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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기말고사

by 김소희

진동을 지나 무음으로 한 핸드폰은 바닥에 내려놓았다. 자연스럽게 핸드폰과 연동된 손목시계도 풀었다.

기말고사를 준비하면서 생긴 습관이다.

전에는 몰랐는데 워치를 풀면 어깨에 있던 짐을 내려놓는 기분이다.

내 몸에서 전기가 흐르는 기기들을 모두 떼내는 게 이렇게 시원한 일이었다니.


집중해야한다.

기말고사 드디어 왔다.

시험 전날에 잠을 설쳤다. 두 번 세 번 푼 기출문제인데 도통 모르겠으니 마음이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겉으로는 될 대로 되라면서도

"잘 봤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찍은 게 다 맞았으면 좋겠다!"

빌었다. 하하하


기말고사는 학교에 가서 시험을 본다.

적어도 내가 다니는 학과는 그렇다.

난 5과목을 수강하고 있고 5개 모두 시험장에서 치른다.


시험은 정해진 날짜 안에서 시간과 장소를 신청할 수 있다.

원하는 날짜와 시간에 시험을 보려면 기말 접수가 시작될 때 들어가는 걸 추천한다.

이때 접속자도 많아 서버가 느려진다.

티켓팅처럼 1분/ 5분 순삭! 정도는 아니니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그래도 남은 자리 찾아 헤매지 않으려면 접수 첫날 접속하는 게 좋~~~겠다~

기말신청.jpg

나는 평일에 시험을 보고 싶었다.

유일한 평일은 6월 13일 금요일뿐이다. (6월 6일 금요일은 현충일이다. )

게다가 낮 시험은 없고 늦은 오후만 있다.


자자. 여기서 문제다. 난 5과목의 시험을 보아야 한다. 그럼 2일 동안 꼬박 시험을 보는 것인가?

정답은 이렇다.

한 회차당(1회차, 2회차..) 최대 3과목까지 볼 수 있다. 볼. 수. 있.다.

보라는 게 아니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1과목에 시험시간 25분이다.

한 회차의 시간은 총 75분이다. 그래서 총 3과목까지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회 차 9시 시작 시험에 1과목 시험을 신청했다면 9시 땡 시험을 시작하고 25분까지 제출해야 한다.

같은 회차에 2과목을 신청했다면 똑같이 9시 떙하고 시작하면 (1과목 25분 *2과목) 50분까지 제출하고 나와야 한다.

이렇게 3과목까지 볼 수 있다.


나는 5시 10분까지 입실해야했지만 4시 반쯤 학교 앞에 도착했다.

서울지역대학-성수다.

시험보러 가는 길에 성수역에 내렸다가. 아차했다!

방송통신대 서울지역대학 -성수는 뚝섬역이다. 급하게 지하철을 다시 타고 1 정거장 이동했다.

이 사실을 아무도 모르지만 얼굴이 빨개진 나는 혼자 키득키득 웃었다.


이제야 제대로 찾아온 학교다. 입구부터 사람이 많다.

야외 의자, 복도 의자, 교실까지 각자의 방법으로 고개를 숙인 채 집중하고 있다.

배정받은 51#호를 찾았다.

태블릿으로 시험을 본다고 했는데 빈 책상이라서 고개를 갸웃했다.

교실 번호와 핸드폰에 띄워진 내역을 번갈아 보았다.

"여기가 맞네."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가져온 프린트를 꺼내 읽지만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도 눈을 부릅떴다.

한 명 두 명씩 들어와 교실이 채워졌고 감독관 두 분이 들어오셨다. 한분이 신분증을 검사하셨고 다른 분은 와인셀러처럼 생긴 곳에서 충전선을 빼며 태블릿을 꺼내 나눠주셨다.


와우. 나는 역시 옛날사람이었다.

당연히 CBT시험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시험 보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신식이라니~!!!!!


난 5회 차에 3과목

6회 차에 2과목 선택했다.

3과목은 주어진 75분 안에 3과목을 모두 풀어 제출하면 된다.

25분마다 하나씩 제출하는 게 아니다.


내가 듣는 과목에는 수질과 대기에 계산 문제가 있다.

그래서 대기는 5회 차에 수질은 6회 차에 나눠서 신청했다.

나름 전략적으로?! 후훗!

계산하다가 조금 늦어져도 이론만 있는 과목 문제들을 빨리 풀면 시간을 맞출수 있을것같았다.


시험 끝나고 나오니 8시 반이 넘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전략과 준비는 제갈량 급이었지만 결과가 아니었다.

하하하.

또 어깨를 들썩였다. 운 건 아니다. 그냥 헛웃음이 났다.

시원한 비를 보며 가방에서 우산을 꺼냈다. 한 발씩 빗속으로 걸어 나가며 우산을 펼쳤다.

툭.

우산 대가 쭉 하고 빠졌다. 부러진 건 아닌데 연결 부분이 빠진다. 끼워도 다시 빠졌다.

가까스로 우산을 펼치고 밑에 한 뼘 정도 되는 우산대를 손으로 잡아 높이 들었다.


"아~~~ 배고프다. 빨리 가서 밥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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