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혼잣말 16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우 Jan 09. 2023

숫눈

06


06


  "고마웠다. 봄마다 윤이 생일 함께 기억해줘서."

  "내일 바다에 가실 거에요?"

  "과연 윤이가 좋아할까? 윤이가 거기에 있는 것도 아닌데. 얼마 전 아침, 윤이 방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 방에는 빛이 가득했지. 빛과 어둠을 방에 가둘 수는 없어. 그런데 나는 방에 윤이의 시간을 가둬놓고는 윤이를 기억하겠다며 봄바다에 갔어. 윤이가 태어난 걸 어떻게든 기념하겠다는 듯이."

  선생님은 희미하게 웃었다. 왠지 그런 확신이 들었다. 이제 선생님은 윤과 나를 친구로든 그 무엇으로든 연관 짓지 않을 거라는 걸. 

   "윤이 남긴 그림은 해석하셨어요?"

  마침내 나는 이 질문을 했다.    

  "너도 한번 볼래?" 

  선생님을 따라 처음으로 윤의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윤이 없는 윤의 방. 한 사람을 위한 박물관처럼 윤의 물건들이 잘 보관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방 가운데 있는 그것이 선생님이 말한 그 그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동안 이게 윤이 남긴 그림이라고 생각했어. 방문을 열었을 때 바로 이게 보란 듯이 방 가운데에 있었거든. 윤이 숨긴 의미를 찾아보려고 했지. 그런데 이제 아니야. 저건 저 상태로 윤이 방에 있었어. 그러다 여기로 옮겨진 것 뿐이야. 이제 윤이를 놓아주어야겠다. 생일마다 그 바다에 가지 말아야겠다. 이렇게 마음먹은 후에 저것이 저것 자체로만 보이더라. 더 이상 그림이 아니야."  

  한동안 그것은 선생님에게 현대미술처럼 난해한 현대유서였다. 나에게는 불안과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이제 선생님은 그것을 그것 자체로만 받아들인다. 그리고 선생님 옆에서 그것의 정체를 보며 나는 안도한다. 안도하는 내 옆에서 선생님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지금도 모르겠어. 왜 윤이가 중3이 되면서 학교를 거부하고 방에 틀어박혔는지. 그 무렵 이혼을 해서 상처 받았나 짐작했어. 하지만 윤이가 그 때문이 아니라는 거야. 그냥 자기를 내버려 두래.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니. 학교에 찾아가서 윤이 학교 생활을 물어봤지. 윤이는 아이들과 잘 지냈고 배려심이 좋았대. 오히려 선생님이 윤이한테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묻는 거야. 나는 솔직하지 못했어. 엄마가 선생님인데, 아들이 학교에 적응 못한다는 걸 인정하기 싫었어. 윤이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 게임에 빠질 나이에 고급 취미를 가진 내 아들이 좋았어. 그런데 방에 틀어박히면서 그렸던 그림도 다 버렸더구나."             

  선생님 댁을 나오기 전, 나는 앵두나무 가까이 갔다. 작은 앵두꽃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 꽃샘추위를 버티지 못하고 떨어진 걸까. 그렇다면 자연스러운 낙하가 아닐는지.  


  사랑한다. 

  혼자 술을 마시니까 심심해서 그랬던 건지 그도 아니면 취했던 건지 나는 이런 글을 올렸다. 윤이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꾹 눈을 감고 있어도 그 표정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나는 윤의 사이버 추모 공간에 선생님이 쓴 것과 같은 글자를 올렸을 뿐인데. 글을 삭제했다. 술을 마시다가 어느 사이엔가 나는 쓰러져 잠들었다. 꿈을 꾸었다. 어두운 바다 위에서 부표탑만이 푸른 불빛을 뿜어내고 있다. 나를 태운 추모함은 그 부표 일대를 느리게 선회한다. 두 번째 선회를 마칠 때쯤 어둔 바다가 아가리를 크게 벌리며 나를 집어삼키려고 했다. 구역질을 하며 깨어났다. 창을 열어 모가지를 내밀었다.

  그 체온, 수상하지 않았어?

 수상한 바람이 얼굴을 할퀴고 지나가는 밤. 나는 혼자 자취방에서 선생님의 행동을 돌아본다. 전쟁에 바로 투입되는 것도 아닌데 입대 소식이 손까지 잡아줄 일이야? 잘 다녀오라고 말하며 내 손을 잡아주던 선생님의 손은 따뜻했다. 그래서 수상하다. 혹시 선생님은 모든 걸 용서하기로 다짐한 게 아닐까.  

  거슬러 가면 선생님이 처음 내 이름을 부른 점도 수상했다. 선생님은 아들과 동갑인 학생이 죽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다 못해 신격화하는 내용에 끌렸던 건 아니었을까. 어머니를 애틋하게 추억하는 저런 아이라면 아들에게 도덕적인 친구 역할을 해 줄 거라고 기대한 건 아니었을까. 나는 4층 바닥으로 혼잣말 같은 웃음을 끌끌 흘린다.   

  이 밤 창틀에 모가지를 내민 나의 몰골을 윤은 어떻게 그렸을까. 거친 마티에르로 표현하지 않았을까. 무모한 가정인 걸 알면서도 나는 상상해본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이 그런 말도 했다. 하나뿐인 아들이 미술을 좋아한다면서 나하고 형제 같은 친구가 될 거라고 그랬다. 선생님 댁에는 프린트 명화도 윤의 그림도 없었지만 화가들의 도록이나 미술 서적이 책장에 가득했다. 나는 낯선 미술가들의 이름을 외웠고 혼자 있을 때 작품을 검색했으며 처음으로 혼자 미술관에 갔다. 최소한의 노력을 했던 것이다. 선생님의 명으로 열일곱 살 여름, 윤의 세계를 방문하면서 형제든 친구든 그 무엇이라도 되려고 했다. 하지만 윤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어서 내 자리로 돌아가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죄의 검은 뼈를 분골해서 뿌려 놓은 듯한 밤, 나는 운다. 여름처럼 뜨겁게 슬퍼져서 눈물이 난다. 사실 가장 수상한 것은 내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고백을 하고 싶은 봄밤이다. 

  내 고백을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이전 15화 숫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