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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꽃나무 앞 단상

그냥 하고 바로 하고 아무려나

by 조아마 Mar 24. 2025

봄꽃이 핀다. 엊그제 눈을 펄펄 날리며 앙탈도 그리 앙탈을 부려대던 겨울이 그새 더 좋은 님이라도 생긴 양 쌩하니 떠나가고, 빈자리에선 그간 눈치 보며 수그렸던 봄이 며칠새 기지개 펴고 다리까지 뻗었다. 겨울이 다 늦게 잔뜩 골났던 때에는 멋모르고 일찍 나와봤던 꽃송이들이 호되게 혼 나는 걸 보자니 안쓰러움이 여간하지 않았는데, 이제 봄은 그 따위 일이 있지도 않았던 듯 옷자락 펼치기에 여념이 없다. 할 일이 얼마나 줄줄인가 나무들이 서둘러 꽃을 부리느라 덜컥 흐드러지는 참이다. 먼저 버린 꽃이 시리지 않았나? 꽃 떨군 자리가 아직 쓰릴 텐데. 나무들 몸단장이 하도 서슴없어 나는 좀 놀란다. 조금도 망설이지 않는구나. 저래 홀홀 풀어놓다가 하 이상한 시절에 혹시 겨울이 뒷단속이라도 오면 저것들 다 떨어뜨릴걸 겁이라곤 한 톨 없다니. 나라면, 나였다면.. 내가 나무라면 여지껏 웅크리고 있었으리라.


봄만 되면 나무들은 제 할 일이 무언지, 제 때가 언제인지 다 안다고 나는 종전까지 말했었다. 그런데 나무들이 저리도 봄을 향해 돌진하다시피 하는 바를 볼 적에 이제야 나는 나무들이 분명히 뭘 알고 헤아려서 하는 게 아닌 줄을 알겠다. 그냥 하는 것이다. 하고자 싶으면 그냥 하고, 혹시 다치더라도, 안 되면 못하고 있다가도, 또 해보자 싶으면 그냥 하고, 그러다 막상 할 만하면 내처 하는 것이다. 겉에서 남이 보기로 ‘저거 금세 곧 하겠지’ 짐작 드는 순간에도 나무는 이미 혼자 미리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봄이면 봄을, 여름이면 여름을, 가을에도, 심지어 겨울에도 그냥 하고 있었던 줄을 나는 이제 알겠다. 무엇을 잘하고자 했으면 그렇게 못했겠지. 서슴지 않고. 부지런하고자 했어도 벌써 저만큼이나 못했겠지. 가지와 차례를 고르며 마음이 우선 힘 빼느라. 내가 망설였지. 내가 힘 뺐었지. 나무처럼 하자고 무리무리 꽃으로 흐들하기 시작하는 그네들 앞에서 생각한다.


창을 열고, 먼지를 털고, 바닥을 쓸고, 쌀을 씻어 안치고, 어제 절인 알타리무를 양념에 버무리고, 냉잇국을 끓이고, 상을 피고, 식구들을 부르고, 배를 채우고, 그릇을 씻게 하고, 잠시 눕고, 옷 갈아입고, 문을 열고 나선다. 그냥. 언제 어디서든. 아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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