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새긴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
아래 도표는 삼국사기 각 본기의 일식 기록 중 실현된 기록에서 각각의 케이스별로 최적 관측지라고 주장하는 지역 중 한 곳과 고구려, 백제, 신라의 수도에서의 최대식분을 나타낸 그래프이다. 여기서 일식이 실제로는 아예 없었거나 있었어도 관측이 완전히 불가능한 지역은 제외하였다.
고구려 기록에서 평균 식분이 높은 지역은 바이칼 호 동부를 들 수 있는데 가장 근접한 곳 중 '보르자'라는 지역이 있어 이곳을 택하였고, 백제는 평균 식분이 높은 지역에 포함된 북경을, 신라는 양쯔강 유역 중 우한을 좌표로 삼았다. 각 지역의 특정 좌표에서의 식분 값은 Elipsewise.com의 JavaScript Solar Eclipse Explorer를 사용하였으며, 그래프의 오른쪽에는 각 지역에서의 식분 값들의 평균과 표준편차를 기재하였다.
그래프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각각의 일식들의 식분 값들의 트렌드가 평균 식분이 높다는 지역과
삼국의 수도가 거의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1) 관측 가능했던 일식들은 평균 식분이 높은 지역과 삼국의 각 수도에서 모두 관측 가능했고
2) 대부분 식분이 낮을 때는 두 곳 모두 낮고 식분이 높을 때는 두 곳 모두 높다는 것이다.
물론 개별적으로 차이가 큰 곳도 있는 경우가 있지만 비교적 위의 결과를 따르고 있고 중국에서만 보이고 한반도에서는 볼 수 없던 일식은 신라 상대에 딱 1건만이 존재한다.
각 지역의 식분 평균은 두 지역 간 차이는 대략 0.1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즉, 평균 식분이 높은 지역과 수도 간의 일식의 차이는 크지 않다. 따라서, 삼국사기 일식 기록을 이용해 만든 평균 식분도에서 평균 식분이 높다고 지정한 지역에서만 국한적으로 일식을 관측하였다는 증거는 없다.
거의 모든 일식에서 삼국의 각 수도에서도 동시에 관측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표준편차는 그 지역의 평균 식분을 이루는 각각의 식분 값들의 산포도를 나타낸다. 이 값이 클수록 값들의 편차가 큰 들쭉날쭉한 데이터들이라는 뜻이고, 표준편차가 0이라는 것은 모든 데이터 값이 평균과 일치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표준편차가 작을수록 평균값의 신뢰도가 높게 된다.
고구려의 경우 국내성이 평균 식분이 높은 지역인 바이칼호보다 표준편차가 낮다. 백제와, 신라 상대는 비슷하며 신라 하대는 평균 식분 값이 높은 지역은 한반도 남부이지만 오히려 양쯔강 유역인 우한 지역의 표준편차가 더 낮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표준 편차가 0.3 가량으로 산포도가 매우 넓음을 알 수 있다. 각각의 일식들의 식분 값들이 들쭉날쭉한데 이것을 묶어서 평균을 내어 등고선을 만드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동아시아 역사에서 천자국(天子國)을 자임한 나라들이 가장 힘썼던 부분이 바로 역법이다. 절기와 날짜를 알고 일식과 월식이 언제 발생하는지를 추산해 내어 역서를 만들어 제후국이나 주변국에 내려주는 반사(頒賜)를 하는 일은 천자국으로서의 위엄과 자존심을 지켜내는 대단히 중요한 작업이었다. 박창범의 논문에서 삼국사기의 일식 기록의 실현율이 중국 사서의 일식 기록의 실현율보다 높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아이러니를 가지고 있다.
중국의 사서에 비실현 일식 기록이 많은 이유는 일식을 실제로 관측한 것이 아니라 역원(曆元)의 개념으로서 일식을 추보하는 작업이 있었다는 반증이다. 비실현 기록은 뚱딴지같이 완전히 있지도 않은 일식보다 일식이 있는 것은 맞는데 관측 위치가 동아시아를 벗어나 있는 일식이 대부분이다. 즉, 일식의 시각은 맞추었지만 관측이 가능한가 아닌가는 당시 역법의 수준 상 정확하게 맞추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역법의 역원에서부터 태양과 달의 공전 주기를 헤아린다면 모월 모일에 해와 달이 천구상에서 만난다, 즉 일식이 있을 것이란 계산은 충분히 할 수 있었으니 이것을 넣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것은 근세에 와서도, 조선왕조실록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일식이 있지만 일식이 보이지 않을 것도 같이 예측하여 구식을 행하는 어떠한 준비도 하지 않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보지 못한 일식도 '일식이 있다'라고 기록하거나 '지하에서 일식이 있었다'라고 기록한다.
삼국사기의 일식 기록의 실현율이 높고 비실현 기록이 낮은 것은 그만큼 일식을 추보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보이는 일식만 적었거나 중국의 사서에서 확실하게 일식을 관측한 것으로 보이는 데이터만 첨입한 결과로 볼 수도 있다. 중국의 사서에는 일식이 있었음을 삼국사기처럼 단순히 '일유식지(日有食之)'라고 표기하지 않고 때로는 식분도 적고, 천구상 위치가 어딘지도 적고, 모양도 적고, 심지어 보지 못해 들어 알았다는 것까지 상대적으로 일식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서술하였기 때문에 취사선택이 가능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일식 기록의 실현율이 높다는 것은, 결코 자랑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역사서에 일식을 넣는 이유는 단순히 천문현상의 기록 외에 아래의 두 가지가 있다.
1) 어떤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두고 천변과 연관을 두어 서술하기 위한 목적
2) 시간의 이정표
현재 우리는 서력기원을 사용하기 때문에 각 나라의 역사적 사건의 연표를 서기를 기준으로 나래를 세워 비교할 수 있다. 하지만 삼국사기는 시간의 표시를 임금의 재위년과 간지(干支)로만 표시하였기 때문에 특정 간지의 초하루 날짜에서의 일식 기록은 삼국사기를 읽게 될 개념 있는 식자에게는 매우 좋은 시간의 이정표가 될 수 있다.
박창범 박사 이후로 이 평균 식분도라는 개념으로 삼국사기를 헤집은 폐해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삼국사기의 개별적인 일식 기록이 삼국사기라는 사서 안에서 어떠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고찰을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둘째로, 사서의 기록이 모두 실제로 관측에 의해 기록된 것이라는 전제를 깔았다는 것이다.
각자 수십 또는 수백 년의 차이가 있는 일식들을 나래비를 세워서 어디가 수도니 어디가 영토니, 이런 놀이나 하라고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했을까. 우리가 알다시피 없는 사료 쥐어짜고 파고 파내서 만든 것이 삼국사기이다.
사마천이든, 사마광이든, 김부식이든 평생을 바쳐서 몸 망가지면서 사서를 만든 목적을 간과하고 단순히 식분의 평균으로 대륙이 영토였다 세력권이었다 주장하고 있는 걸 보면 사실 좀 유치하다는 생각도 든다.
삼국사기의 일식 기록을 하나하나 들춰봤을 때 평균 식분이 높다는 지역에서만 일식을 관측하였다는 증거는 없었다. 이렇게 삼국사기 일식 기록에 대한 자료를 보다가 모 유튜버의 동영상을 보았는데, 내용인즉슨 박창범 박사의 평균 식분도를 만드는 방법을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는 프로그래머를 크몽을 통해 섭외하여 동아시아의 각 왕조별 일식 기록의 평균 식분도를 만들어 해당 일식 기록의 평균 식분이 높은 지역과 수도가 겹치는 지를 확인한 것이다.
결과는 놀라웠는데 신라, 고려, 조선, 원, 일본(카마쿠라), 일본(에도), 청나라의 경우에만 비교적 맞았고 그 외 다른 왕조의 일식 기록에서는 불일치를 보인 것이다. 대부분의 일식 기록이 맞지 않다면 평균 식분 이론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정상인 줄 알았는데 이 유튜버는 기상천외하게도 적중했던 왕조의 지배 민족이 '동이족'이고 한족이 수립한 왕조들은 불일치했다는 점에서 '동이족'이 뛰어난 과학 수준을 가졌었다고 결론을 내린다.
심지어는 어떤 왕조의 전체적인 평균 식분이 낮은 이유는 표본 수가 많기 때문이라는 합당한 논리를 세워놓고는 평균 식분과 수도가 불일치하는 왕조는 단순히 한족이고 수준이 낮아서라는 아이러니한 논리를 내세운다. 크몽의 프로그래머를 공짜로 쓰지는 않았을 텐데, 본인이 얻은 데이터가 예상과는 다르자 선입견을 앞세운 뇌피셜로 아전인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대륙 삼국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환단고기 오성취루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NASA 일식 사이트나, 스텔라리움을 사용하며 자신의 주장을 편다. 사실(事實)은 사실일 뿐, 그것을 해석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한 번 더 깨닫게 된다.
우리의 역사를 하늘에 새긴 것은 맞지만, 정작 보고 있는 것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