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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May 10. 2024

거기 다육이, 너의 이름은?

이런 나지만 다육이는 키우고 싶어 #2

그간 녹색식물을 쉽고 빠르게 저세상으로 보내왔지만 처음부터 '어차피 죽을 테지만' 같은 가벼운 마음으로 식물을 들인 적은 한 번도 없다. 인간처럼 떠벌떠벌 자기주장을 하거나 더위 추위를 제 손, 제 발로 조절할 수 없는 녀석들이니 오롯이 나만이 그들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자손번영까지는 약속지 못하더라도 제 수명만큼은 살다 가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데려온다. 그게 마음대로 안 돼서 그렇지.


그래서 어떤 다육 유튜버가 '매해 봄에 사 와서 겨울 전까지 재미있게 기르다가 월동은 하지 않고 다음 봄에 또 사요. 포트 한 개당 가격도 저렴하고 언제든 구할 수 있으니까요. 겨울 넘긴다고 힘들이느니 새로 사는 게 가성비도 좋고, 그래서 저는 이 종류의 다육식물은 일년초라는 감각으로 기르고 있어요.'라 하는 걸 들었을 때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키움을 즐기는 것에 포인트를 둔 현실적인 발언이긴 하지만 왠지 마음이 불편해져 그 후로 그 사람 유튜브는 보지 않는다.


반면 직업으로 다육식물을 재배하는 어떤 유튜버는 '다육이가 눈치채지 못하게 아주 살살 잡고 뽑아주세요', '아, 정말 이 품종은 짓궂은 아이예요. 보세요, 기대와 달리 이 삐죽삐죽 자란 모습을!'이라고, 다육이를 마치 사람 다루듯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매일 일로 마주하면서도 그런 마인드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참 부럽고 멋지게 보였다. 애정까지 담긴 프로의 손길이 닿아서 그런가, 화면에 비친 다육이들도 하나같이 건강하고 반짝반짝 빛났다.


키움을 즐기는 것도, 길러서 돈을 버는 것도, 식물을 사랑하고 아끼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들은 결을 같이 한다. 하지만 '가을까지만 키우고 버려요' 같은 인간 중심의 시선만으로 키우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는 정말 크다고 느꼈다. 화면 건너편 일개 시청자에게서도 느껴지는데 눈앞의 다육이들에겐 오죽할까.


어느 쪽이든 즐거운 식물생활 중임에는 틀림없겠지만, 나는 기왕이면 후자의 유튜버와 같은 자세로 다육이를 대하고 싶다. 귀엽고 앙증맞은 자태로 내 마음에 위안을 줄 다육이들에게, 나 역시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고 들리지 않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을 행복한 다육이로 만들어 주고 싶다. 하루종일 집안에 콕 박혀있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하기 위한 욕망이 근간에 깔려 있는 것이라 해도 말이다.


이런 포부에 비해 나는 다육식물에 대해 너무 모른다. 이번엔 공부하며 기르기로 결심했지만 그래도 다육이의 조력이 약간 필요할 것 같아 최대한 튼튼해 보이는 것 중에, 내 눈에 예뻐 보이는 것을 최종적으로 선택했다. 사실 뭐가 튼튼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잎에 상처가 나지 않은 것, 윗 잎과 아랫잎 사이에 빈 공간 없이 웃자라지 않은 것, 잎이 포동포동해 보이는 것을 골랐다. 나의 모자람을 커버해 주기를 기대하면서.


그렇게 해서 선택된 정예요원이 이 셋이다.



이 아이들을 데려오는 차 안에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우선 이 역사적인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이들의 이름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이전의 나는 다육식물을 '선인장의 친구로 가시 대신 잎에 물을 저장하는 식물. 디자인이 다양함' 정도로 인식했었기 때문에 굳이 이름을 확인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육이는 그냥 다 같은 다육인 줄 알았으니까.


그런데 파고 들어가 보니 다육식물은 모두가 선인장 친구인 것은 아니었다. 선인장에 속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어떤 친구들은 국화, 어떤 친구들은 돌나물, 과거에는 백합이었지만 지금은 아니게 된 것 등, 생물분류학 상 50개 이상의 과에 다육식물이 존재하며 10000종 이상의 품종이 존재한다고 한다.


또 품종에 따라 요구되는 환경이 세세하게 나뉘는데 처음 다육식물을 기를 때는 그걸 몰라서 망했다. 뭔가에 재능이 있는 사람은 굳이 배우지 않아도 얼추 중간은 가는 것처럼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 분들도 있겠지마는, 나처럼 식물 돌봄에 재능이 없는 초보 식집사라면 내 다육이의 이름부터 확인해 그 친구가 자라는 데 어떤 환경을 필요로 하는지 미리 조사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전의 실패를 발디딤판 삼아, 나는 아직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구글창을 열어 오늘 산 다육이의 이름을 하나씩 입력해 가며 정보를 모아갔다.



골든카펫

먼저, 골든카펫.


네임태그에는 미모사라 쓰여 있었지만 나는 이 아이가 골든카펫이라고 확신한다. 사진 속 미모사보다 잎이 훨씬 작기 때문이다.


품종개량을 거치며 서로 비슷하게 생긴 것들도 적지 않고, 학명, 품종명, 유통명(별명)까지 서너 개의 이름을 가진 다육이들도 많아 이름 찾기에는 주의가 필요할 듯하다.


실제로 오늘의 또 다른 다육식물 부스에서는 이 아이를 세덤이라 부르고 있었는데, 세덤은 특정 식물의 이름이 아니라 식물들을 분류하는 카테고리의 이름이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초보 식집사에게는 혼란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치 내 동생 곱슬머리 개구쟁이 내 동생이 이름은 하나지만 별명은 서너 개라 엄마가 부를 때는 세덤, 아빠가 부를 때는 미모사, 누나가 부를 때는 골든카펫, 어떤 게 진짜인지 몰라 몰라 몰라,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이 친구는 어떤 친구냐 하면,


・분류: 세덤

・성장기: 봄, 가을

・옆으로 퍼지며 자람

・더위, 추위에 강함

・줄기를 꺾어 흙에 꽂는 꺾꽂이로 쉽게 번식됨 (잎꽂이 안됨)

・늦가을에 붉은색으로 물듦


생명력이 강해 마당의 빈 땅이나 다육 모둠화분의 틈새를 메꾸는 용으로 사용되기도 한다고 한다. 성장 스피드도 빠르고 꺾꽂이가 쉽다니 화분 가득 몽글몽글 불려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 아차, 요놈의 입방정. 지금 죽이느냐 살리느냐가 문제인 판국에 화분 늘릴 단꿈부터 꾸고 있다니.


핑크베리


두 번째는, 핑크베리.


핑크베리 또는 캐니히니(Canny Hinny)라고 불리는 품종인데, 2010년에 청옥과 라울을 섞어 만든 교배종이고 겨울엔 옅은 핑크빛으로 물든다는 것 밖에는 별 다른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대신 청옥의 생육특징을 많이 닮아있다고 하여 청옥을 기준으로 조사해 보았다.


・분류: 세덤

・성장기: 봄, 가을

・위로 자라면서 새 잎들이 옆으로 누움

・더위, 추위에 강함

・꺾꽂이 가능

・떼어낸 (또는 떨어진) 잎에서 싹을 틔워 개체를 늘리는 잎꽂이로 쉽게 번식됨

・겨울에 엷은 핑크색으로 물듦


잎꽂이 난이도 보통에 붉게 물드는 라울이 잎꽂이가 쉽고 노랗게 물드는 청옥을 만나 낳은 핑크베리는 잎꽂이가 간단하고 연한 핑크빛으로 물드는 아이가 되었다는 것이 재미있다. 부모의 좋은 점을 잘 물려받았다. 씨도둑질은 못한다더니.


운 좋게 된 잎꽂이


특별히 알고 데려온 것은 아니지만 잎꽂이가 쉽다니 기대도 된다. 사실 잎꽂이는 소 뒷발에 쥐 잡기로 어쩌다 한번 해본 적이 있다. 창가 커튼을 맞고 떨어진 통통한 잎을 쓰레기통에 넣는 것에 묘한 죄책감이 일어 한동안 버리지 못하고 화분받침에 얹어 두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저절로 싹이 나온 것이다. 비록 지난여름, 세상을 등지고 말았지만 그 가녀리지만 강한 생명력이 어찌나 귀엽고 신비하던지. 다시 한번 그때의 즐거운 관찰을 계속할 수 있을까?


퍼플 헤이즈


마지막, 퍼플 헤이즈는 일단 이름이 너무 아름답다. 보랏빛 안개라니 약간 옛날 판타지 순정만화 느낌 낭랑하지 않은가? 이 녹색 이파리들은 가을이 깊어지면 보랏빛으로 물든다. 희성미인과 같은 품종인데 퍼플 헤이즈 쪽이 잎이 더 크다. 


・분류: 세덤

・성장기: 봄, 가을

・옆으로 퍼지며 자람

・더위에 약해서 여름에 통풍이 잘 되지 않으면 녹아버림

・꺾꽂이, 잎꽂이로 번식 가능

・가을에 보라색으로 물듦


그러고 보니 이번에 데려온 아이들은 전부 세덤, 먼 친척들이다.

세덤 류의 다육들은 해를 좋아해 여름 이외에는 햇볕이 닿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두면 건강하게 잘 자라기 때문에 다른 다육식물들과 비교해 재배 난이도가 낮아 초보자도 도전하기 쉽다고 한다. 게다가 가을 이후에는 셋 다 새로운 빛깔로 물든다니, 모르고 샀는데 완전 럭키비키잖아? 게다가 지금은 봄, 봄은 이 다육이들을 쑥쑥 자라게 하는 마법의 계절. 바로 지금을 노리면 갑작스러운 화분 증식도 노려볼 만... 아 이러지 말자고 말하자마자...!


이렇게 새 다육친구들의 대략적인 특성을 손에 넣었다. 이번 친구들은 모두 이름표가 있었지만, 혹시 이름표가 없는 경우에는, 사진을 찍어 구글 어플의 구글 렌즈, 네이버 어플의 스마트렌즈를 활용하면 비슷한 모양의 다육이들을 검색해 주어 이름 찾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사진 상의 각도나 색상, 실루엣에 따라 전혀 다른 것이 검색되기도 하기 때문에 최종 판단을 위해서는 결국 인간의 눈썰미가 활용되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다육 식물도감을 보며 하나하나 대조해 가는 것보다 훨씬 간편하다.


그렇게 데려온 다육이들은 키친 카운터에 자리를 만들어 주고, 일주일 정도 해가 나면 창가로 옮겨주면서 우리 집 환경에 익숙해지도록 해 주었다. 비닐포트에 담긴 채로 데려와서 곧 새 화분에 분갈이를 해주어야 할 텐데 얼핏 듣기론 화분도 제각각 특징이 있다고 한다.


어떤 화분을 골라야 할까?


적당한 화분을 고르기 위해, 나는 이전에 죽인 다육이들의 사인(死因)부터 분석해 볼 것이다. 그간 나의 어떤 행동들이 다육이들을 사지로 내몰았는지 되돌아보고, 그에 따라 어떤 화분과 도구가 필요할지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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