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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혼잣말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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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우 Jan 09. 2023

숫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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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나."

   선생님이 허리를 굽혀 앵두나무 가지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 선생님과 나는 마당으로 나왔다. 술기운이 들어가니 시원한 바람을 맞고 싶다면서 선생님이 마당으로 나오자고 한 것이다. 

  "여기, 앵두꽃이 하나 피었어."   

  “선생님은 구석에 있는 것을 잘 찾아내시네요." 

  "내가?"

  "저는 구석에 있는 학생이었는데 제 이름을 불러 주셨잖아요. 중학교 3학년 봄날 국어 시간에요. 그 후부터 공부를 했어요. 잘하고 싶은 의지가 생겼거든요. 미래에 내가 사회에 꼭 필요한 인물이 될 것 같고...그랬어요."

  나는 말하면서도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였다.   

  "자기자신이 있는 곳이 중심이야. 너 자신한테 꼭 필요한 사람이 되면 되는 거야." 

  "네, 근데 사회가 저를 부르네요. 군대도 사회니까요. 저 다음 주에 군대 가요. 친구 한 명한테만 말했는데 다른 애들도 알아버려서 저 몰래 저희들끼리 여행 일정을 잡았나봐요. 이 녀석들이 저한테는 내일 속초 가자고 통보하네요."

   다음 주에 입대하는 건 사실이다. 학과 친구 세 명이 나 모르게 1박 2일 속초 여행 일정을 잡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 날짜가 내일은 아니다. 슬쩍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작은 앵두꽃을 조심스럽게 손끝으로 쓰다듬고 있었다. 이번 봄에도 나는 선생님과 바다를 다녀올 줄 알았다. 윤을 기억하는 동반 외출에서 내가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선생님이 묻지 않아도 내가 먼저 입대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다. 그리고 윤의 생일 즈음 휴가 나오겠다고 말해야지. 아니 이런 목적의 외출은 그만두겠다고 뜻을 전해야지. 선생님의 전화가 걸려올 때쯤 나 혼자 이리저리 생각을 굴렸다. 하지만 오늘까지 선생님이 전화를 하지 않자, 나는 구석에 몰려 자수하는 소년범처럼 먼저 연락을 한 것이다. 그래놓고도 갈지 말지 망설이고 어디까지 말을 해야 할지 고심하며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  

  "건강히 잘 다녀와. 친구들하고도 멋진 여행 추억 만들고."

   선생님이 두 손으로 내 손을 감싸 잡았다. 따뜻했다. 나는 시선을 회피하다가 구석에 핀 앵두꽃과 눈이 마주친다. 연약하게 흔들리는 작은 꽃잎이 꼭 내 마음 바닥을 구경하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내일 혼자 17번 부표가 떠 있는 바다로 찾아갈까. 사실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 아까 묻고 싶었다. 만일 선생님이 신이라면 인간을 용서하시겠어요? 선생님은 남의 일처럼 가능하다고 대답할지도 모른다. 그럼 선생님이 신이 아니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하나뿐인 아들을 죽음으로 내몬 가해자가 뒤늦게 자백하면 용서하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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