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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전문가윤담헌 Jun 09. 2023

해와 달이 알려주는 삼국의 정확한 위치

삼국사기를 악용하던 대륙삼국설의 호흡기를 떼어 보자

 삼국사기의 천문 기록, 특히 일식 기록을 가지고 고구려, 백제, 신라의 위치가 한반도에 있지 않고 대륙에 있었다는 주장을 아직도 볼 수 있다. 이미 지난 글에서 일식의 식분이 높아 최적으로 보였다는 곳과 알려져 있는 삼국의 수도에서의 일식 관측의 식분 차이가 개개의 일식마다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서술한 바 있다. 특히 이러한 주장이 더 의미가 없는 이유는 역사서에 기록된 천문 현상은 그 책이 일관들이 써서 바치는 '측후단자'가 아닌 이상 실제로 관측에 의해 기록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혼재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문기록이 모두 독자적으로 관측한 사실만을 기록한 것이고, 그래서 그 기록들로부터 각각 고구려, 백제, 신라의 일관들이 관측했던 위치를 유추해 낼 수 있다고 믿고, 그 위치가 우리가 알고 있는 한반도가 아닌 중국 대륙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아래 두 가지 천문 기록에 대해 답을 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어쩌면 일식보다도 관측 위치가 한반도인지 대륙인지를 극명하게 나눌 수 있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서기 186년인 고국천왕 8년에 아래와 같은 기록이 있다.


'8년(서기 186) 여름 4월, 을묘에 형혹(熒惑, 화성)이 심성(心星) 자리에 머물렀다.

5월, 그믐 임진에 일식이 있었다.'

- [네이버 지식백과] 고국천왕 [故國川王]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심성은 지금의 전갈자리 알파별인 안타레스를 말한다. 적색 거성으로 지금도 여름철 남쪽 하늘에 보이는  주황색 별이 안타레스이다. 붉은 별의 대표 격인 안타레스에 화성이 만나는 것은 큰 전란의 징조로 여겼다. 더욱이 그 만나는 방법이 화성이 역행하여 머무는(守) 형태일 때는 더 그렇다. 당시 화성의 겉보기 운동을 살펴보면 이와 정확히 들어맞는 것을 알 수 있다.

186년 화성 역행

 이것은 고구려뿐만 아니라 전지구적으로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따라서 후한서 천문지에도 같은 기록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中平三年四月,熒惑逆行守心後星

중평 3년 4월, 형혹성이 역행하여 심후성에 머물렀다'

- 후한서 천문지 (한문고전 자동번역서비스의 번역문을 자체 편집)


그런데 후한서 천문지에는 위의 기록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연이어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十月戊午,月食心後星。占曰:「為大喪。」後三年而靈帝崩

10월 무오일에 달이 심후성을 먹었다. 점사에 이르기를 큰 상이 있으리라 하였다.

3년 후 영제가 세상을 떠났다.'

- 후한서 천문지 (한문고전 자동번역서비스의 번역문을 자체 편집)

186년 달-안타레스 엄폐 현상

 위 그림과 같이 186년 음력 10월(양력 11월 27일)에 정확하게 안타레스를 달이 가리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이 현상에 대하여 후한서 천문지에는 기록이 되어 있으나 삼국사기에는 기록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이유는 아래 동영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날 달이 안타레스를 가리기 시작했을 때 지금의 서울의 위치에서는 이미 해가 뜬 시점이었다. 달과 안타레스가 점점 가까이 접근하는 것까지만 보이다가 이후엔 동이 트이고 만 것이다. 그러나, 흔히 대륙 삼국설을 운운하는 분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고구려의 수도가 멀리 대륙의 몽골 쪽에 있었다면 이 엄폐 현상을 관측하지 못했을 이유가 없다. 같은 시간에 한반도보다 서쪽인 몽골의 울란바토르는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삼국사기, 후한서 천문지가 각자 실측에 의한 기록을 했다고 봤을 때 중국 쪽에서는 달이 안타레스를 가리는 현상을 보고 기록할 수 있었기에 후한서 천문지에 기록이 있는 반면, 한반도 또는 한반도와 같은 경도상의 북부 만주 지역에 있었을 고구려에서는 해당 현상을 보지 못해 삼국사기에 기록이 없는 것은 매우 '합당하다'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사례는 한 가지가 더 있다. 통일신라 성덕왕 시절인 735년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 을해년(乙亥年, 735)

봄 정월 형혹성(熒惑星 화성(火星))이 달을 범(犯)하였다.

○ 김의충(金義忠)을 당(唐) 나라에 보내어 신정(新正)을 하례하였다.

2월 부사(副使) 김영(金榮)이 당(唐) 나라에서 졸(卒) 하니 광록 소경(光祿少卿)을 증직(贈職)하였고, 김의충이 돌아올 제 조칙(詔勅)을 내려 패강(浿江) 이남의 땅을 신라에 획급(劃給)하였다.

- 삼국사절요 (제작-동방미디어)


 735년은 당나라 현종 때인 개원 23년이다. 개원성세라는 말이 있듯이 이 때는 당 현종이 아직 양귀비를 만나기 전이라 치세를 이루었던 시기였다. 위의 삼국사절요 내용에서 보이는 것처럼 이 해에 당나라가 신라에게 패수(대동강) 이남을 신라의 영토로 확급한다는 말이 있다. 이 패수(浿水)는 압록강으로 보는 견해도 있고, 청천강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물론 윤내현, 이덕일 같은 사람은 요하보다도 서쪽인 난하를 패수로 보기도 한다.

 이미 서술한 바 있지만 역사 기록에서 범월(犯月)과 입월(入月)은 그 의미가 다르다. 범월은 달과 천체의 거리가 초 단위로 가깝게 근접한 상태를 의미하지만 입월은 아예 달이 특정 천체를 완전히 가리는 '엄폐'현상을 의미한다. 따라서, 화성-달 간의 엄폐 현상이 있었을 때 과거 사람들은 '형혹입월(熒惑入月)' 또는 '월식형혹(月食熒惑)'이라 기록하였고, 엄폐가 아니라 매우 가까이 근접하였을 경우 '형혹범월(熒惑犯月)'이라고 기록하였다.

 735년의 기록은 '범월'이기 때문에 달과 화성이 매우 근접하였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이 기록은 실제로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구당서, 신당서 본기 및 천문지나 오행지, 자치통감, 개원점경 등 중국 문헌에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 천문 현상이다. 어떤 사서에서 발췌를 했는지 모르나 삼국사기에만 기록이 되어 있는 독자 관측기록이다. 따라서 삼국사기 천문현상의 독자관측기록이 있는가를 물어본다면 자긍심을 가지고 답할 수 있는 사례인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날 형혹범월로 기록된 현상은 '범월'이 아닌 '입월' 현상이었다.

 위 동영상처럼 화성을 달이 가리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공교롭게도 엄폐 현상이 발생하는 시기가 서울 위치에서는 해가 뜨는 시각과 맞물려 있었던 것이다. 신라의 수도인 경주에서 보았다면 해가 뜨는 시점에 화성과 달이 옆에 가까이 붙어 있는 상태까지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아침이 밝기 전에 화성이 달에 간신히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을 수도 있지만 별을 보는 사람이라면 한밤중엔 맑았다가도 새벽이 되면 안개나 구름 때문에 철수하는 경우는 흔하다는 것을 알 것이고 겨울에 그 시간까지 일관이 올빼미의 눈으로 철저히 관측했으리란 보장도 없다. 무엇보다도 화성과 달이 눈에 띄게 엄폐 현상을 이루었던 모습을 보지 못해 '형혹입월'이라 못하고 '형혹범월'이라 기록한 것은 관측자가 엄폐 현상을 볼 수 없는 곳에 있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735년 달-화성 엄폐 시 관측 가능 지역(음영 부분)

 이렇게 엄폐 현상이 일출 시각과 맞물렸던 한반도와는 달리 중국 대륙 쪽은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각이었으므로 엄폐 현상을 관측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현상이 중국 사서에 없는 것은 의외다. 굳이 옛날처럼 전조현상으로 본다면 불과 2년 뒤인 737년에 드디어 당 현종이 양귀비를 만나 그동안의 치세를 말아먹기 시작하는 시기이니 말이다.

 요컨대 실제로는 '형혹입월' 현상을 기록한 유일한 나라인 신라에서 '형혹입월'이 아닌 '형혹범월'로 기록하였다는 것으로 볼 때 당시 신라의 영역이 어디까지였나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기록이다.


 사실 한반도와 중국 대륙은 황해를 사이에 두고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위의 두 사례처럼 달이 화성과 안타레스를 가리는 시각과 해가 뜨는 박명 시각이 맞물리는 간발의 시간차로 관측이 가능한가를 구분할 수 있는 절묘한 사건이 벌어졌다. 삼국사기 일식기록을 왜곡하며 대륙에 삼국이 있었다고 운운하던 사람들은 똑같은 삼국사기 기록인 사례에 대하여 설명해야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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