자로 유명한 시부가와 히루미라는 사람의 천문도에서도 마찬가지로 종대부를 확인할 수 있다.

시부가와 하루미 천문도 (1677)


 따라서, 종대부(宗大夫)라는 별자리는 조사한 천문도와 문헌에 비춰 보면 천상열차분야 지도를 만든 14세기부터 18세기 초까지 또는 선조 시기 제작된 목판본을 기점으로 16세기부터 18세기 초까지 조선과 일본의 몇몇 천문도에서만 국한적으로 발견된다고 볼 수 있다.

 서양 별자리의 경우에도 1930년 국제 천문 연맹에서 88개의 별자리를 공인하기 전까지 별자리를 새로 만들거나, 합치고 나누는 일이 잦았다. 이는 동양 천문학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후술 하겠지만, 동아시아에서 볼 수 없는 남반구 지역의 하늘은 예수회 선교사인 탕약망(아담 샬) 등이 등장하여 서양에서 쓰는 별자리로 채워 넣은 것처럼 특정한 공인 기구가 없는 이상 별자리를 새로 만들거나 수정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종대부는 누구에 의해, 무슨 이유로 천문도에 삽입된 것일까? 단순히 하늘의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순수한 과학적 창의력으로 만들어진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동양 천문학 자체가 각 별자리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것을 이루는 별의 밝기 변화와 거동 및 행성, 유성, 혜성 등의 침범을 가지고 길흉화복을 점쳤던 점성학이기 때문이다. 특히, 단순히 보통 사람들의 운명을 점치는 게 아닌 천자 또는 제후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제왕학이었다. 따라서, 국가적 사업으로 제작되었던 천상열차분야지도에 존재한다는 것은 정치적 의도와 의미를 가지고 인위적으로 삽입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 별자리가 사용되었던 조선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종대부(宗大夫)'를 설명하는 정확한 문헌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천시원에 종대부와 함께 있는 종(성)(宗(星)), 종인(宗人), 종정(宗正)등의 유사한 별자리명이 있기 때문에 이들과 비슷한 의미로 해석하고 있는 것 같다.


종성(宗星)은 종실 별자리로, 임금의 친척이면서 임금 곁에서 보필하는 신하를 뜻하고, 종정(宗正)은 임금의 친족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어르신으로, 종실 내에서 벌어지는 일의 질서를 다스리는 역할을 한다. 종인(宗人)은 종친 별자리로, 임금의 친척에 해당하는 별자리이다. 종묘의 제사나 의례를 관리하는 일을 주관한다.

(출처 : 문화콘텐츠 닷컴)


 이렇듯 천시원의 '종'으로 시작하는 세 개의 별자리가 왕실이나 귀족을 뜻하기 때문에 '종대부' 또한 '종'을 종실로 보고, 대부는 큰 어른이란 뜻이므로 왕실의 높은 어른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다만, 위에서 보는 것처럼 왕실의 큰 어른을 뜻하는 '종정'이라는 별자리가 있는데

왜 같은 의미의 '종대부'라는 별자리를 또 만든 것일까.

 이렇게 생각하던 중 과거에 얼핏 보았던 신문 기사가 하나 생각났다. 연합뉴스 2012년 6월 1일 자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동래부지의 대마도 항목에는 '대마주는 옛적 계림(鷄林, 신라)에 예속돼 있었으나

 어느 때 왜인이 점거했는지는 알 수 없다.

 (중략) 세상에 전하기를 도주 종씨(島主宗氏)는 그 선조가 원래 우리나라 송씨로,

 대마도에 들어가서 성을 종씨로 바꾸고 대대로 도주가 됐다'라고 기록돼 있다."

(출처 : 연합뉴스, '대마도주 조상, 宗氏 아닌 한국인 宋氏')


송(宋)씨였던 사람이 대마도에 들어가서 성을 종(宗)씨로 바꾸고 대마도주가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간단하다. 갓머리 부수 밑에 들어가는 나무 목(木)을 보일 시(示)로 바꾸면 되기 때문이다. 고려가 멸망했을 때 왕(王)씨 귀족들이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전(全, 田), 옥(玉)씨로 바꾸었다는 설이 너무도 유명한 것처럼

송씨가 획만 살짝 바꿔 종씨로 바꾸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여기서 일본 도야마현의 천문도를 다시 들여다보자.

일본 도야마현 천문도에 나타나 있는 종대부

옆에 보이는 종, 종정 별자리는 원래대로 보일 시(示)를 잘 썼지만, 종대부와 종인은 보일 시가 아닌 나무 목(木)을 쓴 것 같다. 이 천문도를 제작한 사람은 현대인보다도 한자를 몰랐을 리도 없는데 왜 유독 종대부만 마치 송대부(宋大夫)처럼 써 놓았을까.

 만약 종대부가 아니라 송대부(宋大夫)라고 한다면 이것은 조선 시대의 정치사상적 헤게모니와 아귀가 들어맞는다. 조선은 신진 사대부에 의해 건국되었고 성리학을 맹신하여 교조화시킨 사림 세력이 다스렸던 나라이기 때문이다. 성리학의 교조는 누구? 바로 송(宋) 나라 큰 어른(大夫), 주희이다. 


"군자-소인의 구분에 가장 민감했던 노론의 영수 송시열은

"오늘날은 송나라가 남쪽으로 내려갔을 때와 같다.

 주자가 남송 조정의 부름에 응한 것은 복수에 뜻을 두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조정의 부름에 응하는 사람들은

 주자의 뜻을 자신의 뜻으로 삼아야만 할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17세기 조선을 남송 시대에 대입했다."

(출처 : 유성운, <사림, 조선의 586>)


 17세기 조선 성리학의 거두인 송시열의 말이다. 당시 조선을 남송에 대입할 정도로 주희를 신봉하던 사림. 그러고 보니 송시열도 송씨이다. 송시열이 누구인가. 17세기에 태어나 한 세기 동안 조선의 성리학의 교조를 담당한 송자(宋子)가 바로 이 사람이다. 숙종 본 천상열차분야지도가 만들어진 해는 1687년으로 1680년 경신환국으로 서인이 권력을 잡은 후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되면서 1689년 기사환국으로 사사되기 전까지 송시열이 노론의 영수로서 만년에 권력의 정점에 도달했을 때 제작되었다.

 그렇다면 조선 성리학의 큰 기둥이었던 송씨 큰 어른을 기리기 위해 별자리를 하나 만들었나 의심하는 건 지나친 비약일까. 한국 전쟁이 100년이 채 안되었는데 금강산을 암각으로 도배하고 있는 북쪽의 상황을 본다면 그렇게 큰 비약도 아니라고 본다. 주자가 되었든 송자가 되었든 유교라는 종교의 우두머리였던 사람에게 별자리 하나 정도는 새겨주는 건 별로 어렵지 않은 '조선'다운 일일 것이다.

 요컨대, 종대부라는 별자리는 천상열차분야지도에만 국한되는 별자리이고 따라서 당시 조선의 유림들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삽입된, 결코 순수하지만은 않은 별자리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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