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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여유 May 11. 2024

평가받는 용기

달콤함과 씁쓸함 사이



"1번 누구지? 그래, 영숙이부터 읽어봐."


교수님 말씀에 수강생 한 명이 일어나 시를 낭송하고 자리에 앉는다. 교수님의 평가가 바로 이어진다.


"해설을 빼라고. 아름답게 그려놨으면 충분해. 굳이 '아름답다'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덧붙일 필요 없어. 시를 읽은 사람이 직접 느끼게 써야지." 


하고 싶은 말을 두 배로 늘리는 것이 산문이라면, 시는 하고 싶은 말을 감추는 것이란다. 보이지 않는 것을 깨닫고 감동을 느끼도록 말이다. 그러고 보니 산문을 쓸 때는 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고 세밀하게 묘사하려 했다. 구체적으로 나열해서 읽는 사람 머릿속에 상황이 그려지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익숙한 산문과 달리, 많은 것이 축약된 시를 읽을 때는 곱절의 시간이 필요했다. 제대로 이해하고 해석했는지 의심했다. 그럼에도 놓지 못하고 흘끔 들여다보았다. 늘이는 것과 줄이는 것, 정반대로 보이는 두 문학 장르는 오묘한 매력으로 나를 사로잡는다.


수강생은 30명이 넘지만, 칠판에는 21번까지 이름이 적혀있었다. 순서에 따라 시가 낭송될 때마다, 뒤에 이어질 교수님 말씀이 궁금했다. '상징적이고 아슬아슬한 이미지 표현이 좋았다'거나, '화자가 흔들리면 안 된다'거나, '시의 매듭을 세심하게 바꿔야 한다'라는 등의 평가를 노트에 받아 적었다. 문득 학창 시절 수학 시간이 떠올랐다. 개념을 익히기도 전에, 정신없이 칠판에 적힌 풀이 과정을 노트에 옮겨 적던 날들. 나중에 집에 가서 공부하면 될 거라고 생각하며 손을 바삐 움직였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그때와 다르지 않다. 풀이를 보며 개념을 이해했던 것처럼, 다른 수강생들의 시를 통해 시의 시옷부터 배워간다.


첫 수업이 끝났다. 21편의 시를 가방에 담아 집에 돌아왔다. 수업에서 누군가는 박수를 받았고, 누군가는 지적을 받았다. 칭찬은 달콤하다. 좀처럼 질리지 않는다. 반면, 듣기 쓴 말은 필요를 알면서도 들을수록 마음이 결린다. 자신이 쓴 글을 공개적으로 평가받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의 글 역시 평가 대상이 된 경험이 있다. 제일 처음은 지금은 사라진, 오래전 참여했던 글 모임 멤버들로부터였다. '여유'라는 이름으로 블로그에 에세이를 처음 올렸을 때 그들에게 받았던 격려와 지지를 기억한다. 덕분에 꾸준히 글을 썼고, 점점 자리를 잡으며 2년이 지난 지금까지 매주 한 편 글쓰기를 이어오고 있다. 반대로 의욕이 꺾인 적도 있었다. 인터뷰집 프로젝트 작업을 할 때였는데, 당시 들었던 혹평은 너무도 씁쓸했다. 글 고민으로 며칠을 괴로워하며 끙끙 앓았다. 결국 여러 고민 끝에 방향을 수정해서 글을 작성했고, 인터뷰집은 순조롭게 완성됐다. 흔적으로 남은 생채기를 마주하며 돌보는 시간이 필요하기는 했지만.


강의실을 나오기 직전에 들었던 놀라운 이야기 하나가 생각났다. 수강생 대부분이 몇 년째 수업을 듣고 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15년 동안 수업을 수강한 분도 있단다. 이미 시인으로 등단한 사람도 강의실 곳곳에 앉아있다고 했다. 3개월 단기 과정으로 생각하고 호기롭게 등록한 나와 수강생들 사이에 큰 강이 흐르는 느낌이었다. 가져온 시를 다시 읽어 내려갔다. 시마다 달콤함과 씁쓸함이 섞여있는 듯했다. 매주 시를 발표하고, 평가받으며, 자신만의 시를 완성해 나가는 수강생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마음 한구석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보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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