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첫 만남은 쉽지 않았다.
각자의 삶이 바쁘게 지나가 좀처럼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쉽게 주지 않았다.
소개를 받아 연락을 한지 어느덧 한 달이 가까워졌을 때 우리는 정말 운 좋게 퍼즐이 맞아 11월 중순에 기다리던 첫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만나기 전날, 우리는 처음에 연락했을 때처럼 떨리는 마음으로 그날만을 기다렸다.
얼굴도 모른 채 한 달 동안 가상 속에서 만나다가 대망의 날, 현실의 우리가 마주하게 되니 긴장되지 않을 수 없었다.
"저희 드디어 보네요."
"그러게요. 벌써 떨리네요."
"명호씨 미리 얘기해요. 지금이라도 도망치고 싶다면"
"제가 도망을 왜 가요."
"막 만났는데 못생겼다고 모른척하면 안 돼요.!"
"안 그래요,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너무 긴장을 한 것일까, 살짝 불안한 마음이 있는 것일까.
외모에 자신이 없는 듯한 그녀의 말은 나와의 만남이 무척 긴장이 되고 있음이 한눈에 봐도 느껴졌다.
나 또한 어떤 사람일지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대망의 날, 나는 그녀가 사는 지역으로 갔다. 만나기로 한 시간은 3시.
그녀에게 향하는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 나는 창밖의 풍경보다 휴대폰의 시계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1초.. 1분.. 10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그녀와 가까워지고 있는 게 느껴졌고 괜스레 긴장을 떨쳐내려고 저 멀리 하늘을 바라봤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새 그녀와 약속장소에 도착,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만 정작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자기 보고 도망치지 말라고 하더니 반대로 그녀가 도망친 게 아닌지 불안했다.
그때였다, 내가 불안해하고 있는 걸 알았는지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죄송해요, 20분 정도 늦을 거 같아요. 집 앞에 큰 교회가 있는데 딱 나오니까 그 교회서 사람들이 우르르 나와서 차가 막히네요. 죄송해요.ㅠㅠ"
하늘에서 우리가 빨리 만나면 재미가 없으셨는지 우리에게 조금의 여유 시간을 주셨다.
긴장 좀 풀고 상대방을 만나기 전에 충분한 여유로운 마음을 갖고 나서 서로를 맞이하란 뜻 같았다.
그 덕분에 나는 순간적으로 느꼈던 불안한 마음을 녹여 먹이며 그녀와 만날 달달한 생각을 하며 기다렸다.
잠시 후 그녀에게 곧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약속장소보다 조금 떨어진 버스정류장에서 내린다고 해 그녀를 마중 나갔다.
그녀의 얼굴을 몰라 인상착의에 대해 간단하게 전달받았다.
검은색 코트와 슬랙스, 거기에 빨간 니트를 입었다고 한다.
"혹시나 마녀나 저승사자가 와도 놀라지 마세요."
진심 같으면서 농담 같은 그녀의 말에 나는 좀 더 여유를 찾고 그녀가 내릴 버스정류장 쪽으로 가서 기다렸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녀의 인상착의와 비슷하게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오늘 다들 우리처럼 소개받아 만나러 온 것인지 누가 그녀인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저 멀리서 다급하게 걸어온 사람이 보였다.
누가 봐도 약속 시간에 늦어 다급하게 걸어오는 모습.
나는 그녀의 얼굴을 몰랐지만 태림씨라는 걸 단번에 알았다.
그녀는 키가 작고 통통해 보였다. 거기에 치장이 온통 검은색이라 그런지 닥스훈트 한 마리가 내게 다가온 기분이었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그녀가 다가오니 반가워 인사를 하려고 다가가는데 그녀는 날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쳐갔다.
뒤도 보지 않고 앞만 보고 가는 그녀를 나는 얼른 뒤따라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 오늘 만나기로 한 명호예요."
내가 인사하자 비로소 내 얼굴을 보고 놀라서 나에게 인사하는 그녀인데 표정이 어째 좋아 보이지 않았다.
무척 긴장되어 있고 조금이라도 건들면 바로 울 거 같은 표정이어서 나는 얼른 카페에 가자고 했다.
그녀는 본인이 사는 지역에 놀러 온 손님인 내가 모든 것을 리드하게 할 수 없다며 자기가 선정한 카페로 날 데리고 갔다.
카페에 도착했다.
분위기 좋고 아늑한 카페, 무엇보다 남녀가 대화하기 좋은 카페였다.
음료를 주문하려는데 그녀는 내가 결제하지 못하게 막았다.
오늘 늦게 온 죄로 본인이 결제하겠다며 마시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주문하라고 했다.
긴장은 했지만 나름 의젓하게 보이려는 그녀의 모습이 귀여웠다.
그렇게 나는 그녀의 선의를 받아 음료와 디저트 주문을 마치고 자리에 돌아왔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에는 5분 정도의 텀이 있어 우리는 간단한 이야기를 했다.
만나러 오기 전 차 막힌 이야기, 한 주간 소소한 이야기 등 짧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음료가 나왔다.
내가 일어나서 받으러 가려고 하니 그녀가 솔선수범해서 벌떡 일어나 쌩하고 가더니 음료를 받아왔다.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 정신 차리고 그녀에게 갔다.
음료와 디저트가 얹어진 쟁반을 두고 오는 그녀의 모습이 영 불안해 보였던 것.
나는 얼른 다가가서 쟁반을 건네받고 자리로 돌아왔다.
이윽고 우린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는데 왠지 모르게 그녀의 얼굴에서 글자가 보였다
'나 엄청 긴장했다, 울고 싶다'
조금만 건드려도 금방이라도 울 거 같은 표정의 긴장감이 너무 티 나게 보여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그녀의 관심사로 흥미를 끌었다.
"전에 게임 좋아한다고 하셨죠? 무슨 게임 좋아하신다고 하셨죠?"
"어, 네! 저 FPS 게임 그 총 쏘는 게임이랑 스팀게임 좋아해요!"
"그 FPS가 오버워치죠?"
"네,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전에 그 게임 좋아하신다 해서 기억해요. 저도 그 게임했었고요."
"그 얘기했었나요? 죄송해요, 제가 고개만 돌리면 금방 까먹어서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다 까먹었어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이렇게 다시 얘기 나누면 되죠."
그녀의 관심사 '게임'을 주제로 얘기를 하니 그녀의 얼굴에는 언제 긴장했다는 듯이 싹 사라지고 해맑은 웃음과 함께 포근한 해가 떠올랐다.
나도 게임을 좋아해서 관심 갖는 게임에 대해 얘기를 나누면 해맑은 아이 같다는 소리를 듣는데 그녀를 보니 타인이 봤던 내 모습이 그녀에게 비쳐 보이는 거 같았다.
순수한 아이처럼 그녀는 게임으로 얘기를 하니 신나는 아이처럼 나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무수한 게임들과 소식들을 해맑게 풀어주었다.
문자 연락으로만 주고받았을 때 그녀에 대해 제대로 와닿은 게 없었는데 직접 그녀와 얘기를 나누어보니 그녀는 정말 해맑고 순수한 에너지가 넘친 말괄량이 꼬마 숙녀였다.
밝게 웃는 모습을 보니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미소에 끌려 계속 얘기를 나누어보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해가 뜨겁게 비출 때 만나서 천천히 잠이 들어갈 때까지 시간이 훌쩍 지나가는지 모르고 신나게 떠들었다.
대화는 우리의 시간을 빠르게 감아주다가 그녀의 전날 이야기에서 다시 원래의 속도로 돌아왔다.
"사실 어제 쌤들이 절대로 이런 얘기하지 말라고 했는데 결국 해버렸네요."
"어떤 얘기요?"
"게임 이야기요."
"왜요?"
"오타쿠 같아 보일까 봐 절대로 하지 말라고 그랬어요."
"아니에요, 전 되게 재밌었어요."
"정말요?"
"그럼요."
전날 자신의 덕후 같은 모습을 내게 절대로 내비치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나왔다는 그녀였지만 내가 그녀의 자물쇠를 열어버려서 그녀는 주체할 수 없이 신나게 떠들었다.
오히려 그런 모습이 내가 그녀에게 더 끌리게 되었던 거 같다.
그녀는 나름대로 걱정을 했지만 내가 즐거워하니 안도를 했다.
그러면서 같이 일하는 쌤들과 가족들이 소개팅 나가는 본인을 너무 걱정한다며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었다고 한다.
"동생들이 제가 소개팅을 하니 걱정이 되었나 봐요, 저 어떻게 입고 나갈지 어제 훈수도 들었어요."
"이거 본의 아니게 거대한 행사가 되었네요."
"쌤들도 제가 걱정된다며 오늘 입고 나올 옷을 한 번 입고 와보라고 해서 어제 입고 나왔는데 다행히 합격을 받았어요!"
"오늘 입으신 옷 정말 예뻐요."
"정말요? 다행이다."
칭찬에 사르르 녹아내린 그녀의 미소, 다시 봐도 정말 해맑았다.
그렇게 잠시 쉼표의 시간을 보내니 슬슬 배가 고파왔다.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그녀에게 얘기를 하니 그녀는 놀랐다.
이런 덕후 같은 본인의 모습을 보고도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하니 큰 충격이라고 했다.
배는 고프고 이대로 헤어지기에는 아쉬우니 같이 저녁 먹자고 하니 그녀는 갑자기 휴대폰을 켜고 부리나케 주위에 맛있는 식당을 찾기 시작했다.
기필코 나에게 아주 맛있는 식당을 데리고 가겠다며 눈에 횃불을 피우고 열심히 찾기까지 1분도 지나지 않아 맛도 좋고 분위기 좋은 양식집을 발견했다.
나도 첫 만남에 양식집이 무난할 거 같아 거기로 가자고 했다.
우리는 곧바로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서려는데 그녀가 순간 멈췄다.
"어, 여기 아직 오픈하려면 30분 남았는데 어떻게 할까요?"
막 자리에 일어나려는데 가게 오픈 시간을 제대로 체크를 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이대로 기다리느냐 아니면 다른 곳을 다시 찾아보느냐 얘기가 나왔지만 30분이라는 시간이 금방이기도 하고 그동안 다른 곳에 산책이라도 하면 어떨지 물어보았다.
그녀는 산책이라는 말에 잠시 주춤하며 앉았다.
골똘히 생각에 잠기더니 이윽고 무언가 다짐을 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산책을 가자며 음료가 놓인 쟁반을 들고 가 반납하고 날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이윽고 그녀의 안내를 따라 사람이 드문 골목으로 해서 천천히 걸어갔다.
바깥 날씨는 생각보다 춥지 않아 걷기 좋은 날씨.
첫 만남에 함께 가볍게 걷기 좋은 날이었다.
"요 앞에 한옥마을이 있는데 한 바퀴 돌다가 저녁 먹으러 가요."
그녀가 날 리드하며 나란히 걸어가는데 옆에서 지켜보니 아빠를 데리고 산책 가는 위풍당당한 딸아이 같아 보였다.
이래서 아빠들이 딸을 그렇게 좋아하는 건가.
그렇게 리드를 받으며 걷다가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태림씨는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죠?"
"네? 스트레스요? 음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왜요?"
"너무 밝아 보여서 스트레스가 없을 거 같아요."
"정말요? 그거 칭찬 맞죠?"
"네, 맞아요. 부러운 칭찬이에요."
나의 칭찬은 또다시 그녀의 얼굴에 함박웃음을 얹어 아이로 만들었다.
내가 그녀에게 한 칭찬은 정말 부러워서 나온 답이었다.
스트레스가 없는 삶, 스트레스를 쌓아두지 않고 금방 금방 풀어버리는 삶, 정말 부러운 삶이었다.
나한테 없는 걸 그녀가 가지고 있으니 더욱 그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우린 관심과 칭찬 사이를 오가며 한옥마을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우리가 간 곳은 그녀가 가본 곳 중 분위기 좋고 맛도 좋은 파스타집.
나와 만나면 꼭 여기를 데리고 와서 맛있는 저녁을 대접해주고 싶었다며 날 그녀의 추억으로 데리고 갔다.
자리에 앉은 우리는 메뉴판을 봤다.
그녀는 내게 먹고 싶은 메뉴를 고르라며 건넸지만 나는 잘 모르니 그녀의 추천을 받기로 했다.
그녀는 의젓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메뉴를 가리켰고 나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그 메뉴를 골랐다.
"저 제가 한 가지 말 안 한 게 있는대요."
"뭔데요?"
"제가 막입이어서 그냥 막 먹어도 다 맛있다고 해요, 그래서 절 너무 신뢰하지 마세요."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골랐던데 그 정도면 그래도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제가 그랬나요? 너무 티가 나요?"
"네"
"신기하네. 어떻게 다 알지?"
그녀와 만난 지 몇 시간이 지났지만 대화를 하면 할수록 정말 투명하고 순수한 꼬마아이 같았다.
오히려 그런 점이 내가 그녀에게 호감을 갖게 된 포인트일지도 모른다.
곧 주문한 음식이 나와 우리는 맛있는 저녁 식사를 가졌다.
밥 먹는 동안에는 서로 말을 하지 않았는데 어색한 분위기가 감도는 줄 알았지만 의외로 편안한 분위기가 우리 위에 깔렸다.
맛있는 밥을 앞에 두고 말을 하는 건 서로 간에 예의가 아니며 이 밥에 집중하고 싶다는 우리의 텔레파시가 통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묘하게 엉뚱한 면에서 통했다.
그녀와 밥을 먹으면서 알게 된 특징이 있다.
밥을 먹다가 천천히 젓가락이나 포크를 내려놓으면 식사는 종료, 먼산을 바라보며 모든 것을 해탈한 표정을 지으면 정말 맛있고 배부르게 잘 먹었다는 모습을 보인다.
마치 세상을 다 산 듯한 그 표정은 만화의 한 장면이 따로 없었다.
말부터 행동, 그리고 성격까지 그녀는 정말 만화에서 튀어나온 캐릭터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집을 가기 위해 정류장에 왔다.
첫 만남을 갖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어떻게 해서 만난 우리.
나는 그녀와 좀 더 만나고 싶은 생각에 그녀에게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놀랐다.
오늘 내내 자신의 덕후 같은 모습과 엉뚱한 모습 때문에 소개팅을 망쳐서 오늘로 끝이구나 생각을 하며 나와의 시간을 그대로 유종의 미로 두고 싶어 열심히 보냈다고 하는데 내가 또 보자고 하니 머릿속에는 온통 물음표만 두둥실 떠다녔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게 손을 건네며 악수를 청하는 우리.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또 봐요!"
악수, 이 악수를 건네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 귀여웠다.
내가 그 모습을 보고 계속 웃으니 그녀는 당황해했다.
"왜요? 이상해요? 원래 이렇게 악수하고 그러지 않아요?"
금방이라도 울 거 같은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가 너무 귀여운 나머지 계속 웃었는데 이러다 진짜 울 거 같아서 얼른 그녀를 달래주며 다음 만남을 잡았다.
"제가 소개팅을 처음이어서 좀 삐딱했지만 다음에는 공부를 해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줄게요!"
그녀의 당찬 모습과 함께 우리는 버스를 타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오늘 봤던 그녀의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순수한 아이 같은 그녀의 미소.
다음에도 또 볼 수 있을 기대를 품으며 우리의 첫 소개팅은 무사히 맞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