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 봤던 사주에서 그랬다. "너는 기존에 했던 일을 다시 할 거 같다." 그게 설마 연극인가 싶었는데 역시나 그건 연극이었다. 오늘 첫 극장에 가서 조명을 봤다. 정확히는 옆에서 언제 조명을 바꿔줘야 할지 전달해 주는 역할. 아무 연습도 없이 단지 한번 본 공연을 기대어 특별 공연 조명 어시를 했다. 갑자기 이렇게 투입이 되니 엄청 긴장이 되었고 혹여나 실수할까 봐 조마조마하며 무대와 대본을 계속 번갈아봤다.
그렇게 엄청난 긴장감을 안고 집중해서 그런지 공연은 순식간에 끝났다. 어떻게 이 공연이 끝났는지 생각도 안 들고 그저 오늘 하루도 무사히 넘긴 것에 대해 안도감이 들었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 회식에 참여해 같이 일할 배우분들과 인사를 했다. 다들 성격이 좋아 반갑게 맞이해줘서 오랜만에 느낀 정겨움이었다. 잠깐이지만 대학시절 연극부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간단하게 술도 마시면서 둘러본 여기 분위기는 좋았다. 내가 원했던 분위기가 여기에 있었다. 그토록 찾던 공간. 공연은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확실한 건 여기는 적어도 내가 일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 곳이다. 오랜만에 느낀 보람. 이 감정을 느끼게 해 준 오늘 하루가 소중하고 감사하다.
먹는 것도 좋아
5월 14일 화요일 / 비 오기 전 더운 날씨
오늘 만져본 조명과 음향. 평생을 따로 만지며 공연을 해봤는데 여기는 혼자서 이 두 가지를 해야 했다. 멀티가 되지 않은 내게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한다는 건 매우 당황스러운 일. 그러나 막상 공연을 보며 각 따로 해보니 할 수 있을 거 같은 희망도 보였다. 그런데 아주 큰 문제는 대본과 다르게 공연이 진행이 되어서 이 공연을 몇 번은 보고 조명과 음향을 더 만져봐야 하는 게 보였다. 한두 번 더 만져보면 감이 잡혀서 혼자서 가능할 수 있을 거 같다.
희망이라는 게 찾아오는 것인가. 내 일생에서 나를 구제해 줄 그런 희망은 아니지만 내가 뭔가 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인 하루였다. 희망찬 하루여 감사하다.
전날에 과음을 했더니 가락국수 국물이 당긴 하루
5월 15일 수요일 / 강한 비바람이 불었던 하루
비가 내린다고 하더니 오전에 내리지 않아 우산을 괜히 가져왔나 했다. "에잇 우산 괜히 가져왔네". 이 말을 함과 동시에 오후에 먹구름이 세상을 뒤덮더니 거센 비바람이 불어와 급 날씨가 매우 쌀쌀해졌다. 내 말을 하늘에서 들어준 건지 내가 가져온 우산이 쓸모 있게 해 주려고 아주 거센 비바람을 불어와줬는데 내 우산이 뒤집히려는 거 보고 되려 겁먹었다. 괜히 그런 말을 해서 하늘이 노하신건가. 역시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된다.
비바람 때문에 말조심해야 했던 하루.
달달한게 필요했던 하루
5월 16일 목요일 / 비 온 뒤 날씨는 덥다
공연장에서 조명 및 음향을 본 지 이틀 차. 오늘은 특별공연으로 단체 손님을 받아 공연을 했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에 매우 긴장이 되었고 혹시나 실수할까 봐 조마조마했다. 아직 조명과 음향 타이밍을 제대로 알지 못해 괜히 실수해서 공연을 망칠까 봐 바짝 긴장을 하며 오퍼를 봤다. 내가 공연을 하며 이렇게 긴장을 했었던가. 배우 때보다 오히려 지금이 더 긴장이 되는 거 같다. 그런데 하고 나니 어느 정도 감이 오는 거 같고 타이밍도 눈에 들어오는 거 같다. 역시 사람은 뭐든 해보고 부딪혀봐야 알 수 있는 거 같은데 그걸 제대로 깨달은 하루였다.
잠들어 있던 공연 감각이 슬금슬금 기어 나오려고 하는데 기꺼이 환영해 줘야지. 얼른 감을 찾아서 매 공연 때 긴장되는 일이 없으면 한다. 그런 의미로 역시 사람은 부딪히고 봐야 하며 그 상황을 즐기면 길이 보인다.
길이 보인다. 프라모델의 길이
5월 17일 금요일 / 맑은 하루
오늘 공연 오퍼를 처음으로 혼자 봤다. 할 수 있을까란 긴장과 불안감이 있었지만 처음 시작은 아주 순조롭게 넘어갔다. 음향과 조명 잔실수가 있었지만 초반은 아주 순조롭게 넘어가서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중후반으로 넘어가면서 내가 대본을 착각해 큰 실수를 저질렀다. 다음 장면에 필요한 스크린을 너무 빠르게 켜버린 것. 대본에 의지해서 보다가 잘못 보고 착각해 켜버렸다.
내가 실수를 했단 걸 깨달은 건 조명을 켜고 장면을 봤을 때 아차 했다. 너무나 빨리 내린 덕분에 배우들이 진땀을 뺐고 관객들에게 괜한 기대감을 줘서 공연을 망쳤다. 그래도 배우분들이 잘 넘어갔지만 오랫동안 연극을 해온 나로서는 도저히 이 실수는 그냥 넘어가지 못할 거 같다. 실수를 해야 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닫고 다음에는 안 한다고 하지만 이번에는 너무나 큰 실수를 해서 그런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거 같다.
아무래도 좀 더 공연을 보며 피드백을 많이 받아야 할 거 같다. 이거 또한 하늘에서 삶의 긴장감을 주기 위해 그런 것인가. 올해는 참 이렇게 사소한 시련이 찾아오는데 작년과는 다르게 이걸 극복해서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을 거 같다. 다음 공연에는 잘하려고 더 집중하며 오늘의 실수를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