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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혼잣말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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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우 Jan 09. 2023

B01호의 시간

01

01 

 

  길고 딱딱한 열차가 어두운 구멍을 질주한다. 

  소년은 눈을 감은 채 지하를 통과하는 순환선 안에서 판단한다. 비 오는 밤 얻어맞고 지하철 마지막 칸 좌석에 뻗어있는 자신이 폐기물 같다고. 통화하는 목소리와 휴대폰으로 메시지 주고받는 소리들이 잡음처럼 끼어들었다. 살아있기에 낼 수 있는 소리들. 소년은 구겨져 있는 자신이 반은 죽어있다고 단정한다.

 열차가 멈췄다. 이때 지하철이 쿨렁거렸고 소년은 왼쪽 갈비뼈 부근에서 통증을 느꼈다. 좌석과 맞닿아있어 열차가 움직일 때마다 아파왔다. 통증이 아직 살아있다는 신호 같아서 기분이 더럽다.   

 나 이제 내려. 집에 가서 다시 전화할게.  

 다정한 목소리가 소년의 옆을 무심히 스쳐간다. 소년은 일그러진 미소를 짓는다.  다른 사람의 말이 귓구멍으로 기어 들어오는 것도 아직 멀쩡하다는 신호 같아서 더럽다. 사십대 후반의 사내가 들어와 소년의 맞은편에 앉는다.    

  소년은 눈을 떴다. 열차가 출발하면서 쓰라림과 함께 지난날 친구의 목소리가 갑자기 떠오른 것. 소년에게 친구는 한 명뿐이었다. 

  너는 잘 지내라. 

  낮은 목소리가 소년의 머릿속에서 되살아난 듯 울렸다. 소년은 무기력하게 눈을 감는다. 어두운 머릿속에서 쓸쓸하게 반짝이다 꺼져가는 목소리.        

  

  비 오는 날 2호선 마지막 순환선의 열차 마지막 칸. 네 명의 승객들은 모른다. 의자에 윗몸을 쓰러뜨린 소년이 하나뿐인 친구의 목소리, 그러니까 친구를 떠올렸다는 것을. 소년은 모른다. 전 역에서 승차한 사내가 충혈 된 눈이 자신을 향해 있음을.   

 사내는 소년을 보자마자 바로 맞은편에 앉았다. 한 발을 내딛자마자 소년의 교복이 사내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가방 옆에 달린 주머니에서 칫솔 앞머리가 비죽 나와 있다. 마른 어깨에 매달린 가방에는 교과서나 문제집이 아닌 다른 것이 담겨 있을 듯.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사내는 모르고 짐작해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눈을 뗄 수 없어서 지켜보고 있는 것뿐. 열차가 다섯 개의 역을 통과하는 동안 소년은 움직이지 않았다. 의자에 무방비 상태로 상체를 쓰러뜨린 모습이 유기된 인간 같다. 맞서 싸울 힘을 갖추기 직전, 포식자에게 당하다 가까스로 도망친 미숙한 동물처럼도 보였다. 

  어쨌거나 모르는 사이, 지나칠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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