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희 Dec 29. 2023

기름떡과 빙떡의 좁힐 수 없는 거리감

딸은 엄마 인생을 닮는다고? - 17

 첫 닭이 우는 소리보다 조금 늦게 알람이 울렸다. 알람 소리에 다른 식구들이 깰까 봐 벌떡 일어나 화면을 밀어 알람을 껐다.

어젯밤에 찹쌀가루에 물을 섞어 주먹으로 퍽퍽 치대 놓은 기름떡 반죽이 잘 숙성되었는지 냉장고에서 꺼내 확인했다.

'내가 조금 귀찮더라도 만들자마자 따뜻하게 바로 먹으면 좋잖아'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며 테니스공 정도의 크기로 반죽을 뜯었다. 어제 한번 만들어 보았다고 버벅 거림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지글지글지글 소리에 남편이 일어났다. 이리 와서 먹어 보라며 프라이팬에서 꺼낸 기름떡을 설탕이 뿌려진 쟁반 위에 올려 앞뒤로 굴려 주었다.

"아 뜨거워!"

"푸하하하. 맞아 기름이라서 뜨거울 거야. 천천히 먹어"

입에 넣고 바삭 씹히는 소리를 듣고 내가 물었다.

"어때?"

"괜찮네. 맛있다."


기름떡을 다 만들고 큰 상을 꺼내 거실에 펼쳤다. 창 밖에는 추석날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남편의 야근으로 처음 제사를 나와 아이들, 이렇게 셋이서 지냈다. 네 식구 모두 모여 제를 올리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뭔지 모르게 든든한 마음이 가득했다.

아이들을 깨우고 과일, 전, 나물 그리고 기름떡과 빵을 나란히 상 위에 올렸다.

제사 때 보다 한층 더 풍성한 상차림이 되어 흐뭇한 미소가 저절로 번졌다.

잠이 덜 깬 아이들은 눈을 비비며 비몽사몽 했지만 절을 하고 술잔을 올릴 때는 정신을 똑띠 붙잡고 있었다.

그렇게 시댁 몰래 차례를 지내고 아침을 먹을 새도 없이 부산스럽게 정리를 하고 시댁으로 향했다.

잊지 않고 아침에 만든 기름떡을 통에 챙겨 들었다.


"아버님 혹시 제주에 계실 때 기름떡 드셔보셨어요?"

"그렇지 먹어봤지"

"제가 만들어 봤는데 드셔보시겠어요? 제주도 전통 떡이라길래 한번 만들어 봤어요"

조심스레 뚜껑을 열어 접시에 떡을 옮겨 담아 아버님 앞에 가져갔다. 테스트 통과를 앞두고 있는 사람처럼 긴장되는 마음으로 아버님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야. 이거 너무 달다. 너무 달아서 못 먹겠다!"

아버님은 떡 한 개도 채 다 드시지 않고 접시에 내려놓으며 손으로 접시를 멀찍이 밀었다.

나는 면접실에 들어가자마자 면접관이 당장 나가라고 한것마냥 기가 팍 죽었다.

"너무 달아요? 설탕을 적게 뿌리려고 했는데도 단가 봐요. 다음에는 덜 뿌려야겠네요."

"그리고 이거 뭘로 만들었니? 이렇게 만드는 거 아니다. 이거 메밀가루로 만드는 거야."

"메밀가루요?"


메밀가루... 난 빠르게 예전 일을 생각해 냈다. 아마도 아버님은 빙떡을 말하시는듯했다.

(빙떡은 제주 전통 음식 중 하나인데 우리가 잘 아는 메밀전병에 하얀 무나물을 넣고 돌돌 말았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아버님과 제주 동문시장을 둘러보다가 리어카에서 파는 빙떡을 보고 무지 반가워하신 적이 있다. 이게 제주도 전통 음식이라며 오랜만에 먹으니 예전 맛 그대로 라고 좋아하셨다.

빙떡을 만드는 사장님은 한국말이 서툰 젊은 외국인이셨고 아마도 어느 집 며느리로 생각되었다.

다음 방문 때도 그 빙떡 파는 가게를 찾아갔는데 아직 문을 열 시간이 안되었는지 멈춰있는 리어카에는 주황색 덮개가 허리 잘록한 모양으로 꽁꽁 묶여있었다. 시장을 몇 바퀴를 돌아 어렵게 빙떡을 파는 다른 가게를 찾았던 기억이 났다.


메밀가루를 말하시는 걸 보니 빙떡을 생각하신 듯했다. 담백한 빙떡 대신 쫀득 달달한 기름떡을 들이밀었으니 마음에 안 드는 게 당연하다 생각되었다.

아버님은 기름떡을 모르시거나, 잊으셨거나, 드셔본 적이 없을 수 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제주를 떠난 지 60년이 훌쩍 넘었는데 중간에 계속 먹어 보지 않았다면 어릴 적 기억만으로 기름떡을 떠올리기 힘들 수도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버님은 메밀이 들어간 음식을 좋아하신다.


한 번은 제주에서 메밀가루를 구입하신 적이 있다.

"저 아래에 메밀가루 파는 가게 있잖아. 거기서 내일 아침에 집으로 메밀 포대 가져올 거야. 계산 다 한 거니까 신경 안 서도 돼."

"제주에서 메밀이 나요?"

메밀 생산지는 봉평만 알고 있었던 나는 제주산 메밀이 낯설어 아버님께 물어보았다

"제주 메밀이 제일 유명하지. 제일 맛있어."

"얼마나 샀어?" 남편이 물었다.

"5kg 3포대"

"그렇게 많이?"

"우리도 먹고 너네랑 해인이네도 주면 금방 먹지"

"비행기에 갖고 타기 힘들 거 같은데 택배로 보내 달라고 하지 그랬어"

"여기 시골이라서 그런 거 없어. 여기 사는 사람들은  택배 보내는 거 몰라"

아마도 아버님이 더 모르시는 것 같았다. 여기는 쿠팡 로켓배송이 가능한 지역이다.  


다음날 아침,  메밀가루가 올려진 수레가 집 앞에 도착했고 아버님은 가져온 남자분과 반갑게 인사했다. 아버님이 인사하는 동안 나와 남편은 비닐로 된 포대를 툇마루로 옮기며 뒷면에 선명하게 적인 글자를 보았다.


원산지 : 중국산


제주도 아는 사람에게 직거래로 산 메밀가루는 중국산이었다.

아버님이 기름떡을 좋아할 거라는 나의 착각과 제주 사람은 당연히 제주산을 팔 거라는 아버님의 오해만 짙게 남았다. 세월은 많이 흘렀고 세상은 많이 변했다.

이전 16화 제사와 차례는 묶음인가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