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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희 Dec 21. 2023

그래도 피붙이

딸은 엄마 인생을 닮는다고? - 15

시아버님은 "싫다" "싫다" 하면서도 가족을 그리워하고 제주도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큰집의 사촌형이 죽고 형수는 물론 그 자식들과도 연락이 끊긴 지 몇 년이 흐른 뒤에 갑자기 그 가족을 찾고 싶어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큰 형이 살던 집을 찾아가겠다고 했다. 

지인들에게 알음알음 물어보면야 형수 연락처를 알 수 있을 텐데 지금, 당장, 제주도를 내려온 김에 롸잇나우 그 집을 찾아가겠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 집에 형수가 살고 있을 거라면서 말이다.


큰형의 집은 딱 한번 가보았는데 그게 10년 전쯤 깜깜한 밤에 택시를 타고, 형이 알려준 무슨 초등학교 앞에서 내렸다고 한다. 학교 정문 앞에서 내렸고 기다리고 있던 형수를 따라서 넓은 골목을 지나 개울가 근처 모퉁이에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단서 1. 제주 시내

단서 2. 초등학교

단서 3. 근처 개울


네이버 지도를 켜고 시내에 있는 개울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는 죄다 가보았다.

"여기는 아닌 거 같다"

"학교까지 들어가는 길이 이랬던 것 같기도 하다"

"여기처럼 학교 안에 큰 나무가 있었던 것 같다"

"학교 문이 이렇게 생겼던 것도 같은데"


5곳 정도 가보았는데 내가 보기에도 다 비슷비슷한 분위기였다.  

"두 번째 갔던 학교로 다시 가보자, 거긴 거 같다"

운전하고 있는 남편도 두 번째로 들린 학교가 어디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기억을 더듬어 처음 학교부터 다시 들렸다.

가장 유력 후보로 뽑힌 초등학교 앞에서 내려 한참을 이 골목 저 골목 들어가 보신 아버님은 "잘 모르겠다. 그냥 가자" 하며 차에 올라타셨다.


아버님은 왜 형수를 찾고 싶어 하셨을까?

 

남편 어릴 적 가끔 찾아갔던 친척이 있었는데 그곳은 아버님 어릴 적 가까운 곳에 살아서 자주 만났던 육촌형의 집이다.  아버님도 그 형도 서울에 올라와 자리를 잡게 되었고 친척이 가까이 사는 것이 좋아 자주 보며 지낸 터였다. 

결혼 날짜를 잡고 친척에게 인사를 시키겠다며 시아버지는 시어머니를 육촌형 집으로 데려갔다. 시어머니 눈에 비친 그날 시아버지의 모습은 참 이상하고 불쌍했다고 한다. 밥을 먹으면서도 이리저리 눈치를 보고 형이라는 사람은 시아버지에게 돈 얘기만 하더라는 것이다. 아마도 결혼 전에 '버는 족족 이 집에 다 가져다줬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육촌형도 큰집 형제들과 다를 바 없이 아버님을 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은 남편 어릴 적 기억에도 남아있었다. 

그날은 남편이 아버님과 둘이서 그 집에 갔었다고 한다. 육촌형이 아버지를 무시하는 말투는 매번  감정싸움으로 이어졌고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어린 남편은 아버지에게 "집에 가자, 빨리 가자"하며 옷을 당겨도 꿈쩍도 안 하고 서로 목에 핏대만 세워가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은 겁에 질리고 화가 난 상태로 집에 왔고 다신 그 집에 안 가겠다고, 그 집에 가는 아빠도 보고 싶지 않다고 울며 소리쳤다. 

그날 이후로 육촌 형과는 가끔 통화만 할 뿐 집으로 찾아간 일은 없었다고 한다. 

어쩌면 아들말에, 가족들 등쌀에 못 이겨 강제로 육촌형과 생이별을 하고 아쉬운 마음을 표현 못하고 속앓이를 하고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10년 전 형의 집이라며 잠깐 들어간 그곳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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