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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랄리방 May 04. 2024

24년 4월 마지막주 5월 첫째 주 감사 일기

4월 29일 월요일 / 비 온 줄 알았는데 오지 않았던 날


오늘 첫 방송국에 출근. 사실 별 마음이 없이 과연 이곳에서 얼마나 다닐지 생각뿐이었다. 아침에 처음 사람들과 만나 인사는 나누지 못하고 바로 현장에 투입해서 일을 시작했는데 언제나 그렇듯 현장은 항상 험난하고 마초적인 곳이었다. 나는 무대 세트 설치 및 철수 담당이어서 방송 전에 스튜디오 및 무대 설치를 했다. 지난 연극 하며 다져온 무대 세트 경험이 오늘 빛날 것만 같았던 나.


그런데 막상 일을 해보니 또 그러지 않았다. 확실히 방송과 연극은 달랐다. 연극은 그냥 뚝딱하면 끝나는 무대라면 방송은 그러지 않았다. 녹화 전에 모든 준비가 끝나야 하는데 일단 나는 오늘 하루 어리바리했다. 눈치껏 사수를 따라다니고 팀장님의 오더에 따라 움직이며 나로서 열심히 해보려고 노력을 했지만 내 기준으로 나를 봤을 때 아주 어리바리 탔다. 첫날에는 잘하고 못할 것도 없지만 지난 나의 연극 무대 경험이 적어 보일 정도로 오늘 하루는 나로서 참 아쉬운 하루였다.


내가 첫 출근 전에 이 무대 경험 때문에 너무 자만해있었나. 당연히 무대 경험도 있고 연극과 비슷하게 생각하고 얕본 탓일까. 그런 나의 모습을 돌이켜보며 너무 자만하지 말고 항상 겸손하며 항상 새롭게 배우는 마음으로 살으라는 하늘의 뜻인가도 싶다.


만약 그렇다면 너무 자만했던 지난 과거와 오늘 하루를 돌이켜보며 깊은 반성을 해본다. 이렇게 또 경험을 통해 나를 돌이켜보며 반성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된 오늘. 자만에 빠지지 않고 매사 새로운 배움을 갖도록 노력하는 자세로 살아야겠다. 나에게 반성을 준 오늘 하루여 감사하다.


첫 출근 후 반성하며 힘찬 어깨운동

4월 30일 화요일 / 구름이 살짝 낀 하늘


첫 출근은 내게 아주 많은 생각과 허탈감을 안아줬다. 딱 일을 했을 때 내가 여기서 오래 일할 만한지 아닌지 그 느낌이 오는데 여기는 내게 오래 일할 곳이 아니었다.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내가 찾는 곳이 맞나. 내 적성에 맞는 것인가. 일이 어렵다기보다 이곳이 내게 맞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양지로 나오고 싶은데 음지로 계속 빠지는 기분이랄까. 이대로는 정말 아니다 싶어서 구직사이트에 들어가 다시 일자리를 찾아보았다. 첫 출근날 이만저만 생각이 들어 사람이 분주하게 움직이게 되는 건 남일 같았는데 막상 내가 경험해 보니 이는 정말 절박하고 살고 싶은 발버둥이었다.


그렇다. 나는 정말 살고 싶어서 구직사이트에 들어갔다. 그리고 내가 전부터 해왔던 연출일에 다시 문도장을 두들겼다. 타 방송사에서 조연출을 뽑는 공고를 보고 나는 고민도 없이 바로 지원했다. 그것도 오늘 아침에. 오늘 아침에 눈이 일찍 떠져 한번 구직사이트에 들어가 봤다. 때마침 바로 조연출 모집 공지가 보여서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 사람이 정말 절박하고 살고자 하면 뭐든 해낸다는 걸 오늘 아침에 난 경험을 했다. 그렇게 고민해서 빨리 써도 40분은 걸렸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작성이 단 20분 만에 끝내버렸다. 그것도 출근하기 전에.


그만큼 나는 빨리 나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사람이 살려고 하면 초인적인 능력이 발휘한다고 하는데 오늘 아침에 나는 평소 느림의 미학을 중요시하던 내가 아닌 정말 절박한 심정을 토하는 시한부 인생의 순간이었다. 그렇게 빠르게 이력서를 제출하고 출근을 했다. 오늘 전반적으로 일을 하면서 나는 여길 떠날 사람으로 생각하며 일했다. 조금의 미련도 없는 마음. 방송국 이틀 차인데 험난한 방송생활보다는 여기는 나랑 맞지 않다는 걸 딱 느꼈다.  그래서 오늘은 정말 흐르는 대로 눈치껏 일을 하며 오늘 하루를 보냈다.


정말 오랜만에 느낀 절박감. 나는 정말 살고 싶었다. 너무 아팠을 때 살고 싶은 마음과는 또 다른 제대로 살고 싶은 나의 절박함을 오늘 난 직면했다. 언제쯤 나는 제대로 살 수 있을지.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 하루를 무사히 마칠 수 있던 것에 감사하다.


절박함 뒤에 오는 공복감

5월 1일 수요일 / 맑음


사람이 느끼는 복잡함과 미묘함은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때 오는 감정 같다.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고 직감으로 무언가 느낌이 좋지 않을 때 본능적으로 피해야 되는 순간. 오늘 난 그 순간의 상황을  마주했다.


방송국 하청업체에 들어간 지 3일째. 일은 힘들지 않고 하기도 괜찮은데 좀처럼 내 마음이 이곳을 두지 않았다. 계속 있으면 안 되는 곳. 오래 있다간 더는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곳. 그래서 일한 지 3일 만에 일을 그만뒀다. 무대 세트 설치 및 철수 일이 힘든 작업이라 많은 사람들이 그만두고 하는데 나는 이 일이 힘들다고 느끼지 못했다. 오랫동안 연극했는데 이까짓 세트 무게가 뭐가 그리 무겁다는지. 그래서 될 수 있다면 좀 다닐 생각이었다.


그런데 한국 지상파 방송국이라는 곳이 80년대 아날로그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해 공연계열 쪽보다 더 고전적이고 고여 있었다. 일하는 방식과 환경이 오래 일할 곳이 아니었고 이 무대 세트 회사는 더더욱이 직원 관리를 못하며 직원이 더 나은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도 않는데 누가 이곳에서 오래 일하고 싶은지 싶었다.


첫날 미묘한 감정들이 머릿속에서 맴돈 게 이는 앞날의 미래를 겪은 내가 암시를 해준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곧바로 일을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이직하기 위해 구직사이트에 들어갔다.


오늘 하루는 감사라기보다는 나의 결정에 있어서 후회는 없다는 다짐의 하루였다.


햄버거가 먹고 싶다.

5월 2일 / 맑고 맑은 날


전날 과한 음주로 인해 하루종일 누워있었다. 몸살이 온 것처럼 온몸이 무겁고 괴로운데 마음은 참 편안했다. 불편한 짐을 더는 어깨에 짊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줬다.


나는 몸이 힘들어도 마음이 편안하다 느끼면 그 일을 오래 하는 경향이 있다. 육체적으로 힘들어도 정신적으로 내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아 마음에 안정감을 품고 일할 수 있었다. 연극이 내게 그런 존재였다. 오랫동안 연극하면서 육체적으로 힘들었지 심적으로 힘든 부분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오니 연극이 싫어졌다.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면 다 사람이었다. 나와 맞지 않은 사람, 무례함이 드는 사람과 함께 일을 하다 보면 내가 좋게 본 것도 안 좋게 보게 되는 거 같다.


그래서 연극하는 걸 그만뒀다. 그런데 그 느낌은 이번에 방송국에서도 느꼈다. 일은 힘들지 않았다. 연극과 비슷하니. 그런데 사람들의 강한 압박감과 배척하는 느낌은 좋지 않았다. 그 틈에 껴보려고 해도 여기는 이미 내 자리도 다음 신입의 자리도 없었다. 그래서 더는 미련을 갖지 말고 나왔다.


며칠 동안 갖고 있던 불편함, 이젠 사라졌다. 다시 또 열심히 구직해서 이번에는 괜찮은 일자리를 찾길 바란다.


불멍을 때리며 마음을 비우다

5월 3일 / 5월의 봄날씨


방송국을 그만두자마자 곧바로 물류센터 알바를 갔다. 쉬면 뭐 하나 돈이나 벌자. 이럴 때 정신 차리고 돈을 벌면서 앞으로 살아갈 방도를 생각해 봐야지. 원래 다녔던 곳에 다시 가니 아는 사람들도 보이고 일도 사람도 스트레스를 주지 않아 편히 일했다.


이러다 여기에서 자리를 잠깐 잡는 게 아닌가 싶지만 그건 최후의 수단이고 지금은 내가 했었던 업을 중심으로 다시 구직을 해보고 있다. 그러다 발견한 공연  조명, 음향 오퍼. 공연도 아주 괜찮은 것이었다.


역시 나는 공연 쪽에서 아직 일해야 하는 사람인가. 그쪽이 눈에 들어오니 계속 공연 쪽에 눈이 들어온다. 뭐든 좋다. 나에게 일할 기회를 주고 맞고 오랫동안 일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그러니 열심히 찾고 또 찾아보자.


힘들수록 밥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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