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과 가을, 음악이 채우는 계절의 빈자리
여름과 사랑
나는 사계절 중 여름이라는 계절을 가장 싫어했다. 온몸을 녹이는 것 같은 더위와 언제 소나기가 내릴지 모르는 변화무쌍한 날씨 때문이다. 여름은 늘 피곤하고 불쾌했다. 하루하루가 더위와 습기에 짓눌려 흐릿하게만 느껴졌고, 내 인생에 있어서 여름은 언제나 최악의 계절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작년 여름만은 특별했다. 내가 가장 싫어하던 계절인 여름에 가장 소중한 선물이 찾아왔다. 그 선물은 여름날의 뜨거운 열기를 넘어서, 내 모든 하루를 빛나게 만들어 주었다. 무더운 여름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왔던 그 순간은 그 어떤 것보다 값지고 소중하게 남아있다.
그날도 여느 여름날처럼 무더운 기운이 가득했지만, 카페 안은 조금 더 특별한 온기로 가득했다. 처음 만난 그가 조금 어색한 미소와 함께 내 앞자리에 앉았을 때, 나는 마음속에서 무언가 떨리는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만큼 그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고, 나는 그가 내게 어떤 이야기를 건넬까, 하는 생각에 긴장했지만, 두려운 마음을 숨기고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갔다. 다행히 대화는 술술 풀렸고, 우리는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며 시간을 잊고 빠져들었다. 그때, 우리가 나눈 음악 이야기는 단순한 취향을 넘어서, 우리 둘 사이에 느껴지는 어떤 깊은 이끌림의 언어가 된 것 같았다. 마치 음악이 우리를 서로의 세상으로 초대하는 것처럼, 그와 나는 점점 더 가까워져 갔다. 그렇게 나는 무더운 여름날 사랑에 빠졌다.
우리는 간단히 저녁을 먹고 근처 이자카야로 자리를 옮겼다. 이자카야에서 검정치마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잔잔하면서도 묘하게 여운을 남기는 멜로디는 나의 감정과 섞여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는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의 대화는 이자카야에서 나와서도 계속되었다. 신도림역 광장으로 자리를 옮긴 우리는 맥주 한 캔을 들고 다시 이야기의 꽃을 피웠다. 그러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예상치 못한 비는 여름답게 강렬했고, 우리는 황급히 피할 곳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지하철 플랫폼으로 자리를 옮겼다. 소나기는 대화의 리듬을 타게 했다. 여름밤, 낯선 공간에서 나눈 대화는 점점 깊어졌고, 그 순간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특별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가까워졌다. 좋아하는 음악, 여름에 대한 추억,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이 만남까지. 소나기가 멈추고 공기가 한결 선선해졌을 때쯤, 우리는 이 만남이 단순한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렇게 여름이 내게 최악의 계절에서 가장 특별한 계절로 바뀌었다.
우리는 종종 그날을 이야기하며 웃는다. 여름밤의 소나기와 검정치마의 음악, 그리고 낯선 이였던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떠올리며 말이다. 여름은 더 이상 내가 싫어하는 계절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사랑이 시작된 계절,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만들어준 계절로 남았다.
여름 추천곡 ‘검정치마 - Everything’
가을에 지는 노을
가을은 내게 여유와는 거리가 먼 계절이다. 요즈음 가을은 여름의 무더위가 이어지곤 해서 온연한 가을의 날씨는 빠르게 흘러간다. 가을의 선선한 바람과 노을빛이 깊어질수록 내 일정표도 점점 더 빼곡해졌다.
가을과 음악은 언제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계절이 주는 낭만 때문일까 아니면 짙은 감성 때문일까. 이맘때가 되면 공연과 행사가 끝없이 이어졌고, 나는 언제나 바쁘게 가을을 맞이했다.
지난가을은 그야말로 바쁜 일정의 연속이었다. ‘요기조기 음악회’를 비롯해 ‘인천음악창작소’, ‘콘텐츠 토크콘서트’, 그리고 ‘콘텐츠 외래 강연’까지 수많은 공연과 행사가 겹쳐 있었다. 행사 시즌과 맞물려 더욱 분주했던 가을은 나에게 쉴 틈 없는 계절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활동이 단순히 바쁜 일로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안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사람들과의 소중한 교류를 통해 성장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특히 ‘요기조기 음악회’에서는 우수상을 수상하며 큰 성취감을 느꼈다. 음악을 통해 아티스트분들과 소통하며 얻은 에너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이러한 찰나의 순간들은 가을의 바쁜 일상 속에서도 내가 왜 바쁘게 살아 가는지에 대한 이유를 다시금 확인하게 해 주었다. 이처럼 매 공연과 강연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것을 단순히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을 표현하고, 더 깊이 나에 대해 몰입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래서 나에게 가을은 단순히 바쁜 계절이 아니라, 가장 뿌듯하고 알찬 계절로 남아있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일정 속에서도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만남, 무대에서의 경험, 그리고 나 자신과의 끊임없는 도전이 있었기에 그 시간들은 더욱 특별했다. 매 순간이 값지고 의미 있었기에, 가을의 끝자락에서는 피로보다는 성취감과 행복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가을 추천곡 ‘원필(DAY6) - 행운을 빌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