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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전문가윤담헌 Sep 27. 2023

조선왕조실록 일식 不관측 기록 정리(3) 인조~영조

조선왕조실록은 아메리카에는 조선이 없었음을 증명한다

1. 인조 1년 10월 1일 - 1623. 10. 23.


일식이 있었다. 태백이 낮에 나타났다.

朔戊午/日有食之, 太白晝見。


 일식은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를 벗어나 보다 동쪽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관측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이제 인조부터는 실록과 함께 좀 더 자세히 실시간에 가깝게 들여다볼 수 있는 사료인 승정원일기가 있다. 승정원에 이 날 날씨는 맑았고 아래와 같이 기술되어 있다.


'□□궁에 있었다. 일식으로 인해 상참과 경연을 중지하였다.'

上在□□宮。以日食, 停常參·經筵。


 한 가지 더 기술되어 있는데,


'사헌부에서 일식으로 인해 내관의 가자개정에 관한 계를 정지함'

府啓, 內官加資改正事, 以日食姑停。

 

 일식으로 인하여 상참, 경연도 중지하고 사헌부에서도 고해야 할 일을 정지하고 미루고 잇는 것을 볼 수 있다. 비록 구식제는 없었으나 일식을 상당히 염두에 뒀다는 측면에서 의미는 있다. 그럼 과연 일식을 보았기 때문에 이랬던 것일까.


인조실록도 또한 무수한 일식 관련 기록이 있는데, 이 중 승정원일기  인조 6년(1628) 12월 1일 기록을 보자.


상이 경덕궁에 있었다. 상참과 경연을 중지하였다.


上在慶德宮。停常參·經筵。


지하일식 재계로 인해, 계한 바가 없음.


以地下日食齋戒, 無所啓。


 위의 인조 1년 기록과 거의 똑같다. 다른 부분은 일식을 '지하 일식'으로 기록했다는 것이다. 즉, 지하에서 일어날 일식, 관측이 불가능한 일식이지만 어쨌든 일식이 이루어지므로, 상참과 경연도 중지하고 계(啓)한 관청이 없다는 것은 업무를 중지하고 미루었다는 것이다.

 인조실록에 나오는 일식 기록은 이와 같이 일식의 관측 유무와 상관없이 일식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는 날에는 자동으로 업무를 중지하고 인조가 재계하는 절차를 밟은 것이다. 반정으로 오른 인조가 스스로 본인의 정통성 콤플렉스로 인해 굳이 안 해도 될 일까지 했을 수도 있다.


2. 인조 3년 2월 1일 - 1625. 3. 8.


미시(未時)에 태백(太白)이 낮에 나타났다. 일식(日食)이 있었다.

未時, 太白晝見, 日食。

 아메리카를 정통으로 훑고 간 일식이다. 아메리카 외에는 그 어느 대륙에서도 관측이 불가능하다. 승정원일기를 보자.


일식이 있었는데, 지하에서 이루어졌다. 미시(未時)에 태백성(太白星)이 사지(巳地)에 나타났다. 밤 2경에 유성(流星)이 상태성(上台星) 아래에서 나타나 성성(星星) 위로 들어갔는데, 모양이 주먹 같았고 꼬리의 길이가 3, 4척 정도였으며, 붉은색이었다.

日有食之, 食在地下, 未時太白, 見於巳地, 夜二更, 流星出上台星下, 入星星上, 狀如拳, 尾長三四尺許, 色赤。

- 승정원일기 인조 3년 을축(1625) 2월 1일(경진) 맑음


 일식은 지하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기록하였다. 아메리카 대륙은 조선으로서는 지하이이므로 아메리카 대륙은 조선의 세력권이 아니었다는 명백하고 확실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3. 인조 10년 9월 1일 - 1632년 10월 13일


일식이 있었다.

朔丙申/日食。


이 날도 한반도 동쪽 태평양부터 북아메리카 까지가 관측 지역이다.

승정원일기를 보자.


출처 : 한국고전종합 DB


 일식이 있었다는 내용 자체가 없다. 심지어 관상감에서 유성이 나타났었다는 보고가 있는 기사가 있지만

일식이 있었다는 말 자체가 없다. 더불어 마지막 기사에는 구식제가 아닌 삭제를 친히 행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이 날 일식이 있는 것 자체를 인지하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4. 인조 17년 5월 1일 - 1639. 6. 1.


일식 하였다.

丁巳朔/日食。


승정원일기를 보자.


5. 숙종 9년 1월 1일 - 1683. 1. 27.


지하(地下)에 일식(日食)이 있었다.

朔癸卯/地下日食。


 승정원일기를 볼 것도 없이 실록에서 대놓고 지하일식이라고 기술하였다.

  이쯤 되면 실록이 아메리카에 조선이 있음이 아니라 없었음을 증명하는 정확한 기록물이 되는 것이다.



6. 숙종 25년 8월 1일 - 1699. 9. 23.


일식 하였다.

朔丙寅/日食。


일식이라는 단어 한 개만 쓰여 있다.

승정원일기를 보자.

 이 날 날씨는 흐렸고 상참과 경연을 정지한 내용은 있으나 여느 때와 상관없이 승정원과 사간원에서 계가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지막 기록을 보면 영의정 유상운이 전날 인견 후 중풍에 걸린 듯한 증상을 보인 내용이 있는데 같은 날과 다음날(2일) 비변사등록을 보면 얼마나 열일을 하는지 그 기록이 있다. 일식이 있을 때 할 수 있는 행동으로는 도저히 보기 어려운 일들이다.


7. 영조 10년 4월 1일 - 1734. 5. 3.


일식(日食)이 있었는데, 지하(地下)에 있어서 보이지 않았다.

朔丙午/日食, 在地下不見。


지하에 있어서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일식의 그림자가 지나간 곳을 보자.

출처 : Eclipsewise.com


 조선 영조 때 입장에서 위의 그림자 영역에 해당하는 곳은 모두 지하(地下)이다! 조선이 정확히 어디 있었는지 정확히 기술해 준 조상님이 고마울 따름이다.


8. 영조 10년 10월 1일 - 1734. 10. 26.


일식(日蝕)하였는데, 지하(地下)에 있어 보이지 않았다.

朔癸卯/日食, 在地下不見。


 지하일식이다. 그럼 이번에는 그림자가 어디를 지나갔을까.

출처 : Eclipsewise.com


10. 영조 16년 11월 1일 - 1740. 12. 18.


일식(日食)이 있었다. 밤에 어떤 별이 헌원성(軒轅星) 아래로 흘러갔는데, 빛깔은 붉은색이었고, 그 빛이 땅을 비추었다.

朔戊辰/日食。 夜有星流于軒轅星之下, 色赤, 光照地。


 이 날 일식은 공교롭게도 한반도가 아닌 일본에서부터 시작하여 북아메리카까지 관측 가능했던 일식이다.

실록이나 승정원일기를 보면 일식을 염려하여 영조가 친히 국문하려던 것과 여타 업무 등도 모두 중지하며 재계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일식을 보았다는 어떠한 기술도 없다가 승정원일기 11월 7일 자 본문에 주강을 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윤광의가 아뢰기를, 잡아야 하는데 먹지 않아 재이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일식이 있을 때는 더러 땅에서 먹고, 낮에는 나타나는데 밤이 보이지 않는 것은 똑같다.'

光毅曰, 當食而不食, 不爲災云。日食之時, 或食於地, 晝之見, 夜之不見, 一也

- 승정원일기 영조 16년 11월 7일


 여기서 윤광의(尹光毅)는 수찬이자 경연 검토관이었다. 이번 일식이 마땅히 일어나야 할 일식이었으나 그렇지 않았다는 보고가 있다. 즉, 일식이 있을 것이라 추보한 것이 실패하여 관측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기술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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