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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희 Jan 24. 2024

나만 빠진 한약 3박스

딸은 엄마 인생을 닮는다고? - 아마도 끝이자 시작

 "다니는 센터가 수리 들어간다고  3개월 동안 수영장 문을 닫는대. 다른 사람들은 다른 센터 등록을 했다는데 나는 그냥 쉴까? 리 끝나고 다시 수영 시작하면 수업을 못 따라갈 것 같아 걱정되기도 하고.. 어쩔까"

"엄마. 고민할 문제가 아닌 거 같은데.. 건강 생각하면 3개월 동안 쉬는 것보다 다른 센터 등록하는게 낫지 않을까? 아니면 수영 말고 헬스 다녀보는 건 어때? 준서아줌마 헬스 다닌다고 했잖아. 이번에 다른 운동 배워보는 것도 좋을 거 같아."

"헬스? 얼마 전에 병원에서 근육이 없다고 헬스 배워보라는 얘기를 한 거 같다. 헬스.. 헬스.. 헬스가 쉽겠어? 수영을 계속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지금 다니는 데가 구립센터라 수업료가 싸서 좋았는데 다른 센터 가려니 왜 이렇게 비싸니. 너네 아빠는 돈을 꽉 쥐고 등록하라는 소리도 안 하고 있고."

"계속 수영하는 것도 좋지~그냥 가서 카드로 등록해. 몰래 카드 긁어!."

"어휴 너네 아빠가 알면 난리 칠 텐데 그 소리 듣기 싫어. 으으"

전화 통화인데도 엄마가 몸서리치는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운동 안 하면 지금보다 몸 상태 안 좋아질 수도 있어~중에 병원 다닐 생각 하면 수영 등록비가 아까운 거 아닌데.."

이내 나는 말 끝을 흐렸다. 엄마는 나의 의견을 들으려고 전화한 게 아니라는 걸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다.

아빠가 이래서 내가 너무 힘들다는 걸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과  복잡한 머릿속 감정들을 나에게 악 펼쳐 놓고 버려도 되는 생각은 버리고 필요한 내용머릿속에 담으려는 정리 과정이다.


엄마와 전화통화가 끝나면 내 앞에 흩뿌려진 엄마의 감정들을 쓸어 모으기 시작한다. 쓰레받기에 가득 찬 이 감정들이 버려지는 곳은 바로 나다.

내가 바로 누군가의 감정 쓰레기통이다.

나에게 버려진 다른 사람의 감정을 그저 차곡차곡 쌓아 올릴 뿐 처리할 방법을 모르겠다.

다른 사람의 조언이나 도움을 받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남들에게 항상 밝은 모습만 보이는 내가 누군가의 '감정받이'라는 걸 내 입으로 말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의 숨기고 싶은 면을 드러내는 것 같아 싫기도 했다. 내 입만 다물면 누구도 알 수 없는 사실이니 철통보안을 지키고 싶었다.


 친구 무리를 만났다. 서로의 가족들까지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학창 시절 친구들이다.

어떤 주제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오고 가던 대화 끝에 한 친구가 날 가리키며 말했다.

 "야. 엄마가 너보다 오빠를 더 아끼잖아~"

장난스레 던진 친구의 말에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그랬나? 친구들이 느낄 만큼 그런 일들이 있었던가?' 생각하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상한 건 나는 엄마가 오빠와 나를 차별한 기억 별로 없다.


보통 이런 상황을 그린 드라마를 보면 모든 차별을 기억하는 억울한 동생이 있고 부모와 오빠는 그런 일은 없었다는 등의 모르쇠로 유지하는 경우가 보통인데 나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참으로 운이 좋아서) 나는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 차별적 상황들을 오빠가 더 많이 보고, 듣고, 기억하고 있었다. 오빠는 날 위로하고 토닥여주는 목격자이가 설명자가 되어 주었다.


오빠에게는 올망졸망 귀여운 어린 3남매가 있다.  지난겨울, 조카 2명이 지독한 감기에 걸려 고생을 했고 한 명은 끝까지 감기에 걸리지 않고 씩씩하게 자신을 지켜냈다.

엄마는 나에게 오빠네 아이들이 감기가 다 나은 후 한의원에서 한약을 지어먹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 말에 덧붙여 "짓는 김에 애들 셋 다 지어주면 좋을 것을. 감기에 걸렸던 둘만 지어줬대. 어려도 눈치가 빤해서 안 먹는 하나는 서운 할 텐데 말이야"

"그렇지~그런 상황은 기억에 오래 남지~"하며 맞장구를 쳤다.


내가 11살쯤으로 생각되는 기억이 하나 있다. 그때 살던 집은 싱크대 옆 베란다로 나가는 문이 있었는데 그 문을 열면 채소나 간식과 같은 걸 올려놓는 앵글로 된 선반이 있었다.

어느 날 그 문을 열었을 때 한약 상자 3개가 눈에 들어왔다. 각 상자 위에는 매직으로 쓴 한약 상자 주인의 이름이 적혀있었는데 아마도 한의원에서 쓴  같았다.

뚜껑을 덮어 상자 위에 있는 이름을 보았다. 맨 앞 상자는 아빠 이름, 다음 건 엄마 이름,  마지막 상자는 오빠 이름이었다. 이름을 다 확인하고 나는 베란다 문을 닫았다.

한약상자에 적힌 이름이 사진처럼 찍혀 머릿속에 남아있을 뿐 그 기억 속에 나의 감정은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어릴 적 나도, 지금의 나도, 이런 상황들에 대한 섭섭함이나 억울함이 없다. 그냥 무덤덤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나는 이유를 알고 있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5촌 아저씨는 오빠를 만날 때마다 "우리 조카는 세상에서 제일 잘 생기고 착하고 공부도 잘한다"라고 칭찬 일색이었지만 나는 평가절하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빗말이라도 좋은 말 한마디 해줬을 법 한데 말이다. 그분은 아마도 T였나 보다.)

부모가 나서지 않아도 남들이 알아서 칭찬해 주는 존재는 부모님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었을 테고 부모님에게 오빠는 얼마나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자식이었을까.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는 건 어려웠을 테고 이쁜 자식에게 따뜻한 눈빛 한번 더 보내고 맛있는 반찬 하나 더 주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 맞아. 공부도 못하고 못되게 생기고 왈가닥 행동만 하고 다니는 나를 누가 좋아했겠어. 부모도 사람인데 이쁜 자식은 따로 있지"

내가 보아도 그때의 나는 그 정도의 아이였나 보다. 외면하려 애썼던 나의 모습들을 이제는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 나라서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을 자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감정받이' 이거뿐이라고. 사랑받을 수 있는 것도 방법도 이것뿐이라고.


엄마는 다른 센터의 수영을 등록했다. 예상한 결과였다.

"잘했네. 하던 수영하는 게 제일 좋지~"

엄마가 어떤 결정을 했더라도 나는 '엄마 잘 결정했어'라고 말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쉬워 보이던데 나는 ''이 되는 게 이렇게 힘이드는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비행기 태워주는 '남의 집 딸'을 목표로 열심히 뛰어 보았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엄마 마음에 들기 부족하다는 걸 깨닫고 달리던 속도가 느려져 걷게 되었고 그 마저도 다리에 힘이 빠져 터덜터덜 땅만 바라보게 되었다.

엄마와 마주하고 있는 나는 항상 무기력하다. 죄인처럼.


내 결혼 전반전은 엄마의 지난날과 참 많이 닮아 있었다. 하지만 후반전에는 엄마와는 다른 길을 걷고 싶다.

삥~ 돌아서 다시 이 자리로 다시 오더라고 오늘은 처음 보는 길로 걸어가야겠다.

나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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