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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혼잣말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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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우 Jan 09. 2023

숫눈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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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마웠다. 봄마다 윤이 생일 함께 기억해줘서."

  "내일 바다에 가실 거에요?"

  "과연 윤이가 좋아할까? 윤이가 거기에 있는 것도 아닌데. 얼마 전 아침, 윤이 방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 방에는 빛이 가득했지. 빛과 어둠을 방에 가둘 수는 없어. 그런데 나는 방에 윤이의 시간을 가둬놓고는 윤이를 기억하겠다며 봄바다에 갔어. 윤이가 태어난 걸 어떻게든 기념하겠다는 듯이."

  선생님은 희미하게 웃었다. 왠지 그런 확신이 들었다. 이제 선생님은 윤과 나를 친구로든 그 무엇으로든 연관 짓지 않을 거라는 걸. 

   "윤이 남긴 그림은 해석하셨어요?"

  마침내 나는 이 질문을 했다.    

  "너도 한번 볼래?" 

  선생님을 따라 처음으로 윤의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윤이 없는 윤의 방. 한 사람을 위한 박물관처럼 윤의 물건들이 잘 보관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방 가운데 있는 그것이 선생님이 말한 그 그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동안 이게 윤이 남긴 그림이라고 생각했어. 방문을 열었을 때 바로 이게 보란 듯이 방 가운데에 있었거든. 윤이 숨긴 의미를 찾아보려고 했지. 그런데 이제 아니야. 저건 저 상태로 윤이 방에 있었어. 그러다 여기로 옮겨진 것 뿐이야. 이제 윤이를 놓아주어야겠다. 생일마다 그 바다에 가지 말아야겠다. 이렇게 마음먹은 후에 저것이 저것 자체로만 보이더라. 더 이상 그림이 아니야."  

  한동안 그것은 선생님에게 현대미술처럼 난해한 현대유서였다. 나에게는 불안과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이제 선생님은 그것을 그것 자체로만 받아들인다. 그리고 선생님 옆에서 그것의 정체를 보며 나는 안도한다. 안도하는 내 옆에서 선생님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지금도 모르겠어. 왜 윤이가 중3이 되면서 학교를 거부하고 방에 틀어박혔는지. 그 무렵 이혼을 해서 상처 받았나 짐작했어. 하지만 윤이가 그 때문이 아니라는 거야. 그냥 자기를 내버려 두래.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니. 학교에 찾아가서 윤이 학교 생활을 물어봤지. 윤이는 아이들과 잘 지냈고 배려심이 좋았대. 오히려 선생님이 윤이한테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묻는 거야. 나는 솔직하지 못했어. 엄마가 선생님인데, 아들이 학교에 적응 못한다는 걸 인정하기 싫었어. 윤이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 게임에 빠질 나이에 고급 취미를 가진 내 아들이 좋았어. 그런데 방에 틀어박히면서 그렸던 그림도 다 버렸더구나."             

  선생님 댁을 나오기 전, 나는 앵두나무 가까이 갔다. 작은 앵두꽃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 꽃샘추위를 버티지 못하고 떨어진 걸까. 그렇다면 자연스러운 낙하가 아닐는지.  


  사랑한다. 

  혼자 술을 마시니까 심심해서 그랬던 건지 그도 아니면 취했던 건지 나는 이런 글을 올렸다. 윤이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꾹 눈을 감고 있어도 그 표정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나는 윤의 사이버 추모 공간에 선생님이 쓴 것과 같은 글자를 올렸을 뿐인데. 글을 삭제했다. 술을 마시다가 어느 사이엔가 나는 쓰러져 잠들었다. 꿈을 꾸었다. 어두운 바다 위에서 부표탑만이 푸른 불빛을 뿜어내고 있다. 나를 태운 추모함은 그 부표 일대를 느리게 선회한다. 두 번째 선회를 마칠 때쯤 어둔 바다가 아가리를 크게 벌리며 나를 집어삼키려고 했다. 구역질을 하며 깨어났다. 창을 열어 모가지를 내밀었다.

  그 체온, 수상하지 않았어?

 수상한 바람이 얼굴을 할퀴고 지나가는 밤. 나는 혼자 자취방에서 선생님의 행동을 돌아본다. 전쟁에 바로 투입되는 것도 아닌데 입대 소식이 손까지 잡아줄 일이야? 잘 다녀오라고 말하며 내 손을 잡아주던 선생님의 손은 따뜻했다. 그래서 수상하다. 혹시 선생님은 모든 걸 용서하기로 다짐한 게 아닐까.  

  거슬러 가면 선생님이 처음 내 이름을 부른 점도 수상했다. 선생님은 아들과 동갑인 학생이 죽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다 못해 신격화하는 내용에 끌렸던 건 아니었을까. 어머니를 애틋하게 추억하는 저런 아이라면 아들에게 도덕적인 친구 역할을 해 줄 거라고 기대한 건 아니었을까. 나는 4층 바닥으로 혼잣말 같은 웃음을 끌끌 흘린다.   

  이 밤 창틀에 모가지를 내민 나의 몰골을 윤은 어떻게 그렸을까. 거친 마티에르로 표현하지 않았을까. 무모한 가정인 걸 알면서도 나는 상상해본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이 그런 말도 했다. 하나뿐인 아들이 미술을 좋아한다면서 나하고 형제 같은 친구가 될 거라고 그랬다. 선생님 댁에는 프린트 명화도 윤의 그림도 없었지만 화가들의 도록이나 미술 서적이 책장에 가득했다. 나는 낯선 미술가들의 이름을 외웠고 혼자 있을 때 작품을 검색했으며 처음으로 혼자 미술관에 갔다. 최소한의 노력을 했던 것이다. 선생님의 명으로 열일곱 살 여름, 윤의 세계를 방문하면서 형제든 친구든 그 무엇이라도 되려고 했다. 하지만 윤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어서 내 자리로 돌아가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죄의 검은 뼈를 분골해서 뿌려 놓은 듯한 밤, 나는 운다. 여름처럼 뜨겁게 슬퍼져서 눈물이 난다. 사실 가장 수상한 것은 내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고백을 하고 싶은 봄밤이다. 

  내 고백을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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