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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을 몰라 답답

by 김소희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탔다.

흐린 하늘에 간간히 센 바람이 불었다. 마치 내 마음속 같았다.


승가사를 향하고 있다.

그 절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후기를 찾아보니 산 입구에서 절까지 오르내리는 셔틀이 있다는데 나는 걸어 올라갈 생각이다.

올라가는 길이 엄청 가파르다는데 뭐 상관없다.

누군가 그랬다

생각을 키우고 싶으면 산책을.

생각을 지우고 싶으면 등산을 하라고.

오늘의 목표는 머릿속을 싹 비우는 것이다!


방송대를 다닌 이후로 내 생활 동선이 진짜 단순하고 단조로워졌다.

학기 초에는 특별히 나갈 일을 만들지도 않았다.

돌이켜보면 학교 적응을 핑계로 자발적 고립을 택한 것 같기도 하다.

여느 직장인들처럼 9시-6시 출퇴근이 아니라서 방송대와 잘 맞을지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나갈 직장이 따로 없다는 게 한편으로는 힘이 들었다.

왜냐하면

모든 게 구분이 없었다.

휴식도, 일도, 공부도 모든 게 한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일하다 가족들 밥을 차려주고, 설거지 하며 수업을 듣고, 애들 하교 시간이 되면 쫓기는 사람처럼 심장이 두근거리고, 전화에 한통에 일하는 모드로 바꿔야 했다.

어떤 일도 시작과 끝이 없어 뭔가를 이뤄낸 성취감도 마무리된 개운함도 느낄 수 없었다.

매일 찜~~ 찜~~ 했다.

해결 책을 잘 찾고 있던 나를 확 무너뜨린 일이 있었다.


지난주부터 기말고사 준비를 시작했다. 아직 한 달 전이지만 1일 1기출을 목표로 천천히 시작하려 했다.

기출문제를 푼다

소나기를 맞는다

이론을 본다

기출을 푼다

소나기를 맞는다

이론을 본다.

.....

이런 무한의 굴레에 빠졌다.


한 과목을 계속 붙잡고 있어야 하나 5과목을 번갈아 가며 해야 하나, 살짝 고민이 되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하는 불안이 꿈틀거리더니

어쩌면 이게 내 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댈 곳이 필요했다.


무교이면서 모든 신을 믿는 나는 부처님께 조언을 구하러 간다.

그곳에 가는 길은 가파르고 숨이 찼다.

승가사 안에 있는 108 계단에 오르니 진짜 아무 생각이 없다.

높고 바람이 불어 다리가 후들거렸고 살려고! 살기 위해! 난간을 부여잡았다. 그것도 꽈악! 하하하하

어제까지 나를 마구 흔들던 감정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듯 보였다. 잠깐이라도 좋았다.

목표 달성했네.^^V

이렇게 꽉 잡은 힘으로 오늘이라는 고비를 잘 넘기자.

내가 잘하는 거 있잖아. 그거 다시 하자.

꾸준히. 열심히. 다른 생각 말고 쭉 가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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